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여행할 용기
여행을 가면 나 한 몸 챙기기도 버겁다.
낯선 곳에서 말도 잘 통하지 않고 버스를 타는 것처럼 생활의 기본적인 것부터 우리나라와 다르다.
그런 곳을 안전하게 여행하려면 참 많은 에너지가 든다. 혼자서도 그런데 내가 챙겨야 할 게 나 말고 작고 어린 생명체도 있다면 여행 갈 엄두를 낼 수 있을까?
저녁을 먹고 뮤지컬 '알라딘'을 보려고 공연 시작 30분 전에 공연장 앞에 줄을 섰다.
우리 앞에는 한국인 가족으로 추정되는 분들이 서 계셨는데 구성원은 이랬다. 엄마, 아빠, 초등학생 아이 두 명(한 명은 미취학 아동으로도 보였다). 아빠의 등에는 커다란 배낭이 업혀 있었고, 엄마는 끊임없이 아이들을 살폈다.
그들을 보자마자 남편과 나는 서로 눈이 마주쳤다.
남편과 나는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알라딘을 보고 난 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그 가족 이야기를 나눴다.
"참 좋아 보이더라고요."
"저도 그 생각했어요. 그리고 부모님이 대단하다는 생각도"
우리 둘이 이곳에 오는 것도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숙소며 교통이며 헤매지 않기 위해 이것저것 알아보면서 준비했다.
이곳을 아이와 함께 온다는 건 알아봐야 할 것들이 몇 배로 생기지 않을까? 더 안전하고 더 유익한 경험을 위해 많은 시간을 들여 준비했을 것이다. 우리 같은 서민은 100만 원을 훨씬 웃도는 비행기값을 후덜덜하며 결제하는데 아이들 몫까지 지불하려면 큰 결심을 하고 오는 걸 거다. 돈도 돈이지만 시차나 치안 문제도 걱정에 걱정을 더하며 고민스러웠을 거다.
늦은 저녁 아이들을 모셔(?)와 뮤지컬 한 편 보여주려는 부모님의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졌다. 긴장감 어린 표정으로 핸드폰을 흘깃거리며 표를 확인하는 아빠와 아이들의 조잘거리는 이야기를 들어주며 길가 안쪽으로 아이들을 보내 안전하게 보호하려는 엄마의 행동이 아름다워 보였다.
알라딘은 다시 보고 싶을 만큼 흥미로웠다.
극이라는 장르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표현한 무대 구성과 연출이 카타르시스를 이끌어냈다. 전공이었던 국문과 수업에서 극이라는 장르를 배울 때 관객이 느끼는 카타르시스에 대해 배웠는데 이게 그거구나 싶었다.
어딘가에 앉아서 아이들과 함께 뮤지컬을 봤을 그 가족이 '재미'로 느껴지는 이 카타르시스를 마음껏 느꼈으면 했다. 아이들이 새로운 문화권에서 가족들과 함께 본 이 뮤지컬을 오래도록 기억했으면. 아이들이 자라 아이들의 아이들과 여행을 떠날 때 자신의 부모님을 잠깐이라도 떠올렸으면. '부모님이 힘드셨겠구나'보다 '우리와 함께 여행할 때 행복하셨겠구나' 그렇게 생각했으면.
우리는 그때 그 가족을 아직도 이야기한다.
"우리도 아이 낳으면 같이 여행 가요"
"그래요"
그리고 그 여행은 아주 아주 힘들고, 그 이상으로 행복하리라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