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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며니 Nov 17. 2019

전쟁 나면 여자는 뭐해요?

남동생 입대하던 날.

볼품없이 바투 깎아 삭발에 가까운 머리가 왜 그리 안쓰러웠는지 모른다. 앳된 얼굴로 인사하고 운동장을 뛰어 멀어지는 동생의 뒷모습을 보며 엄마와 나는 손에 쥔 휴지가 눈물에 젖어 얼굴에 덕지덕지 붙도록 오열했다.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닌데. 무뚝뚝한 아빠도 눈물 한 방울이 떨어지려는 찰나 괜스레 기침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엄마 아빠는 "힘이 없어 우리 아들 편한 군생활도 못하게 해 줬다"며 서러워하셨다.


훈련소에 입소하는 동생과 수많은 빠박이 청년들을 보며 왜 슬픔에 목이 메었을까. 벌써 10년 가까이 지난 일인데 운동장에 흙먼지를 일으키며 억지로 씩씩하게 훈련소로 향하던 이들을 떠올리니 글을 쓰는 지금도 갑자기 울컥한다. 대한민국 남성은 예외 없이 입대한다는 원칙 아래 가장 아름답고 젊은 세월을 나라에 조공한 게 하루 이틀 일도 아닌데. 식민통치를 겪고 강대국에 의해 강제로 국토가 분단됐을 뿐만 아니라 동포끼리 전쟁까지 치른 한국에서 국가 방어는 모든 가치보다 우선이었다. 아주 어릴 때부터 편지는 군인 이모나 아줌마가 아닌 '아저씨'에게만 썼고, 국방을 수호하는 임무는 남성이 전담하는 사실에 의문조차 가져본 적이 없었다. 입영통지서는 마치 초등학교 입학통지서처럼 남동생에게 날아왔다.


편법으로 입대를 피하는 이들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평등의 원칙과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강조하는 논술문을 고등학교 때, 대학교 리포트에 주야장천 썼는데. 동생이 군대 갈 때가 되니 자산 많고 힘 있는 부모가 편법으로 제 새끼를 감싸고도는 게 부러워졌다. 어마어마한 사람들만이 아니라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었다. 계획적인 원정 출산으로 세상에 나와 대학 입학 후 국적을 바꿔버리거나, 친척이 쓰리스타라며 아버지가 의사라며 편법으로 군면제 또는 공익근무를 하는 녀석들. 때문에  오히려 '진짜' 환자들에게도 곱지 않은 사회의 시선이 간다. 이래저래 군입대를 피한 여러 젊은이들이 별 일 아니라는 듯 술자리에서 돈과 힘으로 국방의 의무를 면제받은 에피소드를 털어놓는 게 내심 부러워졌다.


남동생이 입영통지서를 받고, 하루가 멀다 하고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던 부대 내 가혹행위, 총기사고, 자살사건 등에 가슴이 철렁했다. 사건도 충격이지만 병영 내에서 일어난 사건에 가족을 포함한 취재진 등 외부인의 접근을 차단해 진실을 땅 밑으로 파묻는 행태를 담은 기사는 끝까지 읽기도 전에 무력감이 몰려왔다. 온 가족이 희망을 걸었던 미군 복무(카투사)마저도 뺑뺑이 신의 점지가 비껴갔다. 모든 대한민국 남성이 선택권 없이 가야 하는 한국부대는 부상 입거나 죽어서 나올 확률이 상당해 악명 높은 곳 아닌가. 2008년 베이징 패럴림픽 출전한 대한민국 남자 국가대표 선수 58명 중 14명, 즉 네 명 중 한 명이 군내 사고로 장애를 얻었다는 건 이미 유명한 이야기다.

출처: 나무 위키-박동희 12일간의 기적, 조국을 위해 두 번 뛴 남자


멀쩡한 어금니를 여러 개 뽑고 대중들의 질타를 받으면서도 가기 싫은 곳.

전 세계를 무대로 날개를 펴고 있는 유능한 손흥민 선수와 방탄소년단을 보내기 싫은 곳. 내 자식, 내 동생, 내 남자 친구는 안 갔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는 곳. 대한민국 군대는 여전히 이런 곳이다. 아무리 군대 문화가 개선된다고 해도 유능한 젊은이들이 재능과 무관하게 국가의 강제로 시간을 허비하며 합당한 보상도 받지 못하는데 가야 하는 곳임에는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지난 60여 년 간 쌓여 곪아 썩은 내가 나는 대한민국 군 내 문제는 매일 뉴스를 장식한다. 안보를 앞세운 공포 조장으로 표심과 국가 예산 그리고 정책까지 좌지우지했던 정치인-군 장성의 카르텔은 앞으로도 계속 개혁이 필요하다.


고인 물은 썩는 법이다. 6.25 한국전 이후 견제 없는 권력을 쥔 한국군은 세상의 흐름에 맞추지 못했다. 비합리적인 군 문화와 훈련 방식 아래 대한민국의 청년들은 2년을 희생당했다. 지금은 사병 월급 인상, 군용 휴대폰 보급, 인권문제 개선, 관심병사 입대 배제 등 개선 조치로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열악하긴 마찬가지다. 10여 년 전에는 우스갯소리로 사병 시급은 70원이라는 말도 돌았다. 대한민국은 세계에 단 하나뿐인 휴전국이기 때문에 징병제를 택했다. 이에 국민 대다수가 동의하며 인생의 가장 소중한 시간을 국가에 헌납했다. 국가의 생존이 다른 가치들을 압도하는 일상이 반복되며 개인의 헌신을 강조하는 것이 당연한 집단주의적 정서를 낳았다.


부조리함이 아무리 억울하면 뭐하나. 동생은 피할 길 없이 수많은 이들이 그렇듯 얌전히 입대했다. 동생은 감사하게도 부대 내 무기 사고가 없었고, 뇌가 퇴화한 선임이나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후임을 만나지 않은 탓에 별 탈 없이 군생활을 했다. 내성적이고 조용했던 동생이 선임의 추천으로 조교에 지원해 포상휴가를 나왔을 때다. 빨간 모자를 쓰고 다른 신병들의 훈련을 지시하고 돕는다는 동생이 평소처럼 귀여워 볼때기를 만지려는데. 남동생이 내 손을 피했다. 이제는 '누나 등에 업혀 울던 동생이 아니라 남자가 됐다 이거냐'하며 멋쩍게 웃었다. 동생은 사격도 잘해서 또 포상휴가를 받았다며 단전에 힘을 준 채 씩씩하게 말했다. 엄마 아빠는 자랑스러운 대한의 아들이라며 한가득 시킨 치킨과 피자, 탕수육을 동생의 앞접시에 놔주셨다.


그러다 불현듯. 전쟁이 나면 나는 뭐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과 직장의 선배와 동기, 후배들, 남자 친구와 동생까지 철마다 소집-동원 예비군을 2일씩 다녀오는데. 가면 뭐하냐고 물으니 훈련을 받을 때도 있고, 전시에 해당 지역구를 방어할 방안을 시뮬레이션한다고 했다. 나는 그들이 수년간 하는 활동을 단 한 번도 접해보지 못했다. 만약 전쟁이 나면 나는 아이를 안고 뛰어다니거나 소리 지르며 불안에 떨고 있는 역할을 하겠구나 싶었다. 탈북여성들이 패널로 나오는 TV 프로그램을 보면 북한은 남녀 모두가 국방의 의무를 진다던데. 우리나라가 여전히 휴전 국가므로 전쟁의 가능성은 타국보다 높지 않은가. 아주 만약에 북한과 전쟁을 치른다면 북한 동포 여성들은 저 멀리서 나에게 총을 겨누고 쏠 수 있는데. 나는 총이 눈앞에 있어도 안전장치도 풀지 못한 채 도망만 쳐야 하는 건가 싶었다.


과거 70년대 군사정권 시절까지는 교련 과목이 있었다. 지금보다 더 전쟁의 위험이 높아 앳된 학생들도 교과목 시간에 전쟁에 대비했던 거다. 그런데 그때도 여학생들은 총 맞은 사람에게 붕대를 감아주는 법만 익혔다고 한다. 남학생들이 모형 총을 들고 사격 자세를 연습하는 동안 여학생들은 8자 압박붕대 빨리 감기, 화생방 훈련 때 커다란 주사기를 몸통 어디에 꽂아 넣어야 하는지 등을 암기하고 실습했다. 그나마 교련 수업이 있을 땐 양성에게 간단한 호신술 정도는 알려줬으니 전시에 적군의 성폭력에서 스스로를 지킬 최소한의 기술 정도는 습득한 거다. 이마저도 1997년 7차 교육과정 도입으로 교련이 선택과목으로 바뀌며 사실상 폐지됐다. 이후 대한민국 여성들은 전시에 아무것도 할 줄 몰라 강제로 보호를 받아야만 하는 존재로 전락했다.

1970년대 고등학생들은 같은 교련복을 입고도, 남성은 모형 총기 훈련을 여성은 붕대감기 실습을 했다. 사진출처: 좌) 대구 경북공고 / 우) 경북기록문화연구원


헌법 39조 1항에 따라 모든 국민이 지는 국방의 의무인데 왜 남성만 강제 징병 대상일까.

군대 가기 싫은 남자 동기들이 술로 며칠 밤을 지새우며 한탄하고, 군에서 당한 수많은 부조리한 처사들을 개그 소재로 삼는 걸 지켜만 봤다. 내심 '나는 먹는 속도가 느려 고등학교 때 급식도 전교 꼴찌로 먹었는데, 군대 안 간 게 천만다행'이라고 안도했었다. 내가 군대 간다면? 소화도 안 되는 밥을 허겁지겁 입에 욱여넣고 며칠을 씻지도 못하고 땅바닥에 뒹굴고, 부루 튼 손발에 동상까지 걸린다는 건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군 복무에 대한 보상도 없는데 가서 목숨 걸고 삽질하다 오긴 싫었다. 사병이 될 기회조차 없는 거에 감사하면서도 이상했다.


군 가산점 제도가 폐지된 후에도 인턴과 입사 전형의 서류를 쓸 때, 군 경력 사항 작성란은 상위에 있었다. 성별에 '여성'을 체크하면 자동으로 병력 입력 칸이 '면제'로 비활성화됐다. 장교 경력은 장애/보훈 여부와 함께 가산점 항목으로 분류됐었다. 여성 사병은 허용하지 않으면서 여성 장교는 허용하는 현재의 구조도 기형적이지 않은가. 전쟁이 일어날 확률이 타국보다 높기 때문에 강제 징병제를 실시하는 대한민국에서, 전시 상황에 나를 비롯한 여성들 중 혼비백산 소리 지르며 뛰어다니기만 하고 싶은 이가 몇이나 될까. 장교 복무까지는 엄두를 못 내는 여성에게도 국방의 의무를 분담할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지난 2001년 공무원 임용고시 등에서 군필자에게 가산점을 부여했던 군 가산점 제도가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로 폐지됐다. 당시 판결 근거는 국방의 의무를 분담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여성이나 장애인 등의 권리를 침해하기 때문이었다. 사실 '여성 징병제'는 1990년대 후반부터 여성 인권단체와 페미니스트들을 중심으로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정치권에 제안했었다. 이후 2003년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에 '여자도 군대 보내라! - 양성 평등한 군대를 위하여'라는 글을 시발점으로 매우 활발하게 논의가 전개됐다. 하지만 16년이 지난 지금. 징병제에 대한민국 여성을 포함시키는 논의는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최근 MBC 100분 토론 850회에서 '다시 불거진 모병제 논란'을 주제로 토론을 열었다. 토론이 주제에서 벗어나 '여성 사병'관련 패널들의 설전으로 샜을 때. 박휘락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는 사회자의 제지까지 무시하며 여성 사병 관련 의견을 한마디만 하겠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박 교수는  "한 텐트에 남녀 병사가 그냥 뒹굴고 자면서 전투하겠나?"라고 했다. 난 내 귀를 의심했다. 대한민국 젊은 남녀 모두가 발정 난 동물도 아닌데 아직도 저런 사고를 하는 사람이 우리 사회를 움직이고 있다니.


여기에 여성 병사가 적군에 잡혔을 때 당할 능욕을 견딜 수 있겠느냐는 말까지 덧붙이셨다...


여전히 지도층에게 여성은 전투병력이 아닌 약자이며 성적 대상인 거다. 군의 특성상 상명하복의 강한 위계 체계가 있어 성폭력 사건이 일어날 확률이 높고, 잘 알려지지 않는 건 사실이다. 군내 성폭력의 문제는 왜곡된 위계질서와 지난 세월 상대적으로 낮았던 여성 권리에 대한 인식이 만든 것이다. 여성 징병이 의무화 법안이 상원의원을 통과한 미국 역시 1990년대 후반 미국 보훈부(Department of Veteran Affairs, VA) 연구에 따르면 절대다수의 미국 여성 군인들이 복무 중 강간(30%), 성폭행(71%), 성희롱(90%) 등의 성폭력을 당하지만 사건의 90퍼센트 정도는 신고되지도 못하고 있었다. 미군은 연구에 집중해 꾸준히 군내 성관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 사병의 숫자를 늘려왔다. 스웨덴의 경우 남녀 성의 비율이 균형을 이룰수록 성군기 관련 사고가 줄어든다는 연구를 근거로 수년간 여성 정치인들이 피력해 지난해부터 여성 징병제를 실시했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스웨덴은 양성이 동일한 의무를 지는 게 남녀의 성 정체성에 관한 고정관념을 무너뜨리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강제 징병은 아니지만, 여성도 징병 대상에 포함해 양성이 동등하게 군 복무를 하는 네덜란드는 혼성 막사를 썼을 때 오히려 군내 성관련 사고 발생 확률이 낮아졌다고 발표했다. 북유럽 국가들은 여성 징병제를 추진하며 임신과 출산, 육아 등 가족계획을 가진 여성의 의사를 존중했다. 동시에 남성도 육아참여, 양심적 병역 거부나 대체복무 등을 자유롭게 택할 수 있는 법안도 동시에 추진했다. 네덜란드 청년들과 대한민국의 청년들은 다른 종족이 아니다. 성적 자기 결정권에 대한 교육과 함께 남녀가 서로를 동등한 인간이자 동료로 인식하는 문화는 얼마간의 진통 후에 우리나라에도 반드시 자리 잡을 것이다.


이미지 출처: 좌) 노르웨이의 혼숙 내무반-Ruptly Youtube / 우) 스웨덴 국방부


십 년도 더 전부터 국내 페미니스트가 사병 복무를 허용해달라고 했는데, 왜 우린 제자리일까.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여성 대상 의무 징병제 시행 관련 법안, 여성 사병 허용 관련 법안, 양성 모병제 도입 방안 등 여러 법률과 정책이 이슈 물타기 용으로 등장했다 사라지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지자체장, 국회의원 등 선출직에 투표할 때 그들의 국방 관련 공약과 약속한 정책을 짚어봐야 한다. 세상에 진짜 변화를 만들 공약은 수십 년째 제자리인데 남성과 여성이 서로에게 상처 입히며 싸움만 계속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오랜 저출산에 따른 남성 인구 감소로 5년 후부터 국방에 필요한 최소한의 병력인 30만 명을 유지할 수 없다. 부족한 병력을 채우기 위해 지금처럼 정서적으로 불안정하거나 신체적으로 입대가 불가능한 남성까지 모두 현역 판정을 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 올해 2,579만 6천 명으로 총인구의 49.9%를 차지하는 여성이 부족한 병력을 채우는 방안을 논의할 때, 지금처럼 사병 없는 반쪽자리 여군 장교를 강제로 늘리는 것 역시도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양성 모두가 다양한 형태로 국방을 분담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갈 길이 멀다. 개개인의 성격, 병력, 재능 등을 반영한 의무 복무제도에 반기를 들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여성도 전쟁이 났을 때 스스로와 조국을 지킬 수 있는 기회가 있길 바란다. 걷지 못할 만큼의 생리통을 매달 겪고, 콧구멍으로 수박을 낳는 것 같은 출산의 고통을 호소하는 여성에게 "너네는 군대 안 가지 않냐"는 논리로 응수하지 마시길. 생리적인 현상에 따른 고통 앞에 갑자기 국가 제도가 얼마나 부조리했는지를 외치면 이성적인 대화는 끝나버리니까. 군대를 통해서 얻어진 남성의 희생과 보상 의식뿐만 아니라 여성에게 각인된 성차별적 분업 사고도 개선해야 한다. 비합리한 징병제도에 분노하는 남성에게 여성은 임신과 출산을 한다는 답은 여성의 역할을 스스로가 제한하는 거다. 임신과 출산은 여성의 임무 또는 의무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여성 징병제를 실시한 이스라엘 역시도 우리처럼 국방에 필요한 수요보다 남성의 숫자가 적어서 어쩔 수 없이 여성도 국방 의무를 진 것이라고 한다. 최근 여성 징병제를 도입한 스웨덴과 노르웨이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들이 여성 징병 법안을 통과시키기까지 지난 수십 년간 정치인과 여성단체의 노력이 있었다. 이들은 여성의 임신과 출산 등을 고려한 환경을 조성하고, 군 내에서 승진을 할 때는 성별을 고려하지 않고 동등하게 능력만을 잣대로 평가하게 만들었다.


여성 인권 OECD 국가 중 10위 내의 최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북유럽 국가들에서 여성 징병제가 먼저 도입된 건 우연이 아니다. 복지 천국이라고도 불리는 북유럽 국가는 오랜 시간 동안 노인, 장애인, 아동 등 약자를 비롯한 전 국민이 요람에서 무덤까지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사회가 함께 모색하고 찾아온 곳 아닌가. 이제부터 우리도 이들을 모델로 한 걸음씩 다가가면 된다. 기계적 평등과 중립을 외치며 여성 징병을 외치지만 말고, 법률안 개정부터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과정을 시작하면 된다.


사진 출처: 네덜란드 육군, 노르웨이 국방부, 스웨덴 국방부


이제부터라도 대한민국 군필자들의 마음 깊숙한 곳에 '군대'가 응어리로 남지 않기를.

잘못된 법과 정책 때문에 청춘의 2년가량이 증발된 박탈감에 대한 분노가 향할 곳은 여성이 아니다. 남성도 여성도 그리고 게이와 트랜스젠더, 레즈비언 등 성적 소수자(성적 소수자라니, 동의할 수 없는 표현이지만 아직 적절한 말이 없어 이 단어를 써서 당사자들께 죄송하다)도 모두가 내가 발붙이고 사는 이 나라를 지키고 싶은 마음은 매한가지다. 문제는 국가가 너무도 무례하게 싼값으로 젊은이들의 시간과 노동력을 소진한다는 데 있었다. 생식기만으로 사람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해 한쪽에만 모든 부담을 지게 한 것도 시대의 변화에 맞춰 개선해야 한다. 신체적으로 사병 복무가 불가능한 여성은 '방위세' 등 세금의 형식으로 대체하더라도 민방위 훈련 정도에는 참여해야 전시에 스스로를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전 국민이 병역의 의무를 나눠지면서 군 의무 복무 시간을 최소한으로 단축해야 한다. 부족한 병력은 군생활이 체질에 맞고, 군인을 직업으로 택한 젊은이들에게 제대로 된 월급을 지급해 채우면 된다. 미군 초년병의 월급이 세후 300만 원에 주택, 학비, 건강보험까지 지원된다는 사실에 더 이상 '천조국 클래스 후덜덜'하며 지나칠 때가 아니란 소리다. 미군과 카투사에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월급뿐만이 아니다. 그들의 합리적인 훈련 시스템, 사병도 침대가 있는 2인실을 배정해 사생활을 보호해주는 것, 사고가 터졌을 때 가장 먼저 책임지는 선임들의 태도 그리고 진정한 평등을 국가가 주도해 실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21대 국회의원 선거가 2020년 4월 15일 수요일에 예정돼 있다. 오늘까지 2016년부터 5년 간 양성평등 법안을 만들고 개정할 의무를 졌던 20대 국회의원들의 소속 정당별 공약을 보자.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걸 다시 한번 느낄 것이다. 내년 4월까지 선거 운동을 하는 후보자들이 트로트 음악을 틀고 춤추며 지나갈 때 시끄럽다고 귀만 막지 말고 정당별, 후보별 공약이라도 한 번씩 살펴봐야 '여자도 군대 가는' 나라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여성 장교와 임원, 국회의원 비율 의무 할당제 등 결과의 평등을 보장하는 법안은 기계적 평등을 강제하기엔 안성맞춤이다. 결혼 후 임신과 출산을 하기 위한 금전적이고 물리적인 여유를 보장하지 않는 국가에서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을 강제로 고위직에 올려놓는 것은 평등이 아니다. 여성 사병, 여성 사원 등이 출산과 육아 과정을 겪고도 경력 단절 없이 사회생활을 하도록 제도를 다져야 한다. 군을 비롯한 우리 사회 전반의 유리천장을 없애려면 양성 동일 징병, 남성 육아휴직 강화 등을 병행해 남녀가 서로를 돕는 환경이 필수임을 기억하자.





* 중앙 선거 관리 위원회의 지역구 국회의원 당선인 공약 정리 페이지. 중앙 선거관리 위원회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각 정당별 정책도 볼 수 있다. 곧 후보자 공약도 올라올 테니 2020년 4월에 투표소 가기 전까지 잘 살펴보자.

http://policy.nec.go.kr/svc/policy/PolicyList.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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