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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환 Oct 25. 2020

동네 해장국집을 통해 깨달은 '진정성'

우리 동네에는 진짜 해장국집이 있다.

한 번은 언급이 필요할 것 같아서, 원래 글 서두에 본문과 크게 상관없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데 오늘은 몇 자 적어야 할 것 같다.


우리 집은 아이가 둘이다.

하나는 날 때부터 네발로 걸어 다니는, 뚱뚱할 때는 2.5kg, 말랐을 때는(거의 없지만) 2.2kg 정도 나가는 요크셔테리어라는 품종의 동물 아이고, 하나는 네발로 기어 다니다가 언제부터인가 두발로 걸어 다니며 나에게 이것저것 참견하고 잔소리하기 좋아하는 사람 아이다. 각각 가족이 된 순으로 '첫째', '둘째'라 부른다.


내가 한 해에 지각을 한번 할까 말까 한 이유는 다 첫째 때문이다.

평소 6시에서 7시가 되면 밥 달라고 나를 깨운다. 가족 중에서도 꼭 나다. '필사적'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매일 아침 첫째를 통해 배운다. 낑낑대거나 툭툭 치다가 그래도 내가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내 가슴 위로 '점프'를 한다. 2.5kg라곤 해도 뛸 때의 충격은 2~3배가 된다고 하니 5~7kg 되는 물체가 가슴을 내려치는 상황이다. 아무리 깊은 잠에 빠져 있더라도 놀라 잠에서 깰 수밖에 없다.


여름이면 날이 빨리 밝아져 더 일찍 깨운다.

개는 휴일 개념이 없으니, 출근을 하지 않는 주말에도 예외가 없다.


첫째가 이런 세상 슬픈 표정으로 아침밥을 청하면, 누워있을 수가 없다.


전날이 한글날이라 세종대왕님께 감사한 마음과 한글 창제를 축하한다는 뜻에서 집에서 술 한잔 한 하고 잠든 터였다.(물론 그냥 먹고 마시고 싶어 마셨다.) 나는 첫째의 도움(?)으로 토요일이었지만 6시 반에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잘 수도 있었는데 그날따라 왠지 해장국이 먹고 싶어 졌다. 대충 세수를 하고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는 떡진 머리를 가려줄 모자를 눌러쓰고 집을 나섰다.




우리 동네에는 24시간 해장국집도 여럿 있지만, 나는 그 해장국집에 가기로 마음먹고 발길을 잡았다.


흔한 선지 해장국을 파는 테이블 예닐곱 개, 그것도 좌식 테이블뿐인 작은 가게인데, 이 집을 진짜 해장국집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해장이 필요한 시간에 해장국만 파는 가게


첫째, 메뉴.

이 집은 메뉴가 7,000원짜리 해장국 단 하나다. 해장국 밖에 팔지 않으므로 해장국집이라 불릴 수밖에 없다.

유명 해장국 전문점이라고 하더라도, 콩나물이나 황태해장국을 선택할 수 있다거나 보쌈, 전을 같이 파는 등 여러 메뉴를 취급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이건 여러 음식을 파는 데 그중에 해장국이 유명한 집인 것이지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해장국집은 아니다. 그런 면에서 내가 다녀온 해장국집은 진짜 해장국집이다.


둘째, 해장술.

내가 방문했던 그날도 토요일 아침 7시였는데, 대여섯 테이블 중 2 테이블 위에는 술병이 올라가 있었다.

술을 깨러 갔는데, 속이 풀리는 동시에 다시 술이 당긴다면 그 얼마나 해장 효과(?)가 뛰어나단 말인가?

등산을 벌써 다녀와서 마시는 것인지, 아니면 등산을 가기 위해 속을 채우러 들렸다가 등산은 포기하고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과 아침식사 겸 술을 하러 오신 건지 모르겠는 어르신들과 전날부터 술을 마신 것 치고는 멀쩡해 보이는 술 마시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술 한잔에 취하고, 해장국 한 모금에 깨고. 무슨 '영구기관(永久機關, Perpetual motion machine)처럼 무한이 반복되는 애주가의 염원은 아니겠지만, 테이블 위에 올라간 술이 그냥 술이 아니라 '해장술'이라고 지칭된다면 분명 해장국 집이 맞다.


셋째, 영업시간.

그 해장국집의 영업시간은 새벽 3시~오후 3시까지다. (지금은 코로나로 인해 영업시간을 더 줄인 것 같다.)

다른 음식점들 영업하는 시간과는 반대다. 새벽 3시부터 문을 여는 식당이라니. 내가 아는 한 새벽 3시부터 수요가 있을법한 음식은 해장국 밖에 없다! 이 얼마나 진정한 해장국집에서나 있을법한 영업시간인가.


이런 이유로 나는 이 해장국집을 진정한 해장국집이라고 부른다.

'진정성'은 표현되고 누가 보듯 '그렇구나!'라는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때는 참 고마웠었어요."

"언제?"

"OOO 서비스 오픈할 때요. 새벽에 왔다 가셨을 때."


술자리에서 이런 이야기 중에 후배가 한마디 이야기를 건넨다. 잊고 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한 번은 여러 이슈로 오픈이 지연된 프로젝트에서 진행했던 PM(프로젝트 매니저)을, 일정상 어쩔 수 없이 다른 프로젝트에 투입하게 되어 오픈 작업을 다른 후배에게 맡겨야 되는 상황이 생겼다.

새로운 서비스를 오픈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일을 진행해오던 PM이 오픈을 지휘해도 힘든 판인데, 전후 사정을 모르고 들어온 새로운 PM이 진행하자니 얼마나 힘들겠는가?

나는 다른 파견지에서 다른 프로젝트로 밤을 지새우고 있었지만, 난감해하고 있을 후배가 자꾸만 신경 쓰여 잠시 택시를 타고 다녀온 적이 있었다.

가서 특별히 일을 도와주거나 한 기억은 없다. 주요 이슈사항이 뭔지 이야기를 좀 들어주고 이러한 상황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일에 대해 설명과 이해를 부탁하고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다독거려주고는 다시 원래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곳으로 돌아왔던 것 같다.


벌써 거의 10년 가까이 지난 일이지만, 후배는 기억하고 있던 것 같다. 내가 진심으로 마음을 쓰고 있고, 미안해하고 있었던 것을. 아마도 당시 내가 택시비를 아꼈다면, 없는 시간이지만 가서 표현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이다.




가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주요 등장인물들이, '그때 왜 내가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을까', '왜 좋아한다 말하지 않았을까.', '왜 내 마음을 몰라줄까.' 등의 장면들이 많이 나온다.

특히 이해가 안 되는 것은 표현하지도 않았는데, 왜 몰라주는지 상대방에게 아쉬워하는 대목이다.

말을 해도 진심인지 아닌지 의심 먼저 하게 되는 마당에, 말도 하지 않고 상대방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은 무슨 생각인가 싶다.




진정성은 마음에 품고 있어 자기만족에 그칠 것이 아니라, 표현하고 겉으로 드러내야 비로소 완성된다.

설사 가게 간판이 없더라도(물론 간판은 있다.), 위와 같은 방식으로 영업을 하는 집이라면 누구나 '진정한 해장국집'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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