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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영 Nov 16. 2024

음덕양보, 인간이 아름다운 이유

내가 쌓은 선함은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내게 돌아온다.

 지난 회차에서 덕이 있는 사람이 외롭지 않다는 뜻을 가진 성어에 대해 설명했는데, 아마도 이번 이야기도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가 될 듯하다.

  올해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아 이런저런 보고서를 쓰며 하루를 보냈다. 한 해 동안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되짚어 보다가 마음이 따뜻해지는 작가 두 분의 강의를 들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제 살길을 찾는 것만으로도 숨이 찰 정도로 힘들고 각박한 세상에 우리는 나의 이익에 앞서 남을 생각한다는 게 쉽지 않다. 그렇기에 그런 선한 이의 사연을 접했을 때면 더 묵직하고 또 마음 깊숙한 곳까지 감동이 스며든다. 그 두 분의 강의가 그랬다.


 처음 만난 작가는 김동식작가였다. 학교 도서관 행사로 오셨는데, 초단편 소설집으로 이미 유명세를 탔던 분이라 학교에 강연을 오시는 것만으로도 제법 설레었다.

 작가의 강연을 듣기 위해 그 작가의 책을 읽는 것은 당연했기에, 나는 내가 읽어보지 못했던 그의 첫 에세이 <무채색 삶이라고 생각했지만>을 읽었다. 그의 초단편들은 진즉에 다 읽었으므로.

 에세이는 일기와 같다. 그 사람의 삶과 가치관과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에 그의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내가 에세이를 쓰는 것보다 소설을 쓰는 것을 더 편하게 여기는 것도 아마 이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꽁꽁 숨겨두었던 내 부끄러운 마음까지 적나라하게 내보이는 것만 같아서. 

 어쨌든 그 책을 읽는 내내 생각했다. ‘참 선한 사람이구나.’라고.

 에세이 속 작가는 손해를 보는 게 남의 것을 뺏는 것보다 낫고, 남을 짓밟고 일어서는 것보단 차라리 무시당하는 게 마음이 편하다고 여기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작가의 강연을 직접 듣게 되었을 때, 역시나 에세이를 읽고 느꼈던 감정을 똑같이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이 어떤 자리에 있든 최선을 다해 살아왔고, 때로는 호구라는 소리를 들을 지인정 어디에서든 제 몫 이상의 노력을 해오며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의 글쓰기에 대한 태도도 그의 삶의 태도와 맥락을 같이 했다. 게시판에 글을 쓰고 댓글에 코멘트를 달며 성장했다. 심지어 기분이 나쁠 법한 댓글에도 제 글을 돌아보고 성장하는 원동력으로 삼았던 것이다.

 그렇게 게시판의 글들이 책으로 탄생된 얘기를 하며, 마지막까지도 자신은 거절을 잘 못하는 사람이라는 말과 함께 아이들의 어찌 보면 쓸모없을 것 같은 질문조차도 정성스레 대답해 주셨다.

 아이들이 그 작가를 보며 하나만큼은 얻어갔으면 싶었다. 한 번쯤 양보를 해도, 손해를 보아도 괜찮다고, 착하게 사는 게 그렇게 바보 같은 것만은 아니라고. 


  한 달쯤 후에 두 번째 작가를 초청했는데, 그는 에세이집 <당신이 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의 김민섭 작가였다. 나는 김동식작가에게서 느꼈던 그 느낌을 김민섭작가에게서도 또 똑같이 느꼈다. 

 자신을 대신해서 일본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는 똑같은 이름의 김민섭을 찾아 나선 ‘김민섭 찾기 프로젝트’는 많이 알려져 있는 이야기이다. 비행기 티켓 한 장을 누군가에게 선물로 주겠다는 작은 마음은 사람들의 선한 마음이 더해지며 부피를 키워 김민섭이라는 동명이인을 가진 또 다른 사람에게 최고의 선물을 선사하게 된다

  그 작가가 직접 이야기해주는 김민섭 찾기의 사연도 감동적이었지만, 작가의 이야기 속에 담긴 삶의 방식과 태도에 큰 울림을 느꼈다. 

 그도 선함의 영향력을 믿는 사람이었다. 누군가 조건 없는 선함을 베풀면, 그 선함은 마치 공기처럼 인지할 새도 없이 조용히 사람들에게 번져 나가  또 다른 곳에서 선함의 싹을 틔우는 것이다. 

  김민섭 작가의 작은 선행은 부피를 키워갔고, 작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의 삶의 태도를 바꾸어 버린 듯 보였다. 김민섭 작가는 그 일로 인해 유명세를 타고, 그렇게 얻은 수익을 결코 개인의 이익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작은 재단을 마련해서 그곳에 쓰이도록 했고, 아이러니하게도 생활비를 벌기 위해 종종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한다는…….

 

그리고 놀랍게도 김민섭 작가와 김동식 작가가 큰 인연으로 연결된 사이임을 알게 되었다. 김동식 작가에게 책을 내보겠냐고 연락을 한 사람이 김민섭 작가였다는 것이다. 

 아마도 선함은 어떤 자석과 같은 힘을 가지고 있어서 자신과 같은 선한 이들을 끌어들이는 게 아닐까?


 덕이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주위에도 자신과 같은 생각을 공유하고 같은 가치관을 가진 덕이 있는 사람들이 모이게 되는 것이다.

 마치 선하게 살아온 김동식 작가에게 손을 내민 김민섭작가처럼 말이다. 

 아마도 그 두 사람은 각자의 자리에서 나름의 선함을 쌓아왔기에 생각지도 못한 어떤 방식으로 그 보답을 받은 게 아닐까?

 그래서 오늘은 '음덕양보'라는 사자성어를 소개할까 한다. 



 '음덕양보'는  '남 모르게 덕행을 쌓은 사람은 뒤에 그 보답을 받게 된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음덕양보의 유래는 아래와 같다.

 중국 춘추시대의 주나라 때 손숙오라는 이가 있었다. 

 그가 어렸을 때 밖에 나가 놀다가 어떤 일을 겪고 근심에 쌓여 밥도 먹지 못한 채 울고 있었다. 

 그의 어머나가 이유를 묻자 손숙오가 말했다.

 ‘제가 오늘 머리가 둘 달린 뱀을 보았습니다. 머리가 둘 달린 뱀을 보면 죽는다고 하니, 아마도 저는 곧 죽을 것입니다.”

 어머니가 머리가 둘 달린 그 뱀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물었다.

 “그 뱀을 또 다른 사람이 보면 죽을까 걱정이 되어서 제가 죽였습니다.”

 그러자 어머니가 말했다.

“은밀히 덕을 닦아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은 그 보답으로 복을 받는다고 들었다. 네가 다른 사람을 생각해서 뱀을 죽인 것은 음덕이므로, 그 보답으로 너는 죽지 않을 것이다.”

과연 그의 어머니 말대로 그는 죽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훗날 초나라에서 재상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된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 선한 사람은 복을 받고 악한 사람은 반드시 벌을 받는 것만은 아니라고, 주위를 둘러보라고, 이기적이고 악한 마음을 가진 이들이 얼마나 잘 살고 있느냐고.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세상의 수많은 선한 이들이 있기에 인간이라는 존재의 가치가 더욱 빛나는 것이며, 

우리가 선함의 영향력을 믿기 때문에 인간다움을 고귀하게 여길 수 있는 것이라고.



陰德陽報(그늘 음, 덕 덕, 볕 양, 갚을 보) : 남 모르게 덕행을 쌓은 사람은 뒤에 그 보답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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