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싸움 곁들인 재즈바 방문기
해가 저물어 뉴욕 도심 빌딩에 하나 둘 불이 켜지고, 핫도그 파는 가게와 푸드트럭들은 진한 원색의 네온사인으로 도시를 화려하게 물들였다.
우리는 퇴근하는 뉴욕 시민들을 지나치며 서로에게 잔뜩 성이 난 채로 뉴욕의 역사 깊은 재즈바 중 하나인 버드랜드로 가고 있었다.
다섯 걸음 앞에 남편이 휘적휘적 빠르게 걸어가고 있고, 나는 그 뒤를 입이 댓 발 나와서 겨우 따라가는 모양새였다.
뉴욕 여행 계획을 세울 때 '재즈바에서 재즈 듣기'는 남편의 버킷리스트였다. 한국에서도 재즈바에 한번 가보고 싶다고 여러 번 말했었는데 우리는 재즈를 즐겨 듣지도 않고, 바에서 마시는 음료 종류가 익숙하지 않아서 가본 적은 없었다. 재즈로 유명한 뉴욕이니 반드시 재즈 공연을 봐야겠다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정말이지 이런 상태로는 낭만적인 재즈 공연을 보기 싫었다.
우리는 숙소를 나서기 전 서로에게 잔뜩 뿔이 난 상태였다. 낮에 3만 보 이상 걷고 숙소로 돌아와 잠시 쪽잠을 자고 일어났다. 꽉 찬 일정으로 피로했다. 평소 강철 체력을 자랑하던 내 몸은 더 이상의 일정을 소화할 수 없다고 아우성치고 있었다.
재즈고 뭐고 한숨 푹 자고 싶었다. 나는 너무 피곤한데 이런 내 상태를 배려하지 않고 내 연인은 일정을 강행했다. 서운했다. 그는 이곳에서의 시간을 그냥 잠으로 흘려보내는 걸 용납하지 못했다.
저 멀리 소박한 버드랜드의 출입문이 보였다. 땅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다리를 간신히 이끌고 공연 1분 전 가까스로 입구를 통과할 수 있었다.
버드랜드는 공연 매회차마다 매진이 될 정도로 인기 있는 재즈바다. 우리도 겨우 마지막 자리를 예매했다.
어둑한 지하로 내려가자 그리 넓지 않은 공간에 앞쪽은 커다란 검은색 피아노와 각종 악기들이 세팅되어 있었고, 커튼에는 버드랜드라는 글씨가 빛으로 표현되어 있었다. 마지막 남은 기둥 뒤 자리에 겨우 앉아 숨을 내쉬었다.
도보 20분 정도의 거리를 달리듯이 온 탓에 숨도 찼고, 서로에 대한 불편함으로 우리 사이에는 서먹한 기운이 맴돌고 있었다. 치킨과 부라타 치즈 샐러드를 주문하고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괜히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재즈바에 앉아있는 손님들은 공연에 대한 기대감으로 사뭇 들뜬 표정을 지으며 같이 온 일행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특유의 낭만적인 분위기가 서먹한 우리들 사이를 스멀스멀 맴돌았다.
남편은 나를 공연이 더 잘 보이는 자리로 앉게 했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예약한 손님이라서 둘 중 한 자리는 기둥에 가려 무대가 잘 보이지 않는 자리였다.
재즈바에서 보는 재즈공연은 남편이 보고 싶어 했던 버킷리스트였다. 그럼에도 남편은 내가 더 잘 볼 수 있도록 나를 무대가 잘 보이는 자리에 앉혔다.
"여기가 더 잘 보여요. 여기 앉아요."
순간 재즈바의 농후하고도 로맨틱한 분위기가 비로소 우리에게 스며들었다. 이어서 시작한 재즈 공연의 리듬은 다정한 남편의 말 한마디와 어우러져 잔뜩 뿔이 난 채 서먹했던 감정을 차츰 밀어냈다.
재즈는 그저 우리의 배경음악이었다. 그곳에서 느낀 진한 감동은 재즈보다 연인의 배려였다.
공연이 끝나고 어둑한 밤거리로 나왔다.
이 일정을 강행한 남편의 마음이 이해가 됐고, 이런 멋진 공연을 놓치지 않게 해 준 남편에게 고마웠다.
좋은 자리를 양보하는 그의 따뜻한 마음이 나의 차가운 서운함을 사정없이 녹여버렸다.
서로 멀찍이 떨어져 휘적휘적 걸어왔던 길을 공연이 끝나고 난 뒤에는 손을 꼭 잡고 나란히 걸어갔다.
혼자였다면 분명 포기했을 공연이었다.
어느 때보다 잘생긴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재즈바에서 들은 가수의 리드미컬한 목소리가 뉴욕의 밤거리로 우리를 흡수했다. 또 한번 우리는 부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