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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화동오로라 Dec 23. 2023

신혼생활인가, 전지훈련인가



12월 22일 금요일, 오늘까지만 춥다고 하니 금요일을 잘 보내고 주말과 성탄절까지 이어진 3일의 연휴도 잘 보내야지 생각했다. 한파와 밤 10시까지 수업이지만 아주 기분 좋게 가방 메고 집 밖으로 나간다.  버스정보를 확인했고 3분 뒤 도착, 첫 수업시간까지 촉박해서 조금 서둘렀다. 현관에서 구둣주걱으로 운동화를 신으려는데 잘 안 신겨진다. 허리를 구부려 운동화를 신다가 허리를 '뜨끔' 했다.


큰. 일. 났. 다.


 수업은 꼭 가야 하는데! 학부모님들께 내 사정으로 갑자기 수업을 취소하는 건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인데!! 금요일 집에서 쉬는 건 내 계획과 일정에 없는 일인데!!!  정신을 차리고 심호흡을 한다. 잠깐 아픈 거일 수도 있으니 가방을 잠시 내려놓고 허리를 이리저리 움직여보고 간단한 운동도 해본다. 더 악화되는 느낌에 포기하고 어기적어기적 집으로 다시 들어왔다. 소파에 누워 잠시 놀란 허리를 달래며 쉬는데 머리는 바쁘게 돌아간다. 10개의 수업.. 다 취소하기는 보강을 정하기가 부담이다. 앞에 2-3개만 취소하고 나아지면 오후수업이라도 해야지 마음먹는데 나아지지 않은 허리 상태에 결국 일일이 전화를 드려 모든 수업을 취소했다. 

 (괜찮다고, 선생님 건강이 우선이라고 내 걱정부터 해주신 학부모님들.. 이런 이벤트가 없었더라면 이렇게 따뜻하고 좋은 분 들이신 줄 모를 뻔했다. 정말 감사하다!)


 토요일에 건강검진도 있고 오후에 대학동기들과 중요한 약속도 있다. 허리가 아픈 거보다 연말에 다쳐서 집에만 있어야 하는 생각에 너무 속상했다. 소파에 누워있는데도 빨리 나을 방법을 찾는다. <추운 날 허리통증>을 검색해 본다. '날이 추워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못하고 관절이 뻣뻣해져 통증이 심해진다. 추운 날씨에 몸을 충분히 풀지 않은 상태에서 허리에 무리한 힘을 가하면 통증이 심화된다.' 오늘의 내 상황을 적어놓은 듯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충분한 움직임 없이 출근 준비에 바빴고 아이들 수업재료와 하루동안 마실 물과 커피를 담은 가방이 구부려진 내 허리를 한껏 눌렀고 날도 추워서 그간 약화 되었던 허리가 탈이 난 것 같다. 


 응급처치와 대처방안으로는 냉찜질과 이완이 있다. 시키는 대로 해본다. 생활 체육 지도자 자격증을 보유하고 트레이너 일을 했고 헬스장도 운영했던 남편의 도움을 받아 이완과 강화 훈련도 한다. 계속 누워 있는 것보다는 오히려 자꾸 걷고 강화시켜주는 게 도움이 된다고 한다. 나는 오늘 다친 환자인데 왜 바벨을 들고 있지? 평소보다 더 난이도 있는 운동을 왜 하고 있는 것이지? 약화된 허리 대신 다른 근육들이 더 힘을 쓰느라 온몸에 알이 배긴다. 아프고 쉬고 싶다고 남편에게 말해보지만 소용없다. 하루동안 집안을 걷고 덤벨을 들고 운동했다. 그래도 남편이 시키는 운동을 군말 없이 하는 건 일 년에 한두 번 다친 허리가 남편의 여러 가지 처치로 2-3일 만에 낫기 때문이다. 


 내 허리 통증은  3년 전 명절에 문경에서 전을 부치면서 시작되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전 부치기 전 카페에서 3-4시간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장시간 구부정한 자세에서 시작되었다. 불편한 느낌이 있었지만 자세를 바르게 하기보다  이리저리 자세를 바꿔 앉는 정도였다. 

 동생네 부부가 도착했다는 소식에 카페에서 일정을 마치고 음식 장만을 시작했다. 점입가경으로 바닥에 앉아 장시간 음식을 만들었고 명절음식을 다 만들고 바닥을 딛고 일어서려는데 생전 처음 느껴보는 허리 통증에 중간쯤  일어섰다가 '악' 소리를 지르며 그대로 다시 엎드렸다. 식은땀이 났고 몸 전체에 힘이 다 빠져서 큰 호흡을 내쉬며 허리통증을 참아냈던 강렬한 기억이 있다. 엄마와 아빠, 동생과 제부가 달려와 내 상태를 살폈고 제부는 베개를 가지고 오며 오금 뒤에다가 대고 있으라고 했다. 진정이 되고 나서도 어떤 자세나 무게중심에 따라 아픈 부위가 느껴졌다.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남편의 스파르타 허리 강화훈련! 평소에도 운동을 시키는 남편 덕분에(?) 하루에 꼭 해야 할 운동 분량을 해야 한다. 1시간 산책 (빠르게 걷기), 스쿼트, 푸시업, 철봉 매달리기, 철봉 매달려서 다리들 올리기. 피곤해도 꼭 해야 한다. 째려봐도 소용없고, 드러누워 떼를 부려도 소용이 없다. 결국 나는 조용히 입 다물고 시키는 대로 한다. 덕분에 기침이나 감기 잔병치레도 없었고 약화된 허리도 좀처럼 다치는 일이 없었다. 남편은 오늘 허리 통증은 어쩔 수 없는 사고라며 지금 그리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을 하자고 한다. 그리고 중량 스쿼트를 하자며 20킬로 덤벨을 알아보는 중이다. 


나는 남편과 결혼을 한 것인가, 감독과 계약을 한 것인가..  이곳은 신혼집인가, 기숙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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