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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로마> 제작 매니저의 집에서 머무르다

엔리께(Enrique), 멕시코시티, 멕시코

by 노마



“께 빠드레 !Que padre!”


멕시코시티 두 번째 에어비앤비 호스트 엔리께(Enrique)는 버릇처럼 아버지를 찾았다. “께 빠드레!”. 멕시코에 오기 전 6개월간 나름대로 스페인어를 공부했지만, 어떤 교재에서도, 어떤 온라인 강의에서도, 하물며 스페인어 회화 모임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는 표현이었다. 처음엔 그만의 독특한 감탄사려니 했다. 하지만 대화를 나눌 때 마다 그는 “께 빠드레”를 연발했다. 우리가 “와, 대박” “멋있다” 라고 맞장구치는 빈도만큼 자주. 빠드레(Padre)는 스페인어로 “아버지”를 뜻하며, “께 빠드레”를 직역하면 “이거 매우 아버지인데?”란 어색한 표현이 된다.

IMG_1938.HEIC 엔리께의 집에서 함께 동고동락한 고양이

우린 놀라움을 표현할 때 보통 엄마를 찾는다, 중국에서는 “워더마야(我的妈呀)”, 이탈리아에서는 “맘마미아 Mamma mia”를 외친다. 물론 우리가 쓰는 “엄마야”는 당황스럽고 약간의 공포가 섞인 반면, 이탈리아의 맘마미아는 상황에 따라 긍정적인 감탄사가 되기도 한다. 어쨌든,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엄마를 본능적으로 찾는 것은 만국공통이라 생각했는데 엔리께가 아버지를 찾는게 신선했다.


그의 말이 워낙 빨라서 “께 빠드레”의 뜻을 물을 타이밍을 계속 놓쳤다. 그러다 어느 날, 그가 거실에 장식용으로 놓아둔 줄만 알았던 아트북을 넘기며 말하기를, “이거 정말 멋있지 않아? 이 그림 한 장 보고 이 책을 샀어.” 이때다 싶어 “께 빠드레!”라고 외쳤다. 그동안 그가 이 표현을 쓰는 맥락을 관찰한 결과, 지금이 적절한 순간 같았다. “께 빠드레, 씨? ”그가 맞장구를 쳐주며, 다음 장으로 책을 넘기는 찰나, “이거 멕시코식 표현이야?” 라고 슬며시 물었다. 그럼 “께 마드레(Que madre)”도 있는 거냐며.


그제야 그는 내가 멕시코에 온 지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을, 스페인어를 한국에서만 배우고 처음 온 여행자라는 사실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아하” 특유의 과장된 추임새로 머리를 짚고, 씩 웃으며 설명해줬다. “께 빠드레”는 멕시코 슬랭이며, 매우 멋지거나 쿨한 것을 표현할 때 쓸 수 있다고. 물론 “께 마드레”라는 표현은 없다고 낄낄거렸다.


왜 “아버지”가 쿨하고 멋있다는 표현이 되었는지는 정확한 유래는 확인되지 않지만, 가부장적이고 마초이즘(Machismo)이 뿌리깊게 자리 잡은 멕시코 문화에서 권위 있는 존재인 아버지를 멋있고 대단한 것에 비유하는 습관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다. 반면 “어머니”를 뜻하는 마드레(Madre)는 비속어에 자주 등장하며 대개 부정적인 상황에서 쓰인다. 어머니를 활용한 비속어는 만국 공통 선 넘은 욕설인만큼, 멕시코가 유별나게 아버지를 치켜세우고 어머니를 비하한다고 볼 수는 없다. 다른 문화권에선 아버지가 가정에서 자주 소외되는 존재로 표현된다면, 멕시코에서는 그런 부재가 오히려 존경받을 만한 권위로 해석된다는 점이다. 아버지가 집에 없는 것이 무관심 때문이 아니라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대단한 존재이기 때문이라는, 이들만의 긍정적인 해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이후 멕시코를 여행하며 현지인들과 대화할 때마다 습관적으로 “께 빠드레”를 썼는데, 이것이 지극히 멕시코적인 표현이란 것을 과테말라로 건너갔을 때 비로소 체감했다. 내가 아버지를 찾을 때마다 사람들은 웃으며 “께 빠드레”라고 함께 말하며, “멕시코에서 공부했냐” “멕시코에서 왔냐”고 넌지시 물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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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노마드로서 일을 하며 세계여행을 합니다. 한국 환승하면서 암 3기 진단을 받았지만, 치료 후 다시 배낭을 메기 시작했습니다. 뻔하지 않은 여행기를 쓰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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