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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며니 Jan 04. 2019

의심의 시작

상황의 심각성

"기며나!!!"


- 끼이이이 이 이익


조수석에 앉은 엄마의 비명소리에 화들짝 놀라 눈을 뜨고 고개를 돌렸다. 오른쪽 백미러가 접힐 정도로 트럭과 내 차가 붙어 달리며 소리를 내고 있었다.


반사적으로 브레이크를 세게 밟아 멈췄다.


트럭이 멈춰 선 내 차의 앞으로 지나며 백미러를 꺾고 범퍼와 차 측면을 갈아낼 듯 마찰을 일으키면서 멈추려고 했다.


트럭은 오른쪽으로 휘며 검은 바퀴 자국을 그리기 시작했다.


2차선에서 달리던 트럭이 4차선까지 반 바퀴를 돌며 가로로 멈췄다.



수요일 오후 세시 자유로였다.


갈비뼈를 뚫고 나올 듯 뛰는 심장 때문인지 핸들을 잡은 손에 땀이 났다.





헤이리에서 엄마와 점심을 먹고 나오는 길에 엄마의 위경련이 또 일어났다.


급히 근처 약국으로 가서 평소 드시던 위경련 진통제를 샀다. 약을 먹어도 복통이 가라앉지 않았고 엄마는 앓는 소리로 고통을 뱉어냈다.



분명 나는 끙끙거리는 엄마의 손을 만지며 온 신경이 곤두선 채 어서 집으로 가려고 운전 중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엄마가 비명을 지르며 내 이름을 불렀을 때 눈을 떴다.




사고 당시 자유로에는 다행히 차가 많지 않아 연쇄 추돌 등 추가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내 차와 맞닿아있다 저만치에 멈춰 선 트럭과 함께 갓길에 차를 세웠다.


우리 차는 오른쪽면 범퍼가 너덜거렸고, 트럭은 운전석 쪽 문 아래가 심하게 긁혀있었다.



경찰과 보험사에 전화를 했다.


그리고 트럭 운전자와 대화를 나눴다.


"괜찮으신가요...? 어떻게 된 일이죠?"

떨리는 목소리로 내가 물었다.


"... 저도 잘 모르겠어요. 잠을 별로 못 자서 그런지 잠깐 멍했는데 차가 밀리는 느낌이 들었어요."

어안이 벙벙한 트럭 운전사가 대답했다.


"아... 그래도 지나가는 차가 많지 않았어서 다행이네요..."

트럭 운전사도 나도 놀란 마음이 커서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다.


둘 다 각자의 차로 돌아가 잠시 한숨을 돌리며 멍하게 있었다.




몇 분 뒤 레커차, 경찰차 그리고 보험사 직원이 차례로 도착했다.


경찰은 현장 조사 후 사진을 찍고 블랙박스를 넘겨달라고 했다.


자초지종을 설명한 후 트럭 운전사는 배달 일정이 남아 먼저 가겠다고 했고 엄마와 나는 렉카를 타고 수리센터로 향했다.


해가 지고 밤이 됐을 때 차를 수리센터에 맞기고 보험사가 지급한 렌터카를 타고 집으로 왔다.






며칠 뒤.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다.


"며칠 전 자유로 사고 때문입니다. 잠시 서로 와주셔야겠습니다."


처음 받아보는 경찰의 전화에 떨리는 것은 둘째치고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궁금했다.


엄마도 위경련으로 정신이 없었고 눈을 감고 있었는데 끼이이익하는 소리에 눈을 뜨니 트럭과 우리 차가 맞닿아 있었다고만 기억했다.


물음표 여러 개를 안고 파주 경찰서 교통과 담당자와 시간 약속을 하고 갔다.



"블랙박스 영상 보시죠. 큰일 날 뻔하셨습니다."

데스크톱 앞에 앉은 담당자가 옆의 의자를 권하며 말했다.



블랙박스 영상은 충격적이었다.


1차선을 따라 직선으로 달리던 내 차는 정말 부드럽게 서서히 2차선으로 향했다.

2차선에서 달리던 트럭에 차가 붙어 달렸고 맞닿은 부분의 백미러가 꺾이기 시작했다.


트럭이 내 차에 밀려 옆 차선으로 향했고 내 차는 끼익 소리를 내며 급정거했다. 엄마가 이름을 외치는 소리에 내가 눈을 뜬 순간이었다.


우리 차가 차선을 넘어 다른 차에 닿은 것은 5초도 안 되는 시간이었다.


밀린 트럭은 바닥에 새까만 바퀴 자국을 내며 반 바퀴를 돌아 3, 4 차선을 건너며 가로로 섰다.


2차선에 멈춰 선 내 차를 피해 1차선으로 다른 차가 달렸고, 트럭이 바퀴 자국을 낸 3차선으로 차량 몇 대가 빠르게 지나갔다.


어이가 없어 영상을 몇 번이나 반복 재생하는 나와 아빠에게 경찰 담당자가 말했다.


"트럭 운전자 분도 약간 몽롱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렇지만 이건 100퍼센트 지금 운전자님 잘못입니다. 트럭 운전하시던 분은 정방향 직진 운전 중이었잖아요.

만약 트럭이 옆 차선에 없었으면 기며니씨가 졸면서 3,4차선까지 대각선으로 가드레일까지 가거나 달려오는 차에 부딪혔을 겁니다. 그리고 1차선에서 달리다 넘어가서 급정거했을 때 뒤에 차가 있었으면 어쩔 뻔했어요? 운 좋은 줄 아세요. 트럭이 빙글 돌던 순간 3, 4차선이랑 기며니씨 차가 멈출 때 뒷 차선에 차가 많았으면 몇 중 추돌사고가 났겠네요. 정말 큰일 날 뻔했습니다."


벌점을 받고 수리비는 보험처리로 마무리했지만 이후 나는 운전을 할 수 없었다.


블랙박스 영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서다.


사고가 나던 날 잠을 충분히 잤고 졸렵지 않았으며 엄마의 통증 호소로 긴장까지 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운전 중에 8초 정도 눈이 감기고 내 몸이 정전된 듯 깜빡 전원이 꺼졌다.


모든 차가 전속 질주하는 자유로에서 내 의지, 컨디션과 상관없이 정신을 놓고 핸들 잡은 손에 힘이 빠져 옆 차선을 넘어간 것이다.


난 몇 겹의 추돌사고와 인명사고를 일으킬 뻔했다. 블랙박스 영상을 본 트럭 운전수가 내 멱살을 잡고 뺨을 쳤어도 심지어 고소를 했더라도 난 할 말이 없었을거다.



유난히 아침잠이 많고 수업시간에 잘 조는 나였다. 하지만 사고가 나던 날은 열 시간 넘게 자고 느지막이 일어나 엄마와 오랜만에 점심 데이트를 나간 날이었다.


강의실에서, 버스에서, 지하철에서 꾸벅거리는 나는 위협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운전대를 잡은 나는 의지와 상관없이 누군가를 다치게 하고 죽일 수도 있는 사람이라니 죄책감이 들고 스스로가 무서웠다.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검색을 시작했다.


<잘 조는 사람>

<나도 모르게 정신을 깜빡 잃었어요>

<졸음운전 사고>

<많이 잤는데 조는 사람>

.

.

.


여러 포스팅과 기사들을 읽다 보니 '나... 병에 걸린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잠 많은 사람으로 보기엔 내 증상은 더 심각한 듯싶었다.


이날의 마지막 검색어는 <졸음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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