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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주영 Oct 30. 2024

나르시시스트의 연애 9

결말

한 작가의 작업실로 들어가자마자 우성이 말했다.  

제가 모티브를 알고 봐도 대단하고, 알고 보니 더 흥미로운 소설들이었어요. 상상력으로 재창조해 내는 능력이… 진실을 담고 있으면서 사실과는 다른 이야기라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죠. 

우성은 감상평을 얼른 말하고 싶었다.

재밌으셨나 보네요. 

한 작가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고 무엇보다 심리 묘사가 탁월하더군요. 작가님들이 직접 겪은 일도 아니고, 모티브가 된 인물들에게 직접 들은 것도 아니고, 어떻게 이렇게들 쓰는 거죠. 놀랐어요. 확실히 현실보다 이야기가 좀 미화된 측면은 있긴 했지만요. 소설이니까 그렇겠죠. 

사실 우리는 현실에서 두 사람이 행복한 결말을 맞기를 바랐던 거 같아요. 행복한 결말이 뭔지 모르겠지만, 그 두 사람도 각자 소설을 쓰는 거겠지 싶기도 했지만요. 


그 두 분이 그럴 능력이나 통찰력이 있는 사람 같지는 않습니다. 네 분들처럼 변환하고 각색할 능력이 있는지도요. 현실에서도 각색이 고작 그 정도였잖아요. 그것도 이미 다른 작가님들 소설에 있잖아요. 

일어난 일을 있는 대로 고백하는 자전적 소설을 쓸 용기를 가진 사람도 아니고요. 


고백이라고 하시니 말씀드려야겠어요. 여 작가에게 일종의 알리바이를 확인했습니다. 남 작가의 SNS를 바탕으로 누구와 같이 있는지 자랑하지 않고 혼자라고 밝히지 않은, 아니 못한 날들을 조사해서 그날 무얼 했는지 물었습니다. 아니, 그날 그곳에 가서 그 일을 했는지 물었습니다. 제가 어떻게 아는지 아예 모르는 거 같았습니다. 남 작가의 휴대폰 비번을 풀고 포렌식이라도 한 줄 알았을 수도 있고요. 


형사님이 왜 그렇게까지 하는지 궁금했을 수도 있겠는데요. 

그리고 제가 저 소설들을 여 작가에게 알려 줬습니다. 작가님들의 이름을 보더니 멈칫하더군요. 아마 이런 소설들이 있는 줄도 몰랐나 봅니다. 이게 뭐냐고 하더군요. 그래서 소설이라고 했습니다. 고소를 취하하겠답니다. 


뭔가 착각한 거 아닌가요? 스토킹은 고소인이 취하한다고 없어지는 범죄가 아니잖아요?

맞습니다. 하지만 명예훼손으로 역고소를 당할 수도 있는 일이죠. 이제는 그것도 불가능하지만요. 

그런데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된 거죠? 현실 말이에요. 저는 소설 속 이 말이 답인가 생각했습니다. 한 사람은 목숨을 걸었고 한 사람은 자신에게 목숨을 거는 것이 좋았을 것이다. 그렇게까지 자신이 사랑받는 존재라는 자부심과 누군가를 목숨까지 걸고 사랑할 수 있다는 만족감, 그런 걸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절대 채워지지 않을 욕심이라는 걸 모르고 끝없이 원하는 사람이 있고 그런 때가 있죠. 자기가 뭘 가졌는지 모르면서 무조건 더 가지려고 하죠. 그런 사람 옆에 있다가 똑같은 사람이 되고 마는 사람도 있고요.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들 하는데 누군가 손바닥을 내밀면 그 손바닥을 마주치는 걸 심리적으로 거부하기 쉽지 않은 사람들도 있어요. 그러다 보면 계속 그 손을 잡고 가는 거고, 그러다가 영원히 손을 놓을 수 없게 되는 거죠. 그런 때에 상대방이 손을 놓으면 살아갈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게 되는 거겠죠. 그런 순간에도 자신은 사랑을 했다고 굳게 믿고 싶겠죠. 


결국은 남 작가가 취약한 존재가 맞았고 여 작가가 사악한 존재가 맞았죠. 하지만 그렇게 결론 내기에도 찜찜해요. 남 작가는 한 번쯤 그래 보고 싶었던 사람 같거든요. 수많은 경우 가운데 최악의 수로 간 거 같아요. 

불같은 사랑이라고 믿어서 윈윈 게임이었던 그 윤리 없는 사랑이 둘 사이에서 어느 순간부터 데스 게임이 되었겠죠. 둘 다 나르시시스트다운 결말이었다고 생각해요. 소설이라면, 연애에서도 반드시 이겨만 하는 여자는 이겼고, 불같은 사랑에 미친 연애를 하고 싶었던 남자는 진짜 그랬으니까요. 


그렇게 굳이 따지자면 진짜 승자는 크루즈 앤솔러지 작가님들이죠. 그 소설들을 다 모으니까 없던 진심도 생겨나던데요. 죽여 마땅한 사람을 죽이고 살려 마땅한 사람을 살리는…

현실에서는 그럴 수 없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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