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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볕 Jun 08. 2020

(6) 딸, 그만 징징거려



[필리핀에서 돌아오고 난 뒤]


필리핀에 돌아오니 친구들의 결혼 소식도 들리고 가까운 사람들의 부고 소식도 들렸다. 돈이 없으니 호주 갈 계획을 세우더라도 바로 진행할 수가 없었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었고 나는 무언가를 기다리는 망부석처럼 꼼짝없이 가만히 있었다. 할 일이 없어 도서관만 왔다 갔다 하던 삶을 이어가다가 도서관에서 아르바이트생을 구한다는 말을 듣고 이거라도 해봐야지 하며 지원을 했다. 글로는 4줄이면 끝나는 이야기였지만, 약 1년 반 가까이 이렇게 지냈었다. 이렇게 방황하는 시간이 길어져 내 나이는 곧 29살을 앞에 두고 있었다.

 

 나는 내가 마지막 회사에서 생긴 트라우마에서 완전히 헤어 나왔었다고 생각했는데, 트라우마 치료는커녕 그 상태로 성격이 굳혀져 감을 느끼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무조건 버티라'라는 식의 어른들의 조언들이 청년들을 갉아먹고 있었다는 이야기도 들리게 되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에 사람들이 반박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그 말을 조금이라도 더 빨리 알게 되었으면 지금처럼 덜 아팠을 텐데.


 사람이 두려울 땐 사람을 더 만나야 한다. 사람에 대한 편견을 나 혼자서 만들어내면 결국 난 혼자가 된다. 내 감정에 너무 큰 의미를 두어선 안된다.라고 다짐했다. 


나 혼자서 늘 하는 말이지만 '내가 기분이 안 좋은 건 다 기분 탓'이라는 것이다.


 내가 나 자신이랑 먼저 잘 지내고 내가 건강히 살아있음을 자각해야 하는데 그게 안되니까 계속 나를 땅굴속으로 밀어놓고 있었다. 정말 이러다가 이 땅굴이 나의 인생이 될까 두려웠다. 무기력함을 인지하기 전까진 나 자신 이랬다.


도서관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이제 세상 밖으로 좀 가도 되나 혼자 생각하고 있었다. 


도서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만나기 시작한 사람들은 밝고 쾌활했다. 다들 나보다 동갑이거나 10살은 훨씬 많은 사람들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만 다 같이 모여 청소하는 날이 있어서 그때 모여 같이 밥을 먹곤 했다. 어느 날 같이 점심시간에 밥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말을 먼저 꺼냈다. 


"저는 30살 되기 전에 꼭 호주 갈 거예요"


그러자 아이 둘을 낳은 언니가 내 말에 대답을 해주었다.


"응. 그래 꼭 다녀와! 내가 전공이 중국어인데 해외 나가서 몇 번 살었었거든? 근데 아직도 가끔 그때 생각나"

"헉 정말요?"

"그럼 그럼. 해외에서 별 일 다 있었어. 그땐 좀 얘네 왜 이래? 이런 일들도 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좀 재밌어. 그리고 중국어 하면 참 좋았던 게.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중국인이 있더라고 그래서 편했어."


이렇게 해외에 관련된 이야기가 시작되자 너도나도 할 거 없이 해외여행을 다녀온 이야기, 지인들의 호주 사는 이야기 등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사람과 만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져, 오랜만에 만나는 지인들과는 주로 '호주', '어학연수'에 대한 대화를 했었다. 그렇게 대화를 하다 보면 다들 내 주변에 누구는 호주를 다녀왔고.. 누구는 브리즈번에 있고.. 누구는 멜버른에서 영주권을 얻어 지내고 있다며 다들 이야기 꽃을 피우곤 했다. 이야기를 들으며 든 생각은


호주는 너무 멀게나 느껴졌던 나라였고, 도전하기 힘들 것만 같은 나라였는데 생각보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호주에 갔구나. 난 직접적인 경험담을 말해줄 사람이 많지 않아서 그럼 고민을 했던 건가? 아니면 그냥 가고 싶은데 귀찮아서 안 움직이고 있던 걸까? 


혼자서 물음표를 던지는 순간 내 뒤에선 그동안의 고민하던 나 자신들이 나타나 나를 응원하며 재촉하기 시작했다. 빨리 시작해! 빨리! 너 죽을 때도 호주 못 간 거 후회하고 죽을 거야 분명히! 라며.. 


그래! 남들도 나 가는 호주 내가 왜 못 가겠어!!!!! 


라고 외치고 계산기를 들었다.


일단 통장정리를 하고, 나한테 얼마가 있는지 지금 내가 얼마를 벌 수 있는지 생각을 했다. 

아직은 100만 원 밖에 없지만 그래도 계속 일을 하다 보면 어떻게든 돈이 생기겠지. 





[비자를 일단 받으면 호주에 가게 되겠지!]


이 100만 원으로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 "그래 그냥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일단 받아보자"라고 생각했다. 

내가 바로 이 비자를 받으려고 생각했던 이유는 간단하다. 이 비자를 얻고 난 후,  1년 안에 호주에 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해당 비자는 소멸된다.


그리고 이 비자 값이 약 40만 원이고, 여기서 신체검사 비용 17만 원 하면 50만 원은 훨씬 넘긴다. 지금 100만 원 밖에 없는 내 입장에서 이 비자 값은 너무나도 센 가격이고, 이 비자를 받고 나면 난 언제 한 번은! 돈이 아까워서라도 떠밀리듯이 호주에 가게 되겠지 라고 생각을 했던 것이다. 일단 질렀다. 

이번엔 필리핀 어학연수를 갔을 때랑은 달리 일반적인 유학원을 통해서 가고 싶진 않았다. 아직 내가 비자에 대한 개념도 제대로 잡히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 더 크고 안전한 유학원 개념의 대행사들을 찾고 싶었다. 검색을 하다 외교부랑 뭐 연관 있어 보이는 해외교육진흥센터에 (나는 부산 지사로 갔다) 가서 상담을 하고 비자 관련 대행을 맡겼다.

(적어도 외교부 쪽이랑 관련되어있으니 도중에 무책임하게 증발하진 않겠지?라는 생각에 선택했다)


신체검사를 받고 나닌 비자는 3일 만에 나왔다. 나는 이제 정말 호주로 갈 준비를 하고 떠나면 된다. 


그리고 남은 돈으로는 큰 캐리어 하나와 작은 기내용 캐리어 하나를 구입했다. 

캐리어가 있으면 이 캐리어를 보면서 내가 담을 짐들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은 해보지 않을까 해서.

캐리어를 구매할 때도 후기를 꼼꼼히 봤다. 뭔가 손해 보는 게 너무 싫어서. 후기 괜찮고 이름 있는 브랜드의 캐리어를 샀다. (나중에 공항에 가서 보니까 사람들 자기 캐리어 뾱뾱이로 칭칭 감고 터질까 봐 끈으로 감고, 박스로도 감아놓고.. 다들 만발의 준비를 했더라. 캐리어의 튼튼함 정도는 브랜드로 정하는 게 아니라 그냥 운이구나 싶었다.)


그러고 나서는 또 뭘 준비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혀서 인터넷에 정보를 검색했다.


인터넷에 검색한 정보들은 처참했다. 호주에서 모든 걸 잃은 사람의 글을 읽어버렸다. 인종차별로 멘털이 너덜너덜 해진 사람의 글도 읽었다. 일을 하다 돈을 제대로 못 받은 사람의 이야기도 들었고, 엉망인 셰어하우스에서 바퀴벌레와 함께 지내는 사람의 글도 읽었다. 




와우?




나는 또다시 겁에 질려버렸다. 몇 년간 실컷 호주 출발에 대한 겁을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먹을 겁이 남아있다는 거에 허탈하고 어이가 없었다. 




[엄마는 겁쟁이 딸이 답답했다]


아침에 일어나 부모님과 식사를 할 때면 늘 난 나의 고민을 털어놓곤 했다.

엄마에게 늘 내가 하는 말은 '엄마, 나 호주 가면 잘 지낼 수 있을까?', ' 나 호주에서 성공하면 엄마 꼭 놀러 와', '엄마 근데 나 만약에 거기서 망하면 한국에 돌아와서 뭐하지?' 등등 워킹홀리데이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약간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호주로 떠나는 사람 같은 이야기를 하곤 했다. 


무뚝뚝한 성격의 나의 엄마 황여사는 내 이야기를 듣다 숟가락을 다 내려놓지도 않은 채 말을 꺼냈다. 


"딸"

"응?"

"너 호주 가라고 누가 강요한 거 아니야. 너무 부담 가지 지마."

"..."

"그냥 긴~해외여행 다녀온다 생각해."

"그러기엔 내가 너무 긴 시간 동안 고민했잖아... 고민했던 시간이 아까워서.. "

"그냥 긴 시간 동안 징징거리기만 했으면서 뭘. 

아무튼 네가 목표가 돈이라면 가서 돈 벌다가 오면 되는 거고, 사람 사귀는 거면 사람 사귀다가 오면 되는 거야. 우리가 나라 잃은 사람들이라 정착할 곳이 필요한 것도 아니잖아.

너 호주 갔다가 힘들어서 돌아온다 했을 때 공항까지 데리러 올 가족도 있고 쉴 집도 있고.. 

네가 버는 돈을 필요할 만큼 우리 가족이 경제적으로 부족한 것도 아냐 딸. 그만 징징거리고 밥이나 먹어."

".. 엄마 근데 진짜 나 만약에 호주 생활 실패하면..."

"생각 많이 하면서 밥 먹으면 체해. 얼른 먹어"


네 알겠어요 엄마 


그날 아침엔 김치찌개를 맛있게 먹고, 후식으로 초콜릿이 잔뜩 들어간 콘 아이스크림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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