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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소공 May 21. 2024

너의 진짜 꿈은 어떻게 됐을까?


사랑하는 딸에게,



이제 너의 '진짜 꿈' 얘기를 해보자. 


네가 어릴 때 잠시 장래희망으로 '엄마'를 적기도 했지만, 사실 네가 가장 오랫동안 절실하게 꾸었던 꿈은 '뮤지컬 배우'였지. 


아직도 눈에 선하다. 네가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에서 하는 뮤지컬 '레미제라블'에서 장발장의 수양딸 '코젯'으로 활약하던 모습이. 


그때 너는 참 빛났다. 


엄마 눈에만 빛났던 게 아니었다. 엄마는 오히려 몰랐지. 네가 이뻐 보이기는 했지만, 그저 내 딸이라 이뻐 보이는 걸로 생각했다. 


엄마는 워낙 음악 쪽에 문외한이라 네가 얼마나 노래를 잘하는 지도 잘 몰랐고, 뮤지컬 배우로서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더더욱 몰랐다. 


그런데 뮤지컬을 본 학교 선생님들이나 다른 학부모들이 이구동성으로 "재능이 넘친다"라고 한 마디씩 하더구나. 음악에 대해서 잘 아는 편인 엄마의 사촌도 그 뮤지컬을 보고 놀라워했다. 


물론 너만 잘한 게 아니라 그 뮤지컬에 출연한 학생들 모두가 잘했었지만 말이다. 





너도 그 말을 당연히 들었다. 몇몇 선생님들은 네게 일부러 찾아와 뮤지컬을 전문적으로 해보라고 권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너는 뮤지컬을 할 수 있는 대학으로 가겠다고 했다. 그러고는 뉴욕에 있는 한 대학을 꼽더구나. 그 대학이 가장 유명하고 장래성도 밝다면서. 






엄마는 그때 덜컥했다.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하나는 아빠가 살아생전 '안전'을 이유로 미국에 있는 대학에 너를 보내고 싶어 하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어쩌면 좀 더 큰 문제는 경제적인 이유였다.


아빠가 꽤 많은 돈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지만, 우리는 그 돈을 쓸 수 없었다. 상속재산을 두고 소송이 걸려 있는 복잡한 상황이라, 그 돈이 언제 우리 수중에 들어올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엄마는 네가 그 비싸기로 유명한 뉴욕 소재 대학에 가는 걸 찬성할 수 없었다.


그래서 설득했지. 


아빠가 생전에 싫어했다는 이유로. 혹시 다른 곳으로 가면 안 되겠냐고 하면서. 그때 돈 문제는 크게 언급하지 않았다. 


착한 너는 눈물을 머금고 그러겠다고 했다. 그러고는 영국에 있는 Acting School을 찾아 보더구나. 그중 몇몇 대학을 마음에 들어 하기도 했지. 


그러다가 어느 순간 너는 영국에 있는 대학에도 가기 싫다고 했다. "날씨도 음식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였어. 처음엔 좀 어이없고 기가 막혔다. "아니 장래를 결정하는데 날씨며, 음식이 무슨 문제야"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네 의사는 확고해 보였다. 


무엇보다 네 마음속 우울함이 나에게 전달되어 왔다. 단순히 날씨나 음식 문제가 아닌 것 같았다.  



한동안 너는 많이 우울해했다. 차라리 대학에 가지 않겠다고도 했다. 마음이 많이 아팠다. 



지금도 미안한 것은 그 과정에서 엄마가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다는 점이다.


엄마는 외국 대학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다. 특히 Acting School 같은 곳에 대해서는 뭘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전혀 몰랐다. 


그저 학교가 알아서 다 해주는 것으로 알았다. 그래서 늘 너에게 학교 진학담당 교사와 의논해서 준비하고, 엄마가 도와줄 부분만 말하라고 했었지. 


나중에 알고 보니, 이런 특수 대학에 간 학생들은 대부분 부모가 입시 전문가를 고용해서 준비해 줬다고 하더구나. 전문가들의 도움으로 대학 정보도 찾고, 포트폴리오도 준비하고, 소개서도 작성하고 하는 식으로. 


엄마는 나중에 그 사실을 알고 많이 후회했다. 엄마의 무능력으로 네가 기회를 놓친 것만 같아서. 




미안하구나 딸아. 


그때는 엄마가 무능력하기도 했지만,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고 하면 이해가 될까? 


너는 다른 아이들이 다들 미국이나 영국 대학에 입학 신청을 하고 또 합격 통지서를 받은 이후에야  "호주에 있는 대학에 가겠다"라고 하더구나. 전공도 뮤지컬이 아니라 심리학으로 하겠다고 했다. 


엄마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경제적 부담이 줄어든 것도 기쁜 이유였지만, 무엇보다 네가 드디어 마음을 결정해서 기뻤다. 


너는 꽤 좋은 성적으로 호주에 있는 대학에 입학했지. 장학금도 받으면서. 처음 1년 동안은 잘 다니더구나. "재미있다"고도 말했다. 


그런데 1년이 지난 어느 시점. 너는 다시 뮤지컬이 하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해보라고 했다. 네가 얼마나 오랫동안 그 꿈을 꾸어왔는지 알기에, 그 꿈을 포기하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너는 시드니 국립 드라마 학교(NIDA)랑 몇 군데 원서를 내고 오디션을 본다고 했다. 그런데 마지막 관문을 남겨 두고 너는 포기하겠다고 하더구나. 오디션을 보는 게 더 이상 행복하지가 않다고 했지. 


그래서 나는 "그럼 그만두라"고 했다. 엄마의 생각은 그랬다. 어디서 뭘 하든, 네가 행복한 게 제일인데, 행복하지 않다면 굳이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 무렵 너는 뉴욕에 가 있는 친구들을 많이 부러워하더구나. 그때 함께 뮤지컬을 했던 학교 친구들 대부분이 뉴욕에 가 있다면서 말이다. 


아마도 그 친구들이 인스타에 올리는 사진들을 보고 네가 포기했던 기회를 떠올리면서 많이 부러워하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너는 물었다. 


"엄마, 아빠가 살아 있었다면 나도 뉴욕에 있는 대학에 갈 수 있었을까?"


글쎄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경제적으로만 친다면야 갈 수 있었겠지. 하지만, 아빠가 살아 있었다면 너는 뮤지컬에 그렇게 빠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뮤지컬에 빠지기 전 너는 '뇌과학자'고 되고 싶다고 했었다. 


너도 알다시피 아빠는 돌아가시기 전 약간의 치매 증세를 보였다. 너와 나는 점차 기억을 잃어가는 아빠를 상상하면서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물론 아빠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고 나서 그게 일종의 '혈관성 치매'였다는 것을 알았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그런 아빠를 보면서 너는 '뇌과학자'가 되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아빠가 세상을 떠나고 1년이 지나면서 네 성적은 급격히 나빠졌다. 특히 아빠가 가르쳐 주던 수학과 과학성적이 갈수록 하향 곡선을 그었지.  


그런 어느 날 너는 집에 와서 눈이 빨개지도록 펑펑 울었다. 진학상담 교사가 "이런 성적으로는 뇌과학 관련 학과에 갈 수 없다"라고 말했다면서. 


너는 "아빠를 실망시키는 게 너무 미안하다"면서 울더구나. 


그때도 엄마는 비슷한 말을 했다. "죽은 아빠보다 네 행복이 더 중요하다"라고. "아빠도 네가 우는 것을 바라지 않을 테니, 아빠를 위해 너무 울지 말라"고.


그때 이후 너는 학교에서 하는 연극과 뮤지컬에 급속도로 빠져들었다. 무대에 서는 동안에는 '살아있는 느낌'이 든다고도 했다. 


그런 너를 보면서 엄마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를 살아 숨 쉬게 하는 뭔가가 있다면 인생은 살만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지. 






딸아, 너를 그렇게 들뜨게 했던 뮤지컬도 내려놓고, 너는 이제 '마케팅 전문가'가 되어서 '돈을 많이 벌겠다'는 꿈을 꾸고 있다. 


아마도 최근 몇 년 사이에 더 나빠진 우리의 경제사정 때문이 아닌가 싶다. 국세청의 계좌 압류로 돈의 흐름이 막힌 상태라 엄마는 네 학비를 낼 때마다 친척들에게 돈을 빌리곤 한다. 


어쩌다 보니, 너에게 그 상황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 너는 하고 싶은 일도, 가고 싶은 곳도 너무 많은 데, 엄마가 그 모든 것을 왜 해줄 수 없는지 설명해야 했으니까. 


너는 깜짝 놀라더구나. 그렇게 상황이 안 좋은지 몰랐다면서. 그럴 만도 하지. 네가 가고 싶다던 뉴욕 소재 대학을 포기하게 하면서도 돈 문제는 크게 언급하지 않았으니까. 


게다가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상황이 좋기도 했다. 네 학비를 빌릴 정도로 상황이 나빠지리라곤 엄마도 예상치 못했으니까. 


그렇게 돈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엄마를 보면서 너는 자연스럽게 '돈을 많이 버는 것'이 목표가 되어 버린 것 같다. 






엄마는 이 상황이 한편으론 미안하고, 또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부모 입장에서 자식이 자신의 학비까지 걱정을 하게  한 점은 분명 미안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돈이 풍족했다면 너는 어쩌면 돈의 가치에 대해 모르고 넘어갔을 수도 있다. 돈 귀한지 모르고 펑펑 쓰면서 살았을 수도 있지. 


그러니 돈을 많이 벌기 바란다. 


다만 돈 자체가 목표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돈을 벌어서 그 돈으로 많은 경험을 했으면 좋겠다. 돈의 가장 큰 가치는 경험을 사는 데 있지 않나 싶다. 


돈이란 건 말이다. 내가 막 쫓는다고 나에게 오는 것도 아니고, 많이 벌었다고 내 곁에 머물러 있는 것도 아니란다. 


멀리 다른 사례를 볼 필요도 없다. 아빠와 우리를 생각하면 된다. 


아빠는 가족의 행복을 위해 많은 돈을 벌었지만, 그 돈이 어느 한순간 사라져 버리지 않았니? 


엄마는 가끔 이런 상상을 하면서 웃는다. 


우리가 돈 때문에 이렇게 고생한다는 사실을 아빠가 저승에서 안다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지 않을까 하고 말이야. 하기야 아빠 본인도 자신이 번 돈을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갔으니, 말해 무엇하니. 



그래서 엄마는 돈은 꼭 필요하고 귀한 것이지만, 그것 자체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다른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수단이 돈인 거지. 



그래서 어느 정도 돈이 생겼으면 모으는데 집중하지 말고 '제대로' 쓰기 바란다. 그 '제대로'에 '타인을 위한 베풂'도 포함시키고. 물론 엄마를 위해서도 좀 쓰고 말이다. 


 



딸아, 엄마가 네 꿈에 대해 쓰다 보니, 너는 뭔가를 너무 쉽게 포기하는 단점이 있더구나. 


지금에야 말이지만, 네가 그때 뉴욕에 있는 그 대학에 '죽어도 가겠다'고 고집부렸다면 나는 보내 줬을 거다. 자식이기는 부모 없고, 그때는 지금처럼 상황이 나쁘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어쩌면 너의 착함이 너의 약함과 어우러져 쉽게 포기하는 성향으로 발전하지 않았나 싶다. 너도 언젠가 "해보지도 않고 너무 쉽게 포기한 것이 후회된다"고 말했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꼭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일단 꾸준히 해봤으면 좋겠다. 너무 주변 상황이나 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란다. 뜻을 세우고, 방법을 찾다 보면 길이 생긴다. 그렇게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다 보면 돈도 네 곁으로 오게 된다고 본다. 


엄마의 마지막 당부는 항상 똑같다. 


어디에서 뭘 하든, 건강하고 행복해라! 



2024년 5월 21일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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