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관과 운동은 내게 햄버거와 감자튀김 같은 관계다.
빠지면 안 되고, 또 없으면 아쉬운 존재.
어쩔 수 없이 인공적인 약물을 주입하면서도, 내 몸을 아끼고 사랑하는 방법으로 운동을 선택했다. 어쩌면 일종의 죄책감을 씻어내는 방식이었는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필라테스로 시작했다. 그다음엔 요가를 거쳐 지금은 수영과 러닝에 정착했다.
시험관 시술은 크게 세 단계로 나뉜다.
난포를 키우는 시기
채취
채취 후 휴식 혹은 이식
문제는 이 일정이 늘 랜덤이고, 각 단계마다 무리한 운동을 피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필라테스나 요가를 중간중간 멈출 수밖에 없었고, 그럴 때마다 수십만원의 수강료가 아깝게 느껴졌다.
반면 수영은 다르다. 한 달에 6만 원 남짓이면 언제든 갈 수 있고, 계절에 상관없이 즐길 수 있다. 러닝은 더 간단하다. 운동화 한 켤레만 있으면, 어디서든 뛰어나갈 수 있는 가장 경제적인 유산소 운동이니까.
나는 수영을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수영을 하다 보면 단순한 운동을 넘어, 인생 수업을 듣는 기분이 든다. 시험관을 겪으면서 괜히 철학적으로 변한 건가 싶다.
웃긴 건, 대학 졸업 이후 이렇게 뭔가를 ‘배운다’는 게 오랜만이라는 점이다. 네 살짜리 꼬마가 처음 자전거를 배우는 기분이랄까. 설레고, 낯설고,,, 어쩐지 내가 좀 귀여운 것 같다.
자유형, 배영, 평영, 접영… 영법들을 하나씩 터득해가며, 나보다 훨씬 어린 선생님이 “그렇지!” “좋아요!” 라고 말해주는데, 이게 또 묘하게 중독적이다. 계속 듣고 싶어서 더 잘하고 싶다.
칭찬을 그렇게 들어본 게 언제였더라? 그냥 ‘좋다’는 수준이 아니라, 속에서 뭔가 터져 나오는 벅참이 있다.
시험관을 하며 실패와 좌절이라는 감정에 익숙해져 있던 나에게, 수영은 다시 시도하는 힘을 가르쳐줬다. 안 되면 또 하면 되고, 물 먹으면 좀 어때? 다시 해보면 되지!
그렇게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마음에도 근육이 붙기 시작했다.
‘많이 넘어져본 사람만이, 다시 일어나는 법을 안다’는 말도 있지 않는가.
아무 소리 들리지 않는 고요한 물속에서, 오직 내 호흡에만 집중하는 순간.
가라앉지 않기 위해 첨벙첨벙 발차기를 위아래로 해대는 순간.
그렇게 나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현재에 집중한다.
아, 그리고 내 작가 닉네임이 ‘김생수’다.
늘 물이 부족한 사주라는데, 그래서일까? 수영은 마치 내 부족한 기운을 보충해주는 최고의 운동 같다. 이름값 하느라 물속에 들어가는 기분이랄까.
수영 없는 하루, 이제는 상상 불가다.
No swim, no 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