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윤미 Dec 09. 2021

[디카시] 낯선 어제

그 때 놓쳤던 풍경이 오늘 아름답다


낯선 어제     


출렁이는 흔들다리를 지나

아직 덜 건넌 이들을 바라본다      


푸른 소나무 사이로  

해를 품은 바다가 낯설다      


그때 놓쳤던 풍경이 오늘 아름답다








흔들다리를 건너보자는 아이들이 아니었다면 아마 건널 일이 없었을 흔들다리 앞에 섰다. 놀이기구를 전혀 못타는 나는 놀이동산에 들어갈 때도 입장권만 끊는 사람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흔들거리는 울산 동구 바닷가에 설치된 흔들다리는 정말 내 취향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들과 나온 이상 내 취향을 뒤로하고 아이들의 마음을 맞춰주는 편이 행복한 외출을 만드는 지름길이었다.


울며 겨자먹기로 아이들의 손을 붙잡고 건너는 동안, 흔들림이 무서운 아이들은 내 다리를 붙잡고 징징거리기 시작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나도 무섭다며 울고 싶었다. 남편과 나는 아이들을 달래가며 한 발 한 발 앞으로 전진했다. 중간쯤 다다랐을 무렵, 흔들림에 적응된 아이들은 갑자기 달리고 싶어했다. 튀어나가려는 아이들의 손을 붙잡고 실랑이 하느라, 바다를 수놓는 아름다운 윤슬따위는 감상하지도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다리를 건넜다. 한 번 더 건너자는 말을 안하는 걸로 봐서는 다행히 아이들 취향도 아닌 듯 했다. 한 숨을 돌린 후, 왔던 길을 돌아가는 중에 지나쳐온 다리를 멀찍이서 바라봤다.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 중에는 바다 풍경을 감상하는 사람도 더러 있었지만, 대부분 나와 같이 한 치 앞만 보며 균형을 잡느라 정신이 없었다. 참 이상했다. 다 지나오고 보니 너무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오늘이라는 단어는 영어로 today, 한자로는 금일(今日)이다. 어린 시절에 나는 금일이 무슨 뜻인 지 몰라, 금 처럼 귀한 날이라고 생각했었다. 이제와 보니 그 또한 틀린 말은 아니다. 카르페디엠이란 철학이 추구하는 바와 같이, 다시 오지 않을 지금 이 순간이 오늘이며, 오늘을 금과 같이 귀하게 여겨야 삶이 행복해졌다.


전국시대 명문(銘文)에서 '금(今)'자는 '머금다'라는 뜻으로 쓰였다고 한다. 지금은 '금'자를 '이제' 혹은 '현재'와 같은 시간적인 표현으로만 사용한다. '금'자가 본래 지니고 있었던 '머금다'라는 의미는 입 구(口)자를 더해서 만든 '머금을 함(含)'자가 대신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금일'이 오늘이라서 뜻깊은 이유는 우리가 지금 이 순간 마음에 머금은 것들 때문이다.


오늘은 어떤 날일까. 오늘은 실제로 추워지기 시작한 초겨울의 어느 평범한 보통 날이다. 그리고 오늘은 또 어떤 날일까. 오늘은 잠시 뽀샵 필터를 끼우고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게 되는 감상적인 날이다. 오늘은 내가 하지 않았을 일들과 내가 못할 것이라 생각했던 일들을 가능하게 해준 사람들에게 감사한 날이다. 오늘은 to-day. 지금 내 마음에 머금고 있는 일들을 향해(to) 나아가는 날이다.


오늘이란 시간이 나를 머금고 흘러간다. 흔들리면서도 쓰러지지 않고 위태로우면서도 끊어지지 않는 흔들다리 위에서 우리의 오늘이 출렁인다. 우리가 할 일은 짜릿한 스릴을 느끼며, 가끔 소리도 지르며, 무서우면 옆에 같이 선 사람의 손을 붙잡고,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었다. 지나고보면 낯설어질 오늘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잠시 멈춰서서 윤슬이 반짝이는 바다를 바라볼 여유를 지녔다면 그보다 더 좋은 오늘은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