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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볕 May 04. 2021

(13) 모든게 리셋된것마냥 바보가 되었다


[Do you need a 바그?]

1월은 뭔가 정신이 없었다. 집 근처에 뭐가 있는지도 확인해야 했고, 통장도 만들어야 했다. 세금을 낼 세금 번호도 만들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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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먹고사는 게 급해서 근처 마트에 가서 빵이랑 완두콩이랑 잼 같은걸 좀 샀다. 계란도 샀다. 

그렇게 아침을 먹었는데 우유가 먹고 싶었고, 물도 먹고 싶었다. 물을 매일 사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인터넷에서 누군가가 환경을 지키자며 추천해준 ‘브리타’라는 물 통을 따로 구매하고 싶었다. 브리타는 물통 안에 숯으로 된 필터가 별도로 있어, 수돗물을 정수하여 마실 수 있다고 한다. 브리타를 사려고 집 앞에 마트에 갔으나 다 판매가 되어 구매할 수 없었다.

일단 물은 먹고살아야 할 것 같아서 바로 옆 동네의 마트에 가서 브리타를 구매했다. 브리타를 구매하는 김에 와이셔츠를 자주 입는 나로서는 다리미도 필요했다. 그 자리에서 다리미도 구매했고, 잘 때 입을 편한 여름옷도 함께 구매했다. 이것저것 구매했더니, 생각보다 내가 구매하고자 했던 목록을 훨씬 초과했다. 

그리고 계산대로 갔다.


정말 일하기 싫은 표정으로 있던 직원은 내가 다가오자 하와유라고 말했다.

나의 짐의 바코드를 무시한 표정으로 다 찍은 직원은, 나에게 카드를 기계에 찍어라는 시늉을 했다. 한국에선 내가 카드를 직원에게 주면 알아서 결제해주었는데, 여기는 카드 기계에 손님이 직접 카드를 대어 결제를 해야 했다. 


결제가 끝나고 영수증이 인쇄되어 나오는 걸 손으로 뽑듯이 잡고 있던 직원은 나에게 다시 일하기 싫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질문을 했다. 


“두유 니드 어 바그?”


뭐? 바그? buy의 과거형인 brought를 물어보는 건가? 더 구매할 거 있냐는 뜻인가?

난 대답했다.


“노 땡큐”


그 직원이 묻고자 했던 건 내가 구매한 물건들을 담고 갈 “Bag”이 필요하나는 질문이었고, 나는 노 땡큐라고 대답하는 바람에 브리타, 다리미, 기타 옷 등을 다 한 손에 들고 왔었다. 무거웠다. 




[나에게 민폐를 끼치지 말라고]

어느 날은 집주인 아주머니께서 나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일자리 필요하냐고. 자기 아는 사람이 작은 캔들을 판매하는데 캔들 관련된 책자 하나 만들어줄 수 있냐고. 안 그래도 소일거리가 필요했던 찰나, 일자리를 주어 감사하는 말고 함께 나를 필요로 하는 분의 연락처를 받았다.


나에게 일을 부탁한 분은 바로 옆 옆 건물에 사는 분이었다. 호주에 온 지 10년이 되었다고 했다. 복층 집에 살고 있었는데, 아래층에는 나와 같은 비영주권자가 쉐어생 이 살고 있다고 했다.


나에게 일을 부탁하신 분의 집에 들렀다.


“그 A는(지금 내가 사는 집주인 이름) 남에게 폐 끼치는 거 진짜 싫어해. 그리고 본인도 피해 안 입고 싶어 하고.”

“아.. 네..”

“저번엔 뭐라더라 같이 사는 쉐어생이 음식한거 안 치운다고 스트레스받아하더라고. 대놓고 말 못 하는 스타일이야.”

“아~~ 그렇구나.. 저도 음식하고 바로바로 신경 써서 치워야겠어요. “

“그리고 가장 좋은 쉐어생의 특징이 뭔지 알아?”

“음.. 모르겠어요”

“집에 제일 안 들어오는 쉐어생이 제일 좋은 쉐어생이야. 여기 근처에 도서관 있거든? 거기서 사람들 노트북 하러 많이가. 할 거 없으면 거기 자주 가봐 좋아. 밥은 먹었니?”

“아뇨, 요즘 긴장을 했는지 자꾸 먹는 게 올라와서 못 먹었어요. 좋은 팁 감사해요. 안 그래도 도서관 한 번 가보고 싶었는데~!”


좋은 팁을 얻고, 내가 불청객이라는 느낌을 받은 이상하지만 따뜻한 대화가 오갔다. 


사람은 이렇게 가끔 본인이 원하지 않게 미운 짓을 하기도 한다. 다 이해한다. 내가 본인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 건지 생각 안 해도 상관없다. 이런 말을 듣는 나는 그냥 ‘이런 화법을 하는 사람도 있구나’ 하고 생각한다. 


깊게 생각하면 머리만 아프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와 맞는 사람을 다시 찾아야했다.



[하 팀장 언니와 한인사회 교회]

하 팀장 언니에게 카톡을 보냈다. ‘언니 보고 싶어요’라는 나의 말에 화답이 왔다.

일요일에 본인을 보고 싶으면 ‘XX’ 교회로 와라고 했다. 여기 오면 비빔밥도 준다고 했다.

배도 고프고, 언니도 보고 싶었던 나는 ‘XX교회’를 갔다.


역시나 길치였던 나는 구글 지도를 보고 걸 어음에도 불구하고, 길을 두 번 정도 잃고 나서야 언니를 마주할 수 있었다. 하 팀장 언니는 예배를 하기 위하여 자리에 앉아있었다. 나도 언니 옆에 앉았다. 언니는 내가 10월에 호주 여행을 갔을 때 선물해준 성경책을 들고 있었다.


하 팀장 언니는 교회에서 볼 수 있는 노래를 성악가처럼 부르는 사람 중 하나였다. 

예배가 끝나고 나에게 이 테이블 앉으면 비빔밥을 줄 거라며 어떤 한 테이블에 앉혔다. 요즘 뭐 제대로 먹은 적이 없어서 배가 고팠다. 그 테이블은 교회의 ‘새 식구’를 환영하는 ‘새 식구’ 전용 테이블이었다.


좋았던 날씨가 또 갑자기 변하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빔밥을 다 같이 먹고 교회 안으로 들어가 자기소개를 돌아가면서 하기 시작했다. 나는 맨 꼴찌여서, 다들 자기소개를 하는 걸 지켜보았다. 


관광비자로 온 사람, 워홀 비자로 온 사람, 학생비자로 온 사람, 인턴쉽으로 온 사람 등등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고, 이들의 공통점은 ‘하느님이 호주로 오라고 해서 왔다’라고 말을 끝맺었다는 것이었다.


특정 종교를 비하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 하느님의 뜻이구나 라고 느꼈다는 말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리고 진정 어떠한 종교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행동에 대하여 ‘신’이라는 존재가 함께 한다 생각하면 사실상 그 어떤 행동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호주에 온 지 고작 한 달밖에 되지 않았지만, 기댈 곳이 필요했던 나는 그들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사실상 호주 교회에서는 종교뿐만 아니라, 한국 커뮤니티에 속하고 싶은 사람, 심적으로 외로운 사람들도 많이 온다고 했다. 한국보다 호주에서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을 더욱더 많이 만난 것 같기도 하다.


나눠주는 비빔밥 또한 한인식당을 운영하시는 분들의 재능기부로 진행이 된다고 한다. 

하 팀장 언니도 이 비빔밥 만들기에 재능기부를 한 적이 있어 계란을 100개나 구운 적이 있었다고 한다.


호주가 워홀러들로 가득한 한 참 부흥기였을 때(호주가 한화로 1200원이었을 때, 열심히 일하면 1억은 거뜬히 벌었을 때) 호주 생활을 적응을 하지 못해 굶는 청년들이 생각보다 많았다고 한다. 그들을 돕기 위해 매주 이렇게 밥을 챙겨주는 걸 시작하였다고 한다.


이 교회에선 해외에서 힘든 일이 생긴 이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한인 변호사, 법무사들도 존재한다. 무료 상담도 가능하다. 다들 같은 한국인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뭉쳐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내가 그냥 외로워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참 따뜻했다. 다들. 


하 팀장 언니는 내가 교회에 다니길 바랬다. 교회에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런 제안이 싫지 않았다. 왜냐면 언니는 교회를 통하여 많은 힘을 얻었고, 또 위로도 많이 받았을 테니까.

강요가 아닌 언니의 삶에 종교가 좋은 영향을 끼쳤으니 그걸 나에게 추천해주고 싶었던 건 당연했다.

그래서 너무 고마웠다. 늘 챙겨주던 게 고마웠다. 아직도 고맙다. 


하지만 그 뒤로 교회는 가지 않았다. 

종교 생활은 나와는 맞지 않는 것 같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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