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아는 이야기일 거라는 당신의 고정관념을 뒤흔드는 영화 <김복동>
노인이 되면 아이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온몸의 장기와 모든 기관들이 쇠약해져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상태가 돼버려서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숨만 쉬어도 아픈 연약한 상태가 되는 거죠.
"아이고 무릎이야. 아이고 허리야. 움직이질 못하겠네"
"틀니 낀 잇몸이 아리고 소화가 하나도 안 되고 음식을 먹을 수가 없어"
"내가 빨리 가야지. 빨리 죽어야지 너무 힘들어서 안 되겠어"
"힘들어서 한 발자국을 못 걷겠네"
할머니와 함께 살아보신 분들은 알 거예요. 일어나고 앉으실 때마다 곡소리를 내며 아픈 몸이 힘들다며 투정을 부리는 할머니들의 모습을요. 어릴 때는 할머니가 엄살이 심하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한해씩 나이를 먹으면서 시큰거리는 손목과 허리, 무릎과 발목 등에 문득 통증이 오더라고요. 30대인 지금도 몸이 조금씩 녹스는 게 느껴지는데 50년 후의 내 몸은 어떨지 상상만 해도 관절이 아픕니다. 내 맘대로 안 되는 몸 때문에 아이처럼 투정 부리던 할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답니다.
영화 속 다른 위안부 할머니도 마찬가지였어요. 앞으로 엎어지는 몸을 바퀴 달린 보행기에 의지해 일어나 활동 도우미가 등을 받치고 밀어줘야 거실을 몇 발자국 걷는 모습을 봤습니다. 걸음마를 시작한 아가처럼 한 발자국 떼기도 힘겨워하다가도 '부와악' 시원하게 방귀를 뀝니다. 영화 <김복동>은 우리가 알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줘요. 김복동을 제외한 다른 위안부 할머니들은 아이의 모습으로 돌아가거나 자꾸만 기억이 지워는 중이더라고요. 모든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들이 고령에 증언을 하는 일이 당연한 일이 아닌걸 이제야 알았어요.
90세가 넘은 할머니 김복동은 보통의 노인들 그리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 할머니들과 달랐습니다. 김복동은 디스크가 다 빠지고 연골이 없어 척추의 뼈들이 계속 마찰하는 상태라고 하는데도 아프다 소리는 하지 않습니다. 대신 심각한 몸상태를 설명하는 의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보험 안 돼도 괜찮아요. 아주 좋은 약으로 빨리 낫게 해 줘요.
아픈 몸을 치료받으러 간 병원에서 저렇게 말하는 경우는 보통 다음날 면접이나 중요한 미팅이 있을 때 등이죠. 할머니는 당신의 정신과 입이 살아있는 한 진실을 증언하겠다는 결심을 한탓에, 보통의 할머니들처럼 아플 때마다 투정을 부릴 새도 없습니다.
우리가 젊을 때 쇠 빠지게 일하는 이유는 늙어서 편하려고 그런 거죠. 힘없고 아픈 몸을 이끌고 쉴 새 없이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런데 김복동 할머니는 90이 돼서도 온몸의 통증을 안고 전 세계를 다니며 길거리의 시위에 참석하고, 정치인과 인권단체 대표들을 만나며 젊은이들과의 간담회에 대중들을 상대로 한 증언까지 하는 출장 일정을 소화해야 합니다. 젊은 사람도 힘들다는 21일간의 해외 일정 중에도 몸이 아프다 투정한 번 없습니다. 김복동보다 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도 감당하길 꺼리는 일정인데도요. 지친 몸을 의자에 기대고 꽃피는 봄을 노래하며 본인의 일정에 동행하느라 고생하는 활동가들을 위로합니다.
김복동은 소녀시절을 일본군 성노예로 보냈습니다. 홍콩, 말레이시아, 수마트라,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등 세계 각지의 전쟁터로 끌려다니며 셀 수없이 많은 횟수로 일본군에게 순결을 유린당합니다. 할머니와 같은 소녀들의 목숨은 하루살이처럼 전쟁의 광기에 끊어졌고, 김복동은 그 지옥의 세계일주에서 살아 나옵니다.
제대로 된 몸과 마음의 치료도 없었습니다. 아물지 않은 상처엔 누구도 관심이 없었고 부모님과 가족들마저 그녀가 위안부였다는 사실을 쉬쉬했어요. 그는 억척스럽게 부산 시장에서 장사를 하며 동생들과 친척들의 학비를 감당했답니다.
마을의 이장, 동장과 주변 사람들이 한 목소리로 "배불리 먹여준다"라고 하길래 그 말을 믿었다가 영문도 모른 채 위안부가 되어버린 아픔을 묻고 그렇게 30년 넘게 성실히 일만 하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1992년 김복동은 당신이 피해자임을 세상에 알립니다.
그녀는 일본군 성노예 사실을 세상에 밝힌 후 더욱 쓸쓸한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언니들 마저도 김복동이 부끄럽다며 일본군 위안부 피해사실을 밝힌 그녀에게 발길을 끊어버려서입니다. 피붙이들조차 등을 돌렸는데 피해자를 향한 세상의 손가락질은 얼마나 잔인했을까요.
김복동 할머니의 타고난 성품이 밝고 굳세서 그렇게 힘차게 수십 년 간 피해사실을 증언하고, UN인권 위원회 등에서 증언을 하셨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습니다.
사실 이 영화, 포스터만 봐도 다 아는 이야기 같았습니다. 시사회가 아니었다면 상영관도 적은데 굳이 찾아가서 보지는 않았을 거라고 고백합니다. 영화를 보며 생각이 달라졌고 부끄러워졌습니다. 우리가 다 안다고 생각하며 여러 번 듣고 볼 때마다 고통스러워서 눈을 질끈 감게 만드는 일본군 위안부들의 피해사실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난이 있었는지 상상도 못 했으니까요.
그녀가 92년 아시아 연대에서 첫 증언을 한 후 다시 고향 부산에서 속앓이를 하며 이 일을 계속해야 하나 고민한 시간입니다. 저는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를 여러 번 듣고, 읽고 봐서 다 안다고 생각했어요. 일본군 성노예 피해 당사자가 한 단어씩 사실을 증언할 때 지옥 같은 기억과 온몸에 새겨진 아픔을 되새김질하는 거였음을 왜 몰랐을까요. "나는 피해자 김복동입니다."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계속할지 말지 자그마치 12년이나 고민하셨대요. 스스로와의 싸움을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하신 거예요.
소녀 김복동은 일본군이 앗아갔고, 청년 김복동은 경제 발전과 형제들 학비벌이에 바쳤습니다. 그렇게 중년 김복동은 묻어둔 상처를 꺼냈는데, 그녀가 번 돈으로 공부하고 생활했던 가족들마저 아물지 않은 그녀의 상처 위로 쏟아내는 비난을 홀로 감내했습니다. 김복동의 일생은 힘없고 가난했던 우리 현대사의 수레바퀴와 주변의 편견에 짓밟혔고, 게으르고 무지한 저와 같은 이들의 무관심에 외롭게 세상과 맞서야 했습니다만. 그의 정신은 평생 고개 숙이지 않았습니다.
27년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을 증언해도 매춘부처럼 자발적 위안부였다며 잡아떼는 아베 정부, 그런 일본 정부와 손을 맞잡고 밀실 합의를 해버린 박근혜 정부 역시도 자꾸만 김복동의 오랜 노력을 시작점으로 되돌려놓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말합니다.
희망을 잡고 살자. 나는 희망을 잡고 살아
영화는 김복동 이름 석자를 관객들이 모른다는 전제로 친절하게 이야기합니다. 배우 한지민 씨의 담백하지만 힘 있는 목소리가 집중력을 높여주고요. “할머니는” 이나 “그녀는” 등의 대명사보다는 "김복동은"을 주어로 대부분의 내레이션이 흘러가는 점이 좋았어요.
27년 동안이나 아픈 역사를 증언한 인권운동가인 김복동의 이름을 저 또한 몰랐습니다. 그저 위안부 할머니 중 한 명, 문재인 대통령이 조문한 위안부 할머니 정도로만 희미하게 알고 있었을 뿐이죠. 매주 수요일 일본 대사관 앞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요구하는 정기집회는 올해 8월 14일 1400회를 맞습니다. 세계 최장기 시위로 기록될 만큼 끈질기고 대단한 이 싸움이 내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데도 오래된 일상처럼 그저 스쳐 지나갔습니다. 가끔 대형 문구점이나 온라인의 팬시 제품을 구입하면 금액의 일부가 위안부 나눔의 집으로 간다는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5,000원 정도에 마음의 짐을 덜 뿐이었죠.
"현실에 치여서, 먹고사는 일에 바빠서"라는 핑계로 저처럼 그녀의 이름을 잊어가는 사람들이 많을지라도 그녀가 세상에 심어놓은 희망의 씨앗은 무럭무럭 자라고 있습니다.
비가 올 때면 눈물을 흘리는 일본군 위안부 소녀상이 우리 땅과 세계에 차분히 세워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일 관계가 악화돼 민감한 지금 일본 한복판 나고야 미술관에도 소녀상이 갔다고 합니다. 이 소녀상은 곧 김복동입니다. 일본이 사죄할 때까지 전 세계에 소녀상을 세우겠다고 그가 힘차게 말했거든요. 국내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과 억압받는 여성들을 넘어 일본에서 따돌림당하는 조선인 학생들, 세계의 전쟁 피해 여성들까지 따뜻한 마음으로 품고 전재산을 그들에게 기부했습니다. 그리고 아픈 몸을 이끌고 하늘을 건너 직접 찾아가 잘 보이지 않는 눈으로 그들의 두 손을 꼭 잡았습니다.
그녀는 참 이성적입니다. 위안부 피해자들을 배제한 채 일본과 위안부 합의를 하고 온 박근혜 정부의 외교부 차관에게 천둥같이 화를 내는 다른 피해자 할머니와는 달리 조용히 앉혀놓고 자초지종을 따져 묻고, 본인의 의견을 말합니다. 차라리 욕 한 바가지 시원하게 퍼부으면 당신 속이라도 편할 텐데 말입니다.
암 치료를 받고 5일 만에 비 오는 외교부 청사 앞에서 시위를 할 때도 취재진들 사이에 일본 언론사 기자가 있는지를 묻습니다. 그리고는 힘 있고 논리적으로 말합니다. 아베 총리의 귀에 당신의 말이 꼭 들어가게 해 달라고, 아베 총리가 꼭 당신의 말을 신문에서 읽게 해달라고 당부합니다.
일본군 성노예로 의지와 상관없이 끌려간 김복동이가 이렇게 있다고. 1000억 엔을 줘도 안 받지만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한다면 받아주겠노라고
이 영화는 담담하게 사실을 나열합니다. 하루에 수십 명이 줄을 서서 소녀들을 유린했던 온갖 변태적인 성적 가학행위를 묘사하지 않습니다. 그저 그녀와 주변의 모습을 비출 뿐인데도 눈물 줄기가 흐릅니다. 가녀린 김복동 할머니의 어깨너머 진실을 외면해왔던 죄책감이 밀려옴과 동시에 사리분별 명확한 그녀의 모습에 묻힌 아픔이 잠깐씩 보일 때마다 울컥하는 건 극장의 다른 관객들도 마찬가지였나 봅니다.
먹고살기 바쁜 일상에, 평온하고 즐거운 요즘에 밀려 자꾸만 희미해져 가는 그녀의 이름을 꺼내 다시 마주하게 해 준 <뉴스타파>, <미디어 몽구>와 <정의 기억 연대> 등 영화 제작에 힘써주신 분들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열여섯 소녀는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세계 일주를 당하며 자궁이 사라졌습니다. 소녀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스스로 일어나 주변 사람들을 먹여 살리며 청장년의 때를 보냈고, 노인이 되어서는 관절 없이 부딪히는 온몸의 뼈를 이끌고 지구촌 곳곳에 진실을 알리고 수많은 피해자의 삶을 안아줬습니다. 상영관이 많지 않지만 <나이는 구십넷, 이름은 김복동>을 보시길 꼭 추천드립니다. 유니클로, 데상트 등 의류제품을 비롯한 일본 상품 불매운동으로 아베의 경제 제재에 반기를 들기로 결심한 여러분. 박근혜 정부가 어떤 밀실 협약을 했는지, 아베와 일본 극우단체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게 어떤 말을 하는지 영화를 통해 보셔야 하니까요.
더 많은 이들이 보고 더 많은 이들의 입에 <김복동>이 오르내리길 바라는 마음으로 가족과 친구에게 영화 티켓을 선물하려고요. 영화는 일본군 성노예자의 아픈 과거만 얘기하지 않거든요. 가까운 미래는 우리 손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김복동의 삶을 비춰 말해줍니다. 그리고 그녀의 빛나는 눈이 나를 바라볼 때는 보잘것없는 작은 나도 진실 앞에 눈감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다는 용기를 얻게 됩니다. 지금 우리의 현실에서 부당한 일이 있을 때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스스로 깨닫게 해 주죠. 저는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죄스러운 평온한 일상을 누리고 있습니다만, 앞으로 '김복동' 이름 석자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어떤 일이든 겪어낼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그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끔찍한 고통을 안고도 꿋꿋하게 삶을 버티게 해 준 세 글자는 <김복동>이었다고 합니다. 할머니는 겨울이 가고 꽃피는 3월 범띠 호랑이가 활기차게 뛰노는 아침 10-11시에 태어났다고 해요. 그의 아버지가 사랑을 가득 담아 딸내미에게 지어준 그 이름. 그 이름 하나를 붙잡고 그녀는 평생을 우리에게 선물하고 가셨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면 스스로 불러볼 일이 별로 없는 내 이름 석자를 부르는 것만으로 세상을 버텨낼 힘을 얻으실 거예요.
김복동은 나와 여러분이 본인보다 나은 삶을 살길 바랐던 우리 모두의 어머니입니다. 부디 고통 없는 하늘에서 평온하시길 기도합니다. 고맙습니다.
* 브런치 무비 패스로 좋은 영화 보고 큰 울림을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카카오 가치같이] 응원하고 공유만 해도 카카오가 기부한데요! 영화 <김복동>상영과 전세계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리는 홍보물을 <정의기억연대가>만드신데요. 요 링크 한 번 클릭하고 응원 버튼 한 번 눌러주세요.
https://together.kakao.com/fundraisings/68615
* 4호선, 7호선 총신대입구역 아트나인 O관은 건물 12층에 있어요. 신기하게도 극장인데 창문이 있어서 영화가 끝나고 블라인드가 올라가면 멋진 서울의 풍경을 높은 곳에서 볼 수 있답니다. 보통 극장에서 보지 못했던 다양한 영화들의 상영일정을 보면서 보고 싶은 영화가 많아졌어요. 영화 <김복동>과 함께 극장 아트나인도 추천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