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마 Jun 13. 2019

언젠가 여행지에서 내 사진을 안찍기 시작했다.

보여주기 위한 여행이 아닌, 내가 보는 여행으로 전환하며. 


해외 여행가면 빠질 수 없는 준비물은 무엇일까. 

바로 1) 스마트폰 2) 여권 3) 돈 4) 카메라 정도가 아닐까. 

그나마 카메라도 요즘엔 폰 카메라 자체가 너무 좋아서 점점 챙기지 않게 된다. (아이폰 만세!)

"여행에서 남는 것은 먹는 것과 사진이다" 

"여행지가서 풍경사진만 찍을 거면 더 잘찍힌 엽서를 사지" 

우리 아버지가 내 초반 여행 사진을 보면서 하시던 말씀이다. 

처음에 내가 혼자 여행했을 때 부끄러워서 

남한테 사진찍어달라고 하려면 속으로 수십번은 망설였다가 눈치를 봐야했던 그 시절.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부모님에게 여행 사진을 보여주는데 

부모님이 몇번 보다가 지루해하셨다. 

내 얼굴이 나온 사진이 없어서. 


그래서 두번째 기나긴 여행을 떠났을 때는 고릴라 삼각대란 것을 챙겼다

당시 2011년, 셀카봉은 아직 없었던 시절이었다. 


(맙소사. 셀카봉이 맨처음에 나왔을 때 얼마나 반응이 기괴했었는지. 당시 중국 대륙의 사진찍는 방법 으로 온라인 게시글이 올라와 셀카막대기 이슈가 되었을 정도로 셀카봉의 첫반응은 일종의 폭소였다. 이후 전세계적으로 이렇게 자연스러운 문화로 정착하리라곤 생각도 못했다) 


어떻게 혼자서 사진을 자연스럽게 찍을 수 있을까 고민고민 하면서 열심히 인터넷 검색하다가 관절이 자유자재로 꺾이는 고릴라 삼각대를 발견했다. 당시에 흔치 않은 아이템이었고 정품이어서 약 4~5만원대 했던 거 같다. 그렇게, 나는 그 휴대용 고릴라 삼각대와 미러리스 카메라를 들고 반년간의 떠돌이 생활을 시작했다. 

요즘엔 사람들이 삼각대를 들고다니며 혼자서도 타이머 설정해서 설정 사진을 잘 찍는다. 

괜히 저쪽 바라보고, 카메라 의식않는 척. 하면서 포즈와 표정도 자유롭게 바꾸며 원하는 사진이 나올 때까지 찍는다. 마치 여행의 목적이 사진인 것처럼. 

예쁜 풍경을 발견하면 어떻게 하면 인생 사진을 찍을 것인가 다들 큰 고민을 하는 거 같다. 


내가 당시 여행했을 시절에는 혼자 여행하는 사람들 그렇게 사진찍는 경우 거의 없었다. 

그래서 나는 타이머 기능이 있는 똑딱이 카메라와 고릴라 삼각대를 디딜만한 곳이 있으면 (심지어 나무에도 걸어봤다) 놓고 사람이 없을 때 후다닥 나만의 연기(?)를 하면서 사진을 찍곤 했다. 

나는 원래 카메라를 응시하면 표정이 너무 어색해서 셀카도 별로 안찍는 편인데 그나마 딴데 보는 척하거나 자연스레 찍힌 사진은 그럭저럭 꽤 좋았다. 

그렇게 매일매일 어느 장소를 가면 사진 찍는 것을 집착하기 시작했다. 고릴라 삼각대의 단점은 휴대용 짧은 단 삼각대여서 아무것도 디딜게 없는 쌩 평지인 경우엔 도저히 자연스레 찍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바닥에 두고 아래에서 위로 쏘는 샷을 찍지 않는 이상. 그래서 정작, 나는 관광지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보다 그냥 길가다가, 아니면 어렴풋이 저 멀리 관광명소가 살짝 보이게끔 찍힌 사진이 더 많다. 

스냅사진을 혼자 열심히 찍은 셈이다. 그 때 페이스북에 나는 거의 매일 사진을 1장씩 올렸는데 지인들이 "혼자갔는데 사진 어떻게 찍었어?"라는 질문이 정말 많았다. 

그 땐 "삼각대 놓고 혼자 생쇼하면서 찍었어"라고 대답하기 부끄러워서 "그냥 지나가는 사람한테 부탁했어"라고 대강 얼버무렸다. 지금은 혼자 여행하는 사람이 기나긴 삼각대를 놓고 스냅 사진을 스스로 찍는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지만, 그 때는 정말 흔치 않았다. 


그렇게 열심히 인증사진을 열심히 찍다보니 

렌즈캡도 강물에 많이 빠뜨렸고 UV렌즈가 깨지고, 아예 카메라가 박살이 난 적도 있어서 현지에서 비싼 돈 주고 새로 카메라를 사기도 했다. 


반년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사진 용량은 거의 100GB 가까이되었다. 

문제는 도저히 사진 정리할 엄두가 나지 않았고, 그 사진을 다시 보는 것도 귀찮아졌다. 

외장하드에 저장해두고 한 3년간 열어보지 않았는데 3년후 열어보니 외장하드가 고장났다. 허탈했다. 



또한 여행초반에는 만나는 외국인들, 이야기 나눈 외국인들, 카우치 호스트마다 사진을 함께 찍었는데 

언젠가는 이 셀카 사진들이 "나 이렇게 외국인들이랑 잘 어울리면서 놀고있어"라는 인증용으로 변질되는 거 같아 그만 두게 됐다. 그냥 그 사람이랑 만나서 어떤 이야기를 했고, 어떤 사람인지만 기억하면 되는거지. 오히려 사진 찍는 것에 집착하다보면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진다. 

사진을 열심히 찍느라 풍경을 눈에 담는 걸 까먹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외국인들이랑 셀카, 사진찍는 것에 대한 집착도 내려놓게 됐다. 



나이가 점점 들어서일까. 

아니면 어차피 사진을 찍어도 내가 다 보지 않는 걸 알기 때문일까. 

혹은 여행에 대한 인증에 대한 회의감 때문일까. 


3~4년전부터 여행을 가서 내가 나오는 사진을 찍지 않기 시작했다. 유명한 관광명소에 가도 그냥 기분이 좋으면 뒤를 배경삼아 셀카 찍는 정도? 또한 카메라도 한 6~7번 깨먹었더니 이제는 그냥 스마트폰만 들고 여행을 다닌다. 

그래서 몸도 가볍고 마음도 편하다. 

예전에는 모든 관광명소, 가는 곳마다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집착으로 

"아, 누구한테 부탁해야하지" 하면서 전전긍긍하다가 

힘들게 부탁했는데 그 사진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 기분이 상하곤 했다. 

근데 요즘엔 굳이 내 사진에 집착하지 않으니 

그냥 마음 편하게 그 곳을 즐기고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 할 때도 그 사람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고 싶어서 더욱 집중하게 되었다. 

여행에 대한 인증이 굳이 필요할까. 

어차피 그 곳에 내가 있었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아는 것이고, (아니 몰라도 상관없다) 

내가 그 곳에서 어떠한 것을 보았고 경험했는지에 가치를 더 둔다면 

사진에 집착할 필요는 없는 거 같다. 


어차피 누군가에게 보여줄려고 여행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전 19화 여행할 때 현지인 맛집에 집착할 필요 없는 이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