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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어 Nov 17. 2021

감정은 재개발 불가

- 그립지만 만나고 싶지는 않아

어렸을 때, 나보다 2살이 많은 동네 누나를 좋아했다. 키 크고, 날씬하고, 긴 머릿결에 피부가 하얀 누나였다. 


웃을 때 양쪽 입가에 보조개가 생겼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예뻤다. 성격은 차분하고, 상냥했다. 나의 이상형이었다.


어린 나이여서 내가 좋아한다는 것을 누나가 눈치챌까 봐 조마조마했다. 


그러던 어느 날, 누나 가족이 우리 집과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왔다. 우리 집 맞은편에 있는 집이었다. 그날부터 매일 누나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마음이 설레고, 가슴이 쿵쾅거렸다. 


창문이 활짝 열려있을 때, 누나의 모습이 보였다. 우리 집과 누나의 집 사이에는 공터가 있어서 10여 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라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다. 


누나라는 것과 어떤 색깔의 옷을 입었는지 정도만 알 수 있었다. 그래도 마음이 설렜다.


누나가 학교에 가는 시간과 집에 오는 시간이 되면, 나는 만사 제쳐놓고 창문 앞에 섰다. 혹시라도 누나가 나를 쳐다볼까 봐 몸을 숨긴 채 건너편을 응시했다. 


거의 매일 제시간에 맞춰 누나는 창문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저 방 안을 왔다, 갔다 하는 것일 뿐인데도 그 모습을 훔쳐보는 게 즐겁고, 행복했다. 


가끔 엄마가 분위기를 깼다.     


“뭐해?! 얼른 두부 좀 사 오라니까!”

"콩나물 사 오라고 한지가 언젠데 여태 안 갔어?!"


그날부터 두부와 콩나물이 싫어졌다. 그날부터 밥상에 두부와 콩나물이 올라오면 반찬 투정을 했다.



엄마보다 더 야속한 것이 있었다. 겨울이었다. 겨울이 되면 창문이 항상 닫혀 있어서 누나를 볼 수가 없었다. 봄이 빨리 오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어둑어둑한 저녁, 학교에서 돌아온 누나가 방에 불을 켰을 때, 창문에 비친 그녀의 형체는 볼 수가 있었다.


그 모습이 꽤나 묘했다. 실물이 아닌 그림자라 신비로운 분위기까지 자아냈다. 특히, 누나가 옷을 갈아입는 모습은 넋을 빼놓을 만큼 황홀했다. 


어린 나이여서인지 그때 성적인 자극이나 쾌감은 없었다. 그저 누나의 몸짓 하나, 손짓 하나를 볼 수 있다는 것에 만족했을 뿐이었다.


그것도 관음증이었을까. 법적으로 문제가 되고, 비난받을 일이라면 모두 인정하면서 받아들일 수밖에...



몇 년 후, 동네가 재개발되면서 우리 가족이 이사를 가게 돼 더 이상 누나를 볼 수 없게 되었다. 


오랜 세월이 흘러 이제는 누나의 얼굴이 생각나지를 않는다. 누나가 보고 싶다거나 만나고 싶은 생각도 별로 없다. 


이제는 아련한 추억과 그리움이 그 시절 누나의 청순했던 외모만큼 아름다우니까... 


이 감정은 재개발이나 리모델링을 하지 않아도 영원히 낡지 않은 채 아름다움을 계속 유지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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