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만난 사람
“여보, 뉴욕에 아는 동생이 살고 있는데 만나도 돼요?”
“여행까지 가서 아는 동생을 만난다고요?”
“J는 서머힐 졸업생이에요.”
“만납시다.”
남편이 미국 여행에서 아는 지인을 두 팀이나 만난다고 했을 때 살짝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도 같이 아는 지인을 만나는 것도 아니고 남편만 아는 지인을 그 여행이라는 짧은 시간에 만난다는 게 아깝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뉴욕에 있다는 그 동생은 서머힐을 졸업했다고 했다. 서머힐은 나에게 꿈의 학교였다. 대안학교에 관심이 많았고 교사를 꿈꾸던 대학생 때부터도 서머힐이라는 대안학교는 꼭 한번 방문이라도 해보고 싶은 학교였다. 그곳을 졸업한 분을 만난다니 두 팔 벌려 대환영이었다.
서머힐은 자유교육을 실현하는 영국의 대안학교로 우리나라에서 다큐멘터리로도 제작된 적이 있다. 다큐멘터리에서 나온 내용 중 수업을 듣는 것도 학생의 자율적 선택이어서 수업에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그때 당시에 꽤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자유와 더불어 그에 따른 책임도 강조하는 학교여서 학생들이 스스로 규칙을 정하고 그 규칙을 지키는 것에는 엄격하다고 들었다. ‘들었던’ 이야기들을 실제로 경험한 분의 입을 통해 생생하게 진짜 그런지 물어볼 수 있다니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J님을 롱아일랜드 쪽에서 만나기로 해서 우버를 타고 그쪽 동네로 넘어갔다. 미술을 전공하고 있다고 들어서인지 처음 만났을 때 예술가적 분위기가 물씬 느껴졌다. 아는 지인들이 오면 데려간다는 강 근처 공원에 갔다가 추천하는 태국음식점으로 식사를 하러 들어갔다.
남편의 지인을 만나면 괜스레 더 긴장하게 된다.
남편이 괜찮은 사람과 결혼했다는 느낌을 주고 싶어서 더 긴장한다. 이번 만남에서도 역시 그런 부담감을 조금 안고 대화를 시작했다. J님은 지금까지 대화를 나눠 본 분들 중 가장 독특했다. 이렇게 정중하면서도 개성 있고 솔직하면서도 배려가 가득한 대화 태도와 내용은 처음이었다. 그런 대화 태도 덕분에 더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한 부담감을 내려놓고 서머힐 교육에 대해 궁금했던 점들을 마음껏 물어볼 수 있었다.
서머힐 필터가 있어서 그런지 나에게는 J님이 범상치 않았다. J님은 초등학교 때 ADHD 진단을 받으셨다고 했다. 그런 J님을 혼자서 훌쩍 영국에 있는 서머힐 학교로 보낸 J님의 어머님도 대단하셨다.
서머힐은 실제로 수업에 들어가지 않을 자유가 학생들에게 있으며 어떤 수업을 들을 것인지 선택하는 것도 학생들의 자유라고 한다. J님도 수업을 들어가지 않았던 적이 있으며 자신의 모든 행동에 대한 책임은 자신이 진다는 당연하지만 실천은 어려운 말을 매우 신뢰감 있게 했다.
좀 더 자신의 흥미와 적성에 대해 일찍 고민할 수 있다는 게 부러웠다. 학교라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흔들리고 넘어질 수 있는 시간이 충분히 주어진다면 우리나라 청소년들도 조금은 덜 불행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안타까웠다.
학교 현장에서 교사로 근무하며 본 학생들은 입시라는 이상한 목표를 향해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 같았고, 그 과정에서 옆에 있는 친구들, 선생님,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들을 볼 수 없었다. 서머힐의 교육과정은 널따란 초원에서 이것저것 냄새를 맡아보며 자유롭게 뛰노는 말을 기르는 과정이었다.
분명 그 안에서도 문제점은 있겠지만 적어도 그 교육과정의 목표는 학생의 행복에 있었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노력이 엿보였다. 실제 학교 현장에서도 목표에 맞는 교육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우리나라 교육과정의 목표도 표면적으로는 그러하다. 그러나 실상은 학생들에게 어른들이 정한 일률적인 행복의 가치를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주입하고 있다. 모든 학생들을 똑같은 기준으로 줄을 세워 따라오지 못하면 버리는 시스템이라는 걸 아픈 마음으로 경험했다.
J님은 서머힐에서 중학 과정을 졸업했고, 한국 고등학교에 진학했는데 서머힐과 너무다 다른 분위기에 힘들었다고 했다. 질문하는 학생을 교사든 다른 학생들이든 이상하게 바라보고 성적이 최우선시되는 교육환경에 적응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날이 어둑해지고 J님은 우리를 배웅해 주었다. 미국에 있는 미술대학교에 재학 중인 J님은 타지 생활이 녹록지 않지만 잘 견뎌내리라. 2시간 정도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마음이 참 단단해 보였기에 걱정이 되지 않았다. 인생에서 스스로에 대해 고민하고 어려움을 이겨내고 갈등을 풀어내는 경험이 얼마나 사람을 견고하고 단단하게 만드는지 J님을 통해 다시 한번 느꼈다.
그런 교육을 한 번도 받아 보지 못한 나는 진짜 건강한 사람을 만드는 교육을 할 수 있는 교사로 성장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할 것을 다짐한 만남이었다. 뉴욕에서 우리나라 교육을 생각하게 될 줄 몰랐지만 롱아일랜드뒷골목 태국음식점에서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다.
내가 있으니 한국 교육은 조금 더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다는 말을 무모하지만 진심 어리게 남겨본다.
내가 뭐라고.
나 한 명 이런 다짐과 노력한다고 우리나라 교육은 바뀐다. 내가 뭐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