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MAY I 아주머니

수능 영어의 한계를 맛보다

by 김삐끗

10년 넘게 영어를 배웠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학습지 영어를 시작하면서 대학교 2학년 때까지 영어는 늘 한 과목으로서 자신의 자리를 굳게 유지했다. 그런 영어를 본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미국에 간다니 내심 설레기도 했지만 실전 영어는 또 다르기 때문에 조금은 긴장이 됐다.

'좋았어. 이번 기회에 우리나라 영어 교육의 힘을 보여주자'라며 애써 불안함을 감췄다.


시험을 보기 위해서가 아닌 진짜 소통의 도구로 영어를 사용한 건 대학생 때다.

4개월 간 베트남에 한국어 교육 봉사를 하러 갔을 때, 그곳에서 만난 분들과 영어로 소통했다. 나도 그분들도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다 보니 서로 엉망진창 눈치 영어를 구사했다. 계속되는 영어 대화에 매 순간 듣기 평가를 하는 것처럼 스트레스를 받았던지라 영어로 대화해야 했던 프랑스인 친구를 피해 다닌 적도 있다.


미국에서도 짧은 단어들로 소통이야 되겠지만 왠지 멋들어진 문장으로 현지인을 대하고 싶었다. 베트남에서처럼 'I'm fine thank you, and you?' 수준으로 겨우 대화를 이어가고 싶지 않았다. 영어 회화 어플을 깔고 현지인처럼 말하는 방법도 검색하며 조금이나마 공부를 해 갔다.


남편은 일터에서 영어로 거래처 직원들과 소통을 할 정도로 영어를 잘했다.

미국 여행 일정을 남편이 대부분 짰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주로 현지 분들과 소통하는 건 남편이었는데 어느 날 카페에서 나에게 "여보가 커피 주문 해보세요"라고 말했다.


나에게는 이상한 자존심이 있어 남편에게 영어를 못해 쩔쩔매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나도 배운 사람인데 내가 왜 못해?'라는 마음으로 베트남에서의 스트레스를 뒤로 하고 카운터 앞에 섰다.


미국 여행을 하면서 느낀 건 이곳이 다인종 국가라서 그런지 인종이 다르다고 외국인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 아니 정확히 말하면 영어를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어디서나 자비 없이 빠른 속도로 영어를 솰라솰라 말해서 당황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카페에서도 역시 그랬다.


남편에게 "거참 자존심 상하네요. 당연히 주문할 수 있지요!"라며 당당하게 말했던 나는 한없이 쪼그라들었다.


분명히 '주문하시겠어요?'정도의 말이었을 텐데 긴장된 나머지 전혀 못 알아들었다. 조그마한 목소리로 "Sorry?"라고 되물었고 그 직원은 다시 말해주었지만 역시 못 알아들었다. 질문이 뭐였든 냅다 주문을 했고 아쉬운 마음으로 커피를 받아 들었다. 내가 십 년 넘게 배운 영어 교육의 결과가 이런 상황이라니 실망스러웠다.


물론 우리나라 학교에서 배우는 영어에는 회화에만 그 목적을 두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적어도 십 년 넘게 공교육에서 영어를 배웠다면 어려움 없이 카페에서 주문정도는 할 수 있어야 되지 않나 싶다. 내가 당황해서 못 알아 들었을 수도 있고 이 사건 하나로 우리나라 영어교육을 재단할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 영어가 실전에서 역량을 드러내기에 부족하다는 건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어떻게 영어 교육에 접근해야 할까? 영어 교육 전공자는 아니지만 인상 깊었던 경험 하나로 내 자녀에게는 이런 영어 교육이면 좋겠다 싶었던 적이 있다.


뉴욕 치즈케이크는 오랫동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케이크였다.

뉴욕 치즈케이크의 본고장 뉴욕에 왔으니 당연히 뉴욕 치즈케이크를 먹어줘야 한다며 오랜 검색 끝에 한 가게를 골랐다. 파란색 간판에 'Eileens special cheesecake'이라고 쓰여있는 아주 작고 귀여운 가게였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딸기, 초콜릿, 캐러멜 등을 올린 먹음직스러운 치즈케이크들이 놓여 있었다.


종류가 많아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던 중에 스카프를 두른 중년 여성이 출입문을 열고 들어왔다. 우리는 계산대 앞에서 어떻게 먹어야 최선의 조합일지 열띠게 토론 중이었다.

그 아주머니는 우리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아주 우아한 목소리로 "May I~?"라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계산대 앞을 막고 있던 것을 그때 알았다. 수줍게 "Sorry"라고 말하며 얼른 계산대 앞에서 비켜섰다.


솔직히 글로 'May I'를 본다면 수능 공부를 위해 배운 영어가 전부인 나는 무슨 뜻인지 몰랐을 표현이었다. 상황상 "제가 먼저 주문해도 될까요?"였는데 그 목소리가 너무나 우아했다. 여행 다녀온 지 꽤 지났지만 아직도 그 표현을 잊을 수가 없다. 어떤 상황에서 쓸 수 있는 표현인지 몸으로 느꼈다. 그 아주머니가 어찌나 현지인 같은 영어로 말씀하시던지(현지인이었지만) 미국에서 들은 그 어떤 표현보다 강렬했다. May I라는 표현을 보면 아직도 우아한 목소리로 재생된다.


언어를 배울 때 종이 위에 쓰인 단어를 외우고 문법을 익히는 과정도 중요하지만 그 언어를 말하는 실제 상황이 얼마나 중요한 배움의 경험이 되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숙소에 돌아와 치즈케이크를 먹으며 May I 아주머니의 기분 좋은 정중함이 치즈케이크의 밀도 있는 달콤함을 극도로 끌어올렸다. 아주머니의 "여기 치즈케이크는 세계 최고"라는 말씀이 케이크의 데코로 더해져 어디서도 먹을 수 없는 정중한 치즈케이크의 맛을 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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