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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소공 May 16. 2024

엄마 되는 것이 꿈이라고?


사랑하는 딸에게,



딸아, 엄마의 꿈에 대한 글은 읽어 봤니?


오늘은 네 꿈에 대해 얘기해 보자꾸나. 


너는 어릴 때 참 꿈이 많은 아이였는데, 그 많은 꿈들은 다 어디로 가고 ‘돈을 많이 버는 것’이 꿈이 되어 버렸을까. 엄마는 물론 우리에게 닥친 여러 가지 현실적 문제들이 네 꿈을 그리로 몰아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 가슴이 아프고. 


엄마가 너의 꿈을 되짚어 보다가 네가 어렸을 때 엄마가 썼던 블로그를 보게 됐다. 네 장래희망에 대한 글이 있더구나.


어릴 때 너는 장래희망이 참 많이도 변했다. 




처음엔 의사가 되고 싶다고 했지. 아마도 예닐곱 살 때였나 보다. 


그때 엄마가 즐겨 보던 의학 드라마며 병원 24시 같은 다큐멘터리를 같이 보면서 의사가 멋있게 보였나 봐. 특히 아픈 아이를 치료해 주는 소아과 의사를 보면서 의사가 되고 싶다고 하길래, 엄마는 내심 기뻤단다. 


네가 정말 의사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지. 의사는 ‘돈과 명예’라는 속물적인 기준으로도 썩 괜찮은 직업이지만, 마음먹기에 따라서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직업이잖니? 그래서 엄마는 네가 그 꿈을 오래 간직하기를 바랐다. 


그런데 너의 이 장래희망은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 속절없이 무너져 버렸다. 이유는? 의사가 되려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했더니, 금방 포기하더구나. 공부하기 싫다면서. 




그다음 꿈은 댄서였지 아마? TV에 나오는 댄서들의 화려한 춤 실력을 보면서 너도 신나게 춤을 추고 싶다고 생각했겠지. 


그래서 엄마는 네가 원하는 대로 학교에서 하는 방과 후 활동 중 춤추는 활동들을 여러 개 신청해 줬다. 발레, 재즈댄스, 록댄스 등등.


그런데 처음엔 잘 하는가 싶더니, 춤이 좀 어려워지기 시작하니까 그것도 싫다더구나. “댄서가 되려면 그 정도는 해야 해”라고 말했더니, “그럼 댄서가 되지 않겠다”고 했다. 


다음엔 가수가 되겠다고 했지. 틈만 나면 Wii 노래방을 틀어놓고 노래를 불러젖혔다. 


아빠는 아마도 이 꿈을 적극 응원하지 않았나 싶다. 아빠 꿈이 뮤지션이었거든. 학교 다닐 때 록밴드도 했다더라.


다만 아빠는 네가 진심 어린 ‘음악가’가 되기를 원했기에 노래만 부르는 것이 아니라, ‘노래를 만드는 수준’까지 되라고 장려했다. 그래서 피아노를 배우라고 권했고. 


그래서 한동안 너는 피아노도 배우고 첼로도 배웠다. 




엄마는 그렇게 네가 가수의 꿈을 키우고 있는지 알았는데, 어느 날 ‘프렌드십 북’이란 이름의 네 노트를 보게 됐다. 딱히 일기는 아니었고 (엄마는 딸의 일기나 훔쳐보는 그런 사람 아니다. ㅎㅎ), 친구들과 우정을 교환하는 그런 책이었다. 


그때가 아마 네 아홉 살 생일이었고, 누군가가 그 프렌드십 북을 선물로 주었던 것 같았다. 그래서 여러 친구들과 장래희망을 적어 놓았었지. 


그런데, 그 책에 네가 장래희망으로 적어 놓았던 게 뭐였는지 아니? 


엄마!


‘엄마가 되는 것’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장래희망으로 우주인, 사업가, 선생님 등 다양했는데, 네 꿈이 엄마라니! 


그 책을 ‘다른 아이들’의 엄마들과 함께 보면서 많이 웃었다. 어떤 엄마는 “아니, 언니가 너무 잘 해줬던 것 아니에요?”라고 말했고, 또 다른 엄마는 “언니가 너무 못해줘서 좋은 엄마의 모델이 되고 싶은가 봐요”란 반응도 있었다. 


물론 친했기에 웃자고 한 소리였다. 그 엄마들은, 엄마보다 나이가 한참 어려서 엄마를 언니라고 불렀고. 


어쨌거나 나는 스스로 후자 쪽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너한테 각별히 잘 해준 기억이 없었거든. 늘 부족한 엄마였기에. 


‘엄마’를 하나의 직업으로 친다면, 엄마는 이 직업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곤 했으니까. 할 수만 있다면 사표 내고 싶다는 생각도 여러 번 했었다.   


그런데 네가 그런 엄마를 보면서 장래희망으로 ‘엄마’를 꼽았으니 얼마나 놀랐겠니? 




엄마가 그 당시 앤서니 브라운의 ‘우리 엄마’라는 그림책을 너에게 읽어주면서 너에게 엄마에 대한 환상을 심어줬던 것일까?






그 그림책 속의 엄마는 굉장한 요리사에 힘도 세고, 때론 사자처럼 용맹하고, 솜털처럼 부드럽기도 하지. 


무엇보다 우주탐험가가 되거나 마릴린 먼로처럼 유명 영화배우가 될 수 있는데도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우리 엄마’가 되었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엄마는 아마도 많은 가능성을 포기하고 ‘우리 엄마’가 되었다는 부분을 강조하면서 읽어주지 않았나 싶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가스라이팅’ 같은데 말이다. 


너, 엄마의 가스라이팅에 속아서 엄마를 그런 사람으로 알았던 거니? 사실 엄마가 그렇게 많은 것을 포기한 건 아니거든. 




엄마의 또 다른 걱정은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이었다. 


엄마의 조카 중에 어릴 때 꿈이 ‘엄마가 되는 것’인 조카가 있었다. 너도 아는 예쁜 언니. 그 언니는 그 말이 씨가 되었는지, 대학 졸업 후 별다른 직업도 없이 살다가 진짜로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어 버리더구나. 


그런데 결혼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지금 힘들게 살고 있지. 자신이 결혼 전에 많은 기회를 포기하고 무의미하게 시간을 흘려보낸 것을 후회하면서 말이다. 


나는 네가 결혼 전에 하고 싶은 일을 뭐든지 해보기를 바란다. 엄마가 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장려할 만한 일이지. 


특히 요즘처럼 결혼도 포기하고, 아이 낳기도 거부하는 세상에서 엄마가 된다는 것은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니까. 


이제야 고백하지만, 엄마는 ‘엄마가 된 것’이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잘 한 일 같더구나. 


엄마가 되지 않았다면 겪을 수 없었던 수많은 ‘단맛’을 맛보았고, 또 엄마가 되지 않았다면 겪지 않아도 되었을 수많은 ‘쓴맛’도 맛보았다. 그 단맛과 쓴맛이 엄마를 키웠다. 


밤새 펄펄 끓는 열에 시달리는 너를 보며 애간장을 태우다가, 아침에 열꽃이 가득 핀 얼굴로 방긋 웃는 너를 보면서 세상 행복을 다 가진 듯 기뻤다. 


극과 극을 오가는 상반된 감정 속에서 스스로의 적나라한 모순을 실감해야 했고, 정말로 주는 사랑이 무엇인지도 알게 됐지. 


불가에서는 '자식을 낳아 키우는 엄마들은 모두 보살’이라고 말하더구나. 무척 공감하는 말이다. 


‘세상에서 가장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자식’이란 말처럼 엄마는 너를 키우면서 좀 더 깊은 세상의 이치를 배웠다. 


무엇보다 그동안 별로 생각해 보지 않았던 ‘우리 엄마’의 마음도 절절히 이해하게 됐지. 엄마가 되지 않았다면 절대 이해하지 못했을 그 마음을 말이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 한없이 약해지던 엄마가 강해질 수 있었던 것도 네 엄마였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정말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 네가 옆에 있었기에 일어설 수 있었다. 




고맙구나, 딸아. 내 딸로 태어나 줘서. 그리고 내 옆에 있어 줘서. 


그러니 딸아, 너도 부디 언젠가 엄마가 되어보기 바란다. 그렇다고 너무 서둘지는 말고.  


가만, 내가 오늘 너의 꿈에 대해 얘기한다고 해놓고 너무 ‘엄마’에 대해서만 얘기했구나. 


나이 들면 종종 이런 일이 일어난단다. 수다 떨다가 얘기가 옆길로 새는 일 말이다. 그래도 뭐 나쁘지 않았지?


너의 ‘진짜 꿈’에 대한 얘기는 나중에 하자꾸나. 


‘우리 엄마’ 책의 마지막 구절 알지? 그 구절처럼 "너를 정말 사랑한다". 


2024년 5월 16일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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