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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환 Nov 29. 2020

PC통신 시절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사람

살면서 고마웠던 사람들을 떠올리며

PC통신 시절.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밤마다 부모님 몰래 전화선을 PC에 연결하여 당시 'ketel(케텔)'(한국경제신문사에서 시작한 PC통신 서비스, 이후 한국통신에 인수되어 'hitel(하이텔)'로 이름이 변경됨)에 접속하여 온라인에서 새로운 친구들도 사귀고, 정보를 얻으며 즐거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지금은 인터넷이 보편화되어 많은 커뮤니티, 소셜 서비스들을 통해 전 세계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천리안', 'ketel' 등의 메인 시스템에 접속하여, 그 속에서의 사람들만 서로 정보를 공유하거나 활동을 할 수 있었다.

서비스 초기엔 온라인 가입 절차가 없어서, 처음 아이디를 신청하러 '한국경제신문사'에 방문했던 기억이 난다. '네이버'에 가입하기 위해 네이버 본사를 방문했다는 이야기인데, 지금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모든 기능이 텍스트로만 이루어져 있었고 가능했다.

동호회, 게시판, 채팅 등 여러 가지 기능이 있었고, 텍스트로만 되어 있는 화면들이었지만, 모뎀 속도에 따라 눈으로 따라가며 읽을 정도의 속도로 화면이 그려지곤 했다. 이 또한 무선으로 5G가 지원되는 시대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ketel(케텔) 초기화면(출처 : 위키백과)


질문/답변 게시판에 누군가 질문을 올리면 다들 친절하게 가르쳐주는 분위기였고, 팁을 올리는 게시판에는 저마다 나름 자신의 전문분야와 공유하면 좋을법한 자료들을 많이 올렸다. 익명성이 있었으나 따뜻한 분위기였던 것 같다. 그때 만났던 친구 몇 명과는 지금까지도 연락을 주고받고 가끔 만나며 그때 시절을 회상하곤 한다.


한 번은 게시물에서 어떤 내용을 깔끔하게 표로 만들어 올린 것을 확인했다.

텍스트로 표를 그린다고 상상해보자. 얼마나 시간이 걸리겠는가? 그 일을 해가며 규칙적으로 글을 자주 올리는 사람은, 뭔가 정성이 넘치거나 요령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메일로 팁을 물어봤던 것 같다.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는데, 친절한 메일과 답변이 돌아왔다.

당시 한글(HWP) 워드 프로세서에 텍스트 파일로 저장을 하면 표까지 텍스트 방식으로 변환해 준다는 이야기를 해줬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나한테는 인연이었는데, 그분한테는 그냥 질문 많고 귀찮은 동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 여러 가지 궁금한 점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질문을 하고 답변을 해가며 연락을 주고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는 당시 대학생이었고, 이공계열을 전공하고 있다는 정도로 기억한다.


어느 날 메일이었는지 채팅이었는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영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어 더 이상 PC통신에 접속할 수 없을 거라 이야기했다. 지금이야 인터넷으로 전 세계의 네트워크가 연결되어 있어서 해외라 국내 서비스에 접속을 못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당시엔 몇몇 기업들만이 전용선이 설치되어 바로 접속할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반 사용자들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메인 서비스에 전화선 등으로 전화를 걸어 접속하는 방식이라 해외에서 접속을 하기 위해서는 국제전화로 국내에 전화를 걸어 접속해야 했기 때문에 이용이 불가능했었으리라.

많이 서운했고, 아쉽게 마지막 인사를 나눴던 것 같다.


예나 지금이나 모르는 사람이 이것저것 귀찮게 물어보는 것들을 오랜 시간 받아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가끔은 오지랖 소리를 듣기는 하지만, 현재 나의 다른 사람들 돕기 좋아하고 무엇이든 좋은 내용이 있으면 알리려고 하는 성격은 그때 형성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의 아이디는 'cody(숫자 한 자리)'였다.

내 아이디는 가물가물 할 때가 있지만, 그분의 것은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

기억나는 고마웠던 사람들 중 한 명이다. 어딘가에서 잘 지내고 계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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