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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환 May 07. 2022

PM의 아내

잠꼬대로 시작된 새로운 출발

집에 돌아오면 아이가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나는 회사에서 있던 일들을 이야기하게 된다.

연애시절부터 그런 남편과 오래 함께한 아내는 어지간한 IT용어며 내가 하는 업무를 제법 잘 알아듣는다.


제안서를 쓰고 있다고 하면 제출이나 PT가 언제인지 물어보기도 하고, 수개월 짜리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경우 1~2개월 차에는 대략 업무를 분석하기 위해 담당자들과 미팅을 자주 하겠거니, 막바지에는 테스트를 할 때라 여러 TF 원들과 옥신각신하고 있겠거니 등등 딱히 말을 하지 않아도 내가 어떤 일과를 보내고 있는지 상상이 가능한 것 같다.


프로젝트에 이런저런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를 하면, "빨리 OO 할 수 있는 사람 알아봐서 더 투입해야겠네."라고 훈수를 두기도 하고, 중반 이후에 새로운 요구사항 때문에 정신이 없다고 말하면, "이미 설계는 끝났을 거 아냐?"라며 뜨끔해지게 한다.


가끔은 내가 감기 몸살 등으로 아파서 출근을 못할 때, 나 대신 출근을 해도 웬만큼(?)은 내 일을 대신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얼마 전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아내가 갑자기 일 얘기를 꺼냈다.


"너 혼자 잘한다고 해도 안될 일이 되지는 않아."

"나는 내가 더 잘해서 안될 만한 일을 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실수하거나 잘 못 해서 될 일도 안될까 봐 걱정하는 거야. ... 그런데 아침부터 뭔 얘기야?"

"너 밤새도록 잠꼬대했어."


전에 없던 규모에 여러 이슈가 많은 프로젝트를 1년 가까이 진행해 왔다. 잠꼬대를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자면서까지 일에 관한 꿈을 꾸는 남편을 보는 아내의 심정은 어땠을까?


내가 일 하는 것에 대해 별 말하지 않던 아내는 이후 종종 내가 피곤해할 때는 다른 일을 해보라는 이야기를 했다.

결국 아내와 상의 끝에 회사를 떠나기로 했다.

더 이상 대행으로써 프로젝트를 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그런 일을 업으로 하는 회사를 그만두는 것이다.

다행히 걱정한 것처럼 내가 퇴사를 했어도 회사는 망하지 않았고, 나도 멀쩡하게 살아 있다.




아내와 아이가 동시에 코로나에 걸려서 한동안 따로 잠을 잤더니, 다른 방에서 혼자 잠을 자는 것이 익숙해졌다. 가족의 코로나 격리 기간이 끝난 뒤에도 혼자 자기도 하고, 같은 방에서 자기도 한다.


"아빠, 오늘은 같이 잘 거야?"

"아직 생각 안 해봤는데?"

"아빠 요즘엔 잠꼬대 잘 안 해."


그동안 아이도 내 잠꼬대에 몇 번 잠이 깼던 것 같다.

아내에게 물었다.


"그런데, 내가 잠꼬대할 때, 일 때문인지 그냥 일상 꿈꾸는 건지는 어떻게 알아?"

"밤새도록 '개발'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데 어떻게 모를 수가 있냐!"




'결혼', '이혼', '출산', '육아', '시댁', '긴 여행', '이민', '입사', '이직', 그리고 '퇴사' 등, 브런치에 자주 올라오는 소재들이 있다. 주로 인생에서의 큰 변화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이런 일이 있을 때, 사람들은 생각하게 되고 글이 좀 더 써지는 것 같다.


브런치에 글을 써오면서, 오랜만에 쓰는 글의 글감이 내 '퇴사'가 될 줄은 몰랐다.

곧 새로운 '모험'에 관한 이야기들을 쓸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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