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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소공 May 14. 2024

엄마는 꿈이 뭐였어?


사랑하는 딸에게,



지난겨울 네가 한국에 왔을 때 우리는 ‘꿈’에 관한 얘기를 했었다. 아마도 ‘Wish’라는 디즈니 영화를 보고 난 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나는 ‘엄마는 작가가 될 거야’라는 말을 했던 것 같은데, 너는 빨리 취업해서 돈을 많이 벌고 싶다고 했었지. 



엄마는 너의 꿈 얘기를 듣고 잠시 실망했지만, 크게 내색하진 않았다. 현실적으로 그게 가장 필요하니 그렇겠지 싶었다. 다만 어린 시절의 너를 떠올리며 마음은 좀 아팠다. 


그리고 너는 또 물었다. “엄마는 어릴 때부터 작가가 되고 싶었냐”고. 


그때 나는 머뭇거리며 말을 하지 못했는데, 이제 그 얘기를 해주마. 


엄마는 어릴 때 꿈이 없었다. 꿈을 꾸는 게 뭔지도 몰랐다. 


엄마의 어린 시절은 딱히 ‘롤 모델’이라는 게 없었다. 부모님은 먹고살기 위해 항상 바빴다. 늘 농사일과 고기잡이 일에 부대꼈지. 자식에게 ‘어떤 꿈을 꾸라’느니, ‘뭐가 되라’느니 같은 말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엄마의 엄마, 그러니까 외할머니가 엄마에게 말한 유일한 소원은 “은행에 취직해서 돈이라도 많이 만져봐라”였다. 돈을 많이 벌라는 것도 아니고, 돈이나 많이 만져보라는 것이 소원이라니! 


그만큼 사는 게 힘들고 팍팍했다는 뜻이라고 보면 된다.  


그러니 어릴 때 엄마는 다른 아이들처럼 그냥 학교에 다니는 게 다였다. 아무런 꿈도, 목표도 없이. 


그런데 초등학교 5학년이던 어느 날, 담임 선생님이 가정방문을 오셨다. 엄마가 학교 다닐 때는 그런 게 있었단다. 선생님이 직접 학생의 집을 방문해서 형편을 살피는 일이었지. 


네가 다녔던 국제 학교에는 그런 게 없었지. 한국 학교에도 요즘에는 그런 시스템이 없는 것 같더구나. 


어쨌거나 그때 담임 선생님은 다른 학생 몇 명과 함께 우리 집을 방문했다. 우리 부모님은 생전 처음으로 방문한 선생님과 친구들을 극진히 대접했다. 


시골이라 별다른 건 없었다. 커피도 과자도 없던 시절이었다. 아마 그때 딸기가 제철이라, 집 텃밭에서 따낸 딸기를 설탕에 버무려 한 사발씩 내놓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선생님은 딸기를 맛있게 먹고, 부모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나서 우리 집 앞마당으로 나를 불렀다.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이었지. 


그때 선생님은 바다를 가리키며 “와, 소공이는 좋겠다. 이렇게 멋진 곳에서 살아서 말이야. 여기서 바다를 보면 얼마나 멋진 꿈을 꿀 수 있을까!”라고 말씀하셨지. 


엄마는 그때 어리둥절했다. 


꿈? 그게 뭔데? 그게 밤에 잠자면서 꾸는 거 아냐? 그걸 왜 바다를 보면서 꾸지?”


그런 느낌이었다. 꿈이 뭔지도 몰랐던 그때, 담임 선생님은 엄마에게 ‘’이란 새로운 개념을 심어 주셨다. 


아마도 그때부터였을까. 엄마는 그 바다를 보면서 “꿈이 뭐지? 어떤 꿈을 꾸어야 하지”라는 생각을 종종 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뭐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꾼 것은 여전히 아니지만, 무의식 어디엔가 이 ‘꿈’이란 단어가 각인되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러다가 엄마는 중학생이 되었고, 다시 꿈을 묻는 질문에 맞닥뜨렸다. 그때가 중학교 3학년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장래희망이 뭐냐”는 질문이었지. 


그때 한참을 고민하던 엄마의 대답이 뭐였는지 아니? 


‘Pioneer!’


웃기지? 사실 나도 웃겨. 그 당시 친구들이 써 냈던 ‘장래희망’은 대체로 미래에 갖고 싶은 직업이었거든. 


그런데 엄마는 그때 무슨 생각이었는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직업에 딱히 관심이 없었다. 직업을 장래희망으로 삼고 싶지 않았거든. 


사실 엄마가 알고 있는 직업도 많지 않았다. 교사나 약사, 의사, 변호사, 공무원, 스튜어디스, 탤런트 등이 내가 알고 있는 직업의 거의 전부였지. 작가라는 직업이 있는지도 몰랐다. 




어쨌거나 ‘Pioneer’라는 엄마의 대답에 무슨 큰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마도 그 당시 영어시간에 배운 그 단어가 언뜻 떠올라서 그랬지 싶다. 


그런데 이 황당한 ‘장래희망’에 대해 우리 선생님이 칭찬을 해 주시더구나. “소공이의 꿈이 멋지다”라면서. 뭔지 모르지만, 으쓱한 기분이 들었단다. 


사실 엄마의 그때 그 꿈은 그냥 해프닝으로 끝났지. 그 꿈을 엄마가 계속 기억했던 것도 아니고, 그 꿈처럼 살았던 것은 더더욱 아니니 말이야. 


그런데 말이다. 지금 이 나이에 엄마가 그때 적었던 그 장래희망이 생생히 떠오르면서 작가의 길을 걷는 걸 보니, 그 꿈이 그냥 황당한 얘기만은 아니지 않았을까 싶구나. 


엄마가 그 꿈처럼 살았던 것은 아니라고 했지만, 엄마의 삶을 되짚어 보면 어느 한곳에 안주하고 산 삶은 아니었다. 다만 딱히 남들에게 내세울 만큼 성취한 게 없기에 그 꿈처럼 산 것은 아니었다고 표현했다. 


엄마가 가장 오랫동안 안주하고 산 시절은 아빠를 만나 너를 낳고 산 세월이었다. 하지만 그마저 아빠의 죽음으로 산산조각이 나버렸지. 아마도 운명의 신은 엄마가 안주하고 사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 같다. 


엄마가 뒤늦게 작가로서의 삶을 살겠다고 설치는 것도 어쩌면 어린 시절, 무심결에 내뱉은 그 ‘꿈’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엄마의 무의식 어딘가에 ‘씨앗’ 상태로 자리 잡고 있던 그 꿈이 움이 트고 있다고 보면 되지 않을까. 


그 씨앗이 얼마나 자랄지 엄마는 궁금하구나. 그렇게 되면 엄마는 진짜로 어린 시절에 말한 꿈을 이루게 되는 건데 말이야. 


딸아, 이제 좀 궁금증이 풀렸니? 지금부터는 네 꿈 얘기를 해보자꾸나. 


너도 참 꿈이 많은 아이였는데, 어쩌다가 취업해서 돈을 많이 버는 게 꿈이 되었을까?



2024년 5월 14일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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