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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윤미 Aug 18. 2023

인생이 만약 한 편의 시와 같다면

어쨋거나 퇴고는 쭉 이어질겁니다

영어 강사였던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있다.

"영어 울렁증이 있어요."

"영어는 너무 어려워요."

그럴 때마다 나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일종의 훈련이라고 생각해 봐요. 차근차근 하다보면 익숙해져요."

"겁내지 말고, 즐기는 것도 방법이예요."

성장하는 학생들은 하나같이 비슷한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스스로 무리없이 외울 수 있는 단어의 개수를 정해 매일 반복해서 외우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동경해오던 문인의 길에 들어선 후, 요즘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있다.

"글쓰기는 너무 어려워요."

"어휴, 시 진짜 어렵던데요."

그러면 나는 지금도 비슷한 대답을 한다.

"일단 첫 문장을 적어 보세요.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 없어요."

"즐겨 읽고, 낭독하다보면 시와 친숙해질 거예요."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 중에서도, 시를 쓰고자 하는 사람 중에서도 점점 깊어지는 사람들이 있다. 좋아하는 마음으로, 꾸준히, 다독하고 다상량하며 부끄러운 첫 문장일지라도 반복해서 적어보는 사람들이 그랬다.


삶도, 마찬가지다.





시를 쓰는 첫 단계는 관찰이다. 시적 대상이 되는 소재에 대하여 자세하고 면밀하게 관찰하고, 고착하고, 천착하는 것, 그것이 시의 첫 단계다. 두 번째 단계는 내가 적어낸 서툴기만 한 초고를 진심으로 부끄러워 하면서, 자신의 관찰을 의심하고 전복시키는 일이다. 현상 너머의 본질에 가까이 다가갈 때까지 말이다. 세 번째 단계는 다시 한 번 더 제대로 관찰하고, 고착하고, 천착하는 일이다. 이 모든 과정을 한 단어로 요약하면 “퇴고”다.     


인생이 한 편의 시와 같다면, 우리의 삶은 매일 반복하는 세밀하고 정교한 퇴고라고 할 수 있다. 태어나면서 우리에게 그냥 주어진 서툰 초고들을 나만의 새로운 관점으로 나답게 해석해낼 수만 있다면, 우리의 삶은 한 편의 멋진 시가 된다.     


‘인생이 한 편의 멋진 시라는데, 왜 내 삶은 하나부터 열까지 영 마음에 들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나 역시 그런 순간이 많았다. 타고난 성격, 타고난 기질, 타고난 환경도 마음에 안 들고, 살아가면서 경험했던 부정적인 일들이 쓴 뿌리가 되어 영혼을 좀먹기만 하던 때가 있었다. 그 때의 나는 창 밖에 봄이 왔는데도 창문을 열 생각조차 못했다. 그저 집 안에 틀어박혀 핀셋으로 약점과 결핍을 집어들어 샬레에 옮겨놓고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기만 했던 것 같다.

      

들여다보는 건 좋은 일이다. 관찰의 출발은 바라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정적인 사고에 빠져 있을 때의 관찰은 모든 것을 좋지 않은 방식으로 해석한다. 반대로 뭐든 덮어놓고 긍정적으로 포장한다면 그 관찰은 설익은 것이 된다. "평가가 들어가지 않은 관찰이란 인간 지성의 최고 형태다."라고 말한 크리슈나무르티의 말처럼, 제대로 된 관찰은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일이었다.


삶에는 그냥 주어지는 것들이 많다. 내가 가진 장점과 강점도, 결핍과 약점도 그렇다. 내가 선택한 적 없이 그냥 내 삶에 벌어진, 나의 노력여하와 상관없는 내 삶에 일어난 불운들에 대하여 아무도 이유를 답할 수 없을 것이다. 할 수 있는 건 오직 한 가지, 나답게 해석하고 반응하는 것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사랑하고 나를 지지하고 나를 응원하는 것, 그래서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모두 내 인생의 자산으로 삼는 태도가 삶을 빛나게 한다. 살아간다는 것은 나를 사랑하고 받아들여 온전히 내 이름이 되는 일이었다.


7월에 진행되었던 강연 타이틀은 <인생이 한 편의 시와 같다면> 이었다. 인생은 마치 끊임없는 퇴고의 과정이라는 생각에서 정한 제목이었다. 서툰 시인의 강연에, 감사하게도 여러 청년들이 신청해주셨다. 비슷하게 서툰 사람들끼리 모여 자신의 삶을 꺼내 보이고 자신의 아픈 구석도 슬쩍 던져보이는 포근하고 다정한 시간이었다. 준비물은 열린 마음이면 충분하다고 안내드렸는데 정말로 마음을 열어 진솔하게 나눠주신 참석자분들 덕분에 내내 감명 깊은 시간이었다.



강의 도중에 10년 전의 나, 5년 전의 나, 1년 전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적어보자고 했는데, 신기하게도, 참석자 대부분이 비슷한 이야기를 적었다. 간단히 요약해 보자면, "겁먹지 말고, 해보고 싶은 것 다 해봐. 실패해도 괜찮아."였다. 그리고 그 주문은 오늘도 유효했다.


인생이 만약 한 편의 시와 같다면, 꾸준히 포기하지 말고 퇴고하는 태도가 제일 중요하다. 나다운 한 편의 시가 되려면, 겁먹지 말고, 실패해도 괜찮으니, 해보고 싶은 것 다 해봐야 한다. 세상 유일무이한 한 편의 시같은 참석자들이 어쩐지 반짝이는 날이었다. 나도 더더욱, 말한대로 살고 싶어지는 그런 행복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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