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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며니 Jan 04. 2019

발단

고등학교

"하아아암... 영어시간에 너 병든 닭인 줄.. 어떻게 맨 앞에 앉아서 조냐ㅋㅋㅋ"


우르르 다 함께 급식실로 달려가는 길, 입이 찢어질 듯 하품을 하며 말하던 친구가 웃음이 터졌다.


필기량이 많아 모두 힘들어했던 영어 시간이 끝난 직후였다. 수업시간에 난 분명히 형광펜과 파란 펜을 한 손에 쥐고 열심히 필기했었다.


"ㅋㅋㅋㅋ막 꾸벅거렸어?"

깔깔거리는 친구 때문에 나도 웃음을 참으며 물었다.


"어. 졸다 잠깐 깨서 필기하다가 또 꾸벅거려ㅋㅋ 필기는 제대로 했냐?"

뒤에 앉아있던 또 다른 친구가 대답한다.


"글씨 끝이 길어지고 삐뚤거리지 뭐. 아 필기 너무 많아. 시험공부 언제 다 해.”

우리는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식판을 집어 들고 배식을 받기 시작했다.





나는 잠이 많았다.


특히 아침잠이 많아 등교시간은 늘 엄마와 나의 전쟁이었다.


"일어나!!!!!!!!!!!! 제발!"


두 손으로 꽉 움켜쥔 이불을 낚아채는 엄마의 고함소리로 거의 매일 아침을 시작했다.


"아 왜 소리를 질러!"


내가 짜증을 내면 엄마의 대답은 늘 똑같았다.


"30분 전부터 계속 깨우는데 너가 계속 자잖아!"


나는 분명 엄마의 고함소리부터 깼는데 말이다.


동생도, 아빠도 나를 깨우다 포기하곤 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며 동대문 시계상에서 A4용지 크기의 커다란 자명종 시계를 샀다. 새로 산 시계와 수동 알람 시계를 함께 기상시간에 맞춰 놓기로 했다.


깨우는 엄마도 힘들었지만 나도 매일 아침 비명소리에 깼더니 기분이 안 좋아 내린 특단의 조치였다.


하지만 망치로 철을 두드리는 듯 시끄럽게 종을 울려대는 시계도 소용이 없었다.


자명종 소리가 현관 밖까지 들린다고 하는데도 나는 곤히 잤다.


악순환이었다.


고등학생이 되니 학습량이 늘고 야간 자율학습까지 하며 내 수면시간은 줄어들었고, 잠에서 깨는 시간은 더 늘어졌다.


엄마의 인내심이 한계에 달한 어느 날 아침.



"야!!! 기며나 일어나!!"



- 철썩!


차갑고 강하게 내 뺨을 때린 건 엄마의 손이 아니었다.


엄마가 들고 있던 빨대 꽂은 포도즙을 던진 것이다.


학교 갈 시간은 다가오는데 나는 눈을 잠시 떴다 자꾸만 잠이 들고, 엄마는 이불을 뺏어보고 창문을 열기도 하고 다시 나를 부르고 또 부르고...


이를 지난 몇 년간 반복하며 아침마다 엄마의 감정은 폭발 직전이었고, 포도주스 사건 당일은 40분째 나를 깨우다 인내심의 한계가 온 것이다.


온몸과 베개 그리고 벽까지 보랏빛으로 포도즙을 물들여 맞고 일어난 나는 이것도 모르고 그저 서럽게 울었다.



내가 거의 매일 늦게 일어나서 엄마는 중학교 때부터 나를 학교 교문 앞까지 차로 자주 태워주셨다.


늘 학교 교문 앞에는 선도부 선생님이 지각을 체크하기 직전 헐레벌떡 차에서 뛰어내리는 아이들이 몇 명씩 있었다. 그래서 엄마와 나는 이 상황을 ‘다른 애도 많이들 늦게 일어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사실 통학거리가 멀거나 부모님이 출근하시는 길에 함께 가다 내려주신 거였을 텐데 말이다.


포도주스 세례를 받은 날도 엄마가 태워주는 차 안에서 입을 삐쭉 내밀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학교에 도착했다.

"라면 먹었냐? 어...? 무슨 일 있어?"

아침부터 퉁퉁 부은 눈으로 앉아있는 나를 보고 친구가 왔다.


내 뺨을 치던 포도주스 생각에 나는 서럽게 울며 잠에서 깨는 게 너무 힘들고 엄마랑 자주 싸워서 아침부터 힘이 없다고 털어놨다.


친구들 대부분은 “나도 잠이 많다”, “그럴 수 있다”, “우리 오빠도 안 일어나서 엄마한테 물 맞은 적 있다”, “나도 알람 세 개 맞춰놓는다” 등등의 공감을 해줬다.


그래서 나도 그저 남들처럼 평범한 아침잠 많은 아인 줄 알았다.



나는 그렇게 중학교 때도 고등학교 때도 유난히 아침잠이 많은 아이, 아침에 깨워도 잘 못 일어나는 아이, 잘 조는 아이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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