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나 소설 속 악당은 한눈에 보입니다. 그들의 악의적인 음모와 지나친 야망, 무자비한 행동은 명백하고 과장되게 묘사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악당, 즉 "리얼라이프 빌런"은 어떤 모습일까요?
리얼라이프 빌런의 가장 큰 능력은 '은폐술'입니다. 이들은 자신의 진정한 의도와 목적을 숨기고, 해치려는 타깃을 제외한 주변인들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영화 속 악당이나 범죄자는 총과 칼로 해를 입힙니다. 리얼라이프 빌런의 무기는 '대화와 행동'입니다. 이들은 말로 다른 사람을 제어하려고 시도하며, 그 과정에서 비윤리적이거나 부당한 수단을 사용합니다.
제가 만난 리얼라이프 빌런은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었습니다.
감정 조작: 이들은 자주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용해 그들을 조종하려고 합니다. 타인의 마음에 숨겨둔 두려움, 죄책감, 혹은 의존성을 기가 막히게 포착하고 적절한 순간에 이용해 목표를 달성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비난과 비판: 리얼라이프 빌런은 비난과 과도한 비판을 통해 다른 사람을 압박하고 지배하려고 합니다. 이 역시 자신보다 약자인지 강자인지 권력관계에 따라 최적의 강도로 적절하게 사용합니다.
거짓 정보와 소문: 자신의 이익을 위해 거짓 정보를 퍼뜨리고 소문을 내기도 합니다. 교묘하게 사실과 거짓을 섞어 퍼뜨리는 탓에 오히려 피해자가 아무리 사실을 해명해도 사람들은 진실에 관심이 없거나, 사실을 듣고도 거짓만 기억하기도 합니다.
책임 회피: 리얼라이프 빌런은 자신이 한 행동의 책임을 회피하며, 그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기도 합니다.
무자비함: 이들은 자신의 목표를 위해 필요한 경우 타깃을 무자비하게 짓밟습니다. 주변의 그 누구도 빌런이 이런 행동을 할 거라고 상상도 못 하는 게 잔인함의 포인트입니다. 나 혼자만 당한 일이라 주변에 아무리 도움을 요청해도 오히려 내가 거짓말쟁이 또는 피해호소인이 되고 맙니다.
편견심기: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말에 따라 정말 완벽하게 아무것도 안 했는데도 빌런의 타겟이 되는 순간 피해자는 무언가 문제가 있는 사람이 됩니다. 큰 결심을 하고 나는 무고하다는 것을 알려도 ‘뭔가 문제가 있으니 저런 일을 당하지 ‘라며 사람들의 인식 속에는 오히려 피해자가 엮이지 말아야 될 사람이 돼버립니다.
간접공격: 때로 더 잔인하게 피해자를 괴롭히는 건 리얼라이프 빌런의 명령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들입니다. 현실 빌런을 따르는 조력자들은 사실이 무엇인지는 상관없이 빌런의 말을 앵무새처럼 전합니다. 빌런은 가만히 있는데 오히려 조력자들이 피해자에게 직접 메시지를 전하거나 위해를 가합니다. 빌런은 손에 피 안 묻히고 자신의 메시지를 모두에게 전하며 피해자에게 위해를 가하는 겁니다.
리얼라이프 빌런은 친구, 가족, 동료, 상사와 같은 일상의 모든 측면과 다양한 형태의 인간관계에서 나타날 수 있으며, 이 피해는 감정적인 상처에서부터 경제적인 손해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리얼라이프 빌런의 행동을 분석하고 패턴을 이해하는 것은 정말 까다로운 일입니다. 피해자는 몸에 24시간 녹음기와 cctv가 있었다면 하고 상상할 만큼 사람들에게 나의 무고함을 뒷받침할 증거를 간절히 찾습니다.
실생활에서 만난 악당에게 당한 사람의 평판은 이미 망가졌고,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나에 대한 거짓 소문을 믿고 있는지조차 파악이 안 돼지만 주변 사람들의 눈초리는 사나운 또는 비아냥대는 태도가 느껴집니다. 리얼라이프 빌런은 진실보다는 가십에 익숙한 사람들의 심리를 가장 선한 얼굴로 지휘하며 주변 사람들을 이용해 일상에서 피해자의 피가 마르는 오케스트라를 신나게 연주합니다.
왕따, 은따, 텃새 등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한 조직에서 오랫동안 또아리를 틀고 선한 얼굴의 가면을 쓴 빌런은 자신의 나쁜 행동이 표면으로 드러나게 두는 저단수가 아닙니다. 당하는 사람은 탈모, 거식증 등의 신체적 증상과 불안, 자살충동 정도의 심각한 심리적 상처를 입지만, 리얼라이프 빌런은 승승장구하며 모두의 칭찬을 받지요. 피해자가 한 사람 또는 아주 소수라는 점, 주변 사람들은 피해자와의 관계보다 빌런과의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이득인 점 게다가 빌런의 치밀한 괴롭힘이 드러나더라도 사람들은 "너가 예민하다.", "그렇게 작은 걸로 뭘 그렇게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난리를 치느냐"는 말을 합니다.
당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리얼라이프 빌런'. 저도 처음으로 누군가의 불행을 생생하게 상상할 만큼 힘들었습니다. 벗어날 길이 보이지 않으며, 사람들에게 사실을 알릴 방법도 모르겠고, 심지어 몇 달을 고민하고 정확한 사실을 정리해 빌런과의 대화를 시도했지만 세상에나. 단 둘이 있을 때 선한 사람 가면을 벗은 빌런은 증거가 있더라도 본인의 잘못을 절대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피해자 탓을 하더이다. 빌런의 민낯과 마주한 후 명예 회복은 둘째치고 진심 담긴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절대 듣지 못하겠구나 하는 확신이 드는 순간. 그때 딱 살면서 처음으로 누군가의 불행을 상상하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를 해치지 못할 사람만을 현실 빌런들은 타겟으로 삼고, 주변 사람을 붙잡고 뜬금없이 “사실은 말입니다 저는 아무 잘못이 없는데 저 사람이 거짓말한 겁니다.”라고 말하는 게 더 이상하더라구요. 심지어 회사사람이 아닌 가족들에게 조차요.
타깃으로 삼은 피해자의 인생을 망가뜨리는 빌런들이 득세하는 이유는, 이들의 행동은 처벌받은 적이 없고 처벌하기도 힘들어서일 겁니다. 당한 사람들이 피해사실을 알려도 오히려 매장까지 당하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잘못된 행동을 알리고 '가만히 있지 않는 것'이 아무에게도 해를 입혀본 적 없는 이들을 한 명이라도 구하는 일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리얼라이프 빌런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고, 머리 좋고 치밀한 이들의 민낯을 드러내는 일에 함께해 주세요. 저는 이 과정에서 더 건강한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자신과 주변 사람을 보호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리얼라이프 빌런에 대한 이해는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게도 좋은 영향력을 미칠 것 같아요. 영악하지 못해서 제때 대응할 때를 놓쳐버린 여러분도 괜찮습니다. 내가 당한 이야기를 읽은 누군가가 대처법을 알고 리얼라이프 빌런에게 무자비하게 당하지 않거나,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리얼라이프 빌런의 존재를 꿰뚫어 보고 도움이 필요한 이를 적절하게 도와줄 수도 있잖아요.
여러분이 만난 리얼라이프 빌런 이야기도 기다리겠습니다. 현실 속 악마들을 끈질기게 찾아내고 증명한 ‘그것이 알고 싶다’가 아닌, 여기 브런치 댓글창 또는 happyloser.77p@gmail.com으로 리얼라이프 빌런을 제보해 주세요. 같이 이야기하는 것이 미약할지라도 우리 스스로를 구하고 여러 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해결책을 함께 고민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