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친구를 만나면 직장 또는 가족 간의 불화나 갈등을 하소연하며 누가 가장 힘든가 경쟁이라도 하듯 '불행배틀'시간을 갖습니다. 뒤에서 이야기하는 것 말고는 도저히 해결책이 없는 끔찍한 상사부터 시작해 듣는 것만으로 속이 뒤집어지는 시월드 이야기 등등요. '내가 속한 집단에 나쁜 사람이 한 명도 없다면, 그 악당은 너다'라는 말이 있어요. 한국은 특히나 인구통계학적 사실이라는 속설이 있을 만큼 어느 집단에나 꼭 타인의 경계를 침범하며 착취하는 이가 꼭 있더라고요.
우리 사회는 '리얼 라이프 빌런'에 대한 집단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나보다 나이나 연차가 높은 위치에 있는 가족이나 상급자인 빌런들에 의한 아픈 기억이요. 학교 선배, 직장 상사, 지도교수 심지어 부모님의 모습을 한 빌런들로부터 정신적으로 착취당한 경험이 모든 구성원들의 인생 밑바탕에 자리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최근 MZ로 불리는 청년 세대의 행동 방식을 위와 같은 관점에서 봤을 때 더 명확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MZ세대는 본보기로 삼을 어른도, 제대로 소통을 할 수 있는 어른도 없다고 말합니다. '반면교사', 즉 '너희들이 하는 행동을 반대로만 하면 제대로 사는 거'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스스로의 행동 규정을 만들어 누가 뭐라고 해도 말없이 자신만의 기준에 따라 삽니다. ’MZ‘는 어쩌면 리얼 라이프 빌런들로부터 경계를 확실히 만들고 스스로를 단단하게 지켜온 젊은이들이 만든 문화가 아닐까요. 부서 전체가 의미 없는 야근을 하는 강압적 분위기에 굴하지 않고 냉정하게 칼같이 퇴근을 해버리거나, 말도 안 되는 상급자의 농담에 대충 분위기 맞춰 웃어주는 감정 노동 따위는 절대 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에요.
또 다른 예로, 우리나라 여성들이 결혼과 출산을 거절하는 중요한 이유는 '엄마처럼 살기 싫어서'입니다. 사회에서의 명예와 성공을 위한 인맥을 넓히는 일에 한평생 몰두한 이기적인 아버지. 그리고 남자를 하늘처럼 받들며 묵묵히 내조하고, 가사노동을 전담하는 것이 당연한 사회상에 순응한 어머니의 모습은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사실 대다수 젊은이는 롤모델을 가까운 곳에서 찾기가 정말 힘듭니다. 그래서 '엄마'로 대표되는 대다수 기성세대의 여자들처럼 살지 않겠다는 것을 최소한의 실현 가능한 목표로 생각합니다. 내 존재 의미를 찾고, 스스로의 능력으로 경력을 유지하며 사회에서 인정받는 것만이 나를 지키는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가부장제'라는 거대한 이데올로기가 가족의 인생과 시간을 아무렇지도 않게 흡혈하는 수많은 리얼라이프 빌런을 만들어냈던 거죠.
우리 사회의 문화 역시 현실 빌런이 곰팡이처럼 곳곳에 피어나기 좋은 음습한 곳을 우리가 나고 자란 가정뿐만 아니라 학교, 직장, 군대 등등 집단 곳곳에 만들었습니다. 20년 전까지만 해도 군부 독재자, 성희롱을 일삼는 관리자, 손찌검을 하는 선생님 등 명확히 눈에 보이는 형태의 빌런들이 득세했습니다. 폭력적이며 공감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도 없이 신체적, 언어적 폭력을 자기보다 약한 이들에게 휘둘러댔어요. 예로부터 외부로부터의 공격과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아픈 역사 덕분에 내가 살려면 남을 먼저 죽여야 했고, 전 국민이 오징어 게임 참여자처럼 서바이벌을 해야 그나마 작은 아파트 한 칸 얻을 수 있었던 시절이 아직 끝나지 않았나 봅니다.
지난 30년 간 한국 현대사는 민주화 운동, 미투 운동, 체벌 금지법 등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 사회가 여러 형태의 억압과 폭력들로부터 모두를 구하려는 노력의 산물이었습니다. 하지만 무고한 사람을 착취하고 병들게 만드는 이상 현상은 지금까지 끊임이 없습니다. 정말 무서운 건 상처가 보이지 않지만 맞았을 때 가장 아프고 위험한 곳을 때리는 사람이잖아요.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숨을 못 쉴 만큼 정신을 압박하는 말과 행동을 근거리에서 지속하는 리얼 라이프 빌런들은, 부족함 없이 가장 많은 것을 가지고 누리고 있는 현재에도 만족을 모른 채 죄 없는 식물 같은 사람들을 공격합니다.
자신의 기대치만큼 누군가를 조종하기 위해 소리를 지르거나 손찌검을 하던 형태로 나타나던 폭력이 이제는 교묘한 심리적 가스라이팅과 인맥을 활용한 전방위적 압박 형태로 나타납니다. 끊임없이 자신의 만족을 위해 아랫사람과 청년을 착취하는 형태로 말입니다. 결국 이들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군말 없이 복종하는 약자가 필요한 거죠. 더 치밀하게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를 꼬투리 잡으며 소문과 분위기를 움직여 숨통을 조여옵니다.
여전히 공기업, 사기업 등 직장과 조직에서 겉으로만 평등해 보이는 문화 속에 결정은 오직 힘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미디어와 이념적 선진국에서 보이는 자유로운 모습과 대비되는 부드러운 하대와 순종의 강요, 끊임없는 요구가 일상화됐고 이는 가정을 비롯한 가장 여린 유치원과 학교에까지 스며있습니다. 개인톡 등을 활용해 더 세밀하고 개인적으로 공격하고 단톡방과 SNS를 무기로 개인의 명예와 존엄을 손가락으로 가루를 만들 수 있잖아요.
우리 사회는 리얼 라이프 빌런이 만든 트라우마가 한 방울 한 방울 더해져 사회의 단단한 단면 이곳저곳에서 둑이 터지듯 사회 문제로 뿜어져 나오고 있는 듯합니다. 은폐술에 실패한 리얼라이프 빌런은 갑질, 혐오, 갈등 유발의 형태로 나타나요. 힘없이 당하기만 한 사람들이 피해사실을 속으로 삼켰지만 결국은 집에서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히키코모리, 가정에 대한 공포가 낳은 일부 비혼주의, 모든 사회 현상에 대한 무관심 등으로 나타나고 있는 건 아닐까요. 누구나 한 번쯤은 만나본 리얼 라이프 빌런은 이렇게 우리 사회 문제의 밑바탕이 됩니다.
사회 곳곳에 숨어있는 리얼 라이프 빌런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인간과 우리 사회에 대한 믿음을 깨트린다는 점입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이런 빌런들을 만나면 사람에 대한 신뢰보다는 의심과 경계의 눈을 먼저 기르게 됩니다. 삶의 의지마저 앗아가는 치밀한 괴롭힘을 당한 후에는 세상을 향한 적대적인 태도로 인생을 살아가게 돼요. 언제나 당하기만 하는 사람보다는 먼저 공격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조직에서 살아남고 성공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거나, 윗자리에 포진한 리얼 라이프 빌런보다 높은 자리에 갈 수 있으니까요. 나 역시 누군가에게 빌런이 되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이 된 겁니다.
오늘 보다는 조금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려면, 우리 사회는 집단적 치유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기본적으로 의심을 하고 시작하는 것보다는 옆 사람을 믿고, 혹시나 피해 입지 않을까 걱정하기보다는 친절할 수 있는 용기를 낼 줄 안다면. '내 만족과 안위' 말고 더 여러 가지 가치를 생각해 보면서 나 스스로에게 잠재된 '리얼라이프 빌런'스러움을 이해하는 과정이요. 나를 치유하고 사회를 치유하는 어려운 걸음을 여러 사람이 보이지 않지만 다 함께 하는 것을 상상해 봅니다.
리얼 라이프 빌런의 목적은 누군가에게 상해를 입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뜻대로 일을 이뤄지게 하는 것 즉, 욕심입니다. 실생활에서 목적을 숨긴 채 무고한 이들을 착취하는 과정에서 지독하게 탐욕적이고 계산적이었던 모습을 내려놓는다면 여러 사람의 삶이 제자리로 돌아올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