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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동욱 Apr 06. 2022

선수금이 부채인 이유

[외전] 재무 담당자로 먹고 삽니다 (5)

평생 회계에 대해서는 1도 모르던 내가 첫 직장에 입사하고 덜컥 회계부서로 보내졌을 때 느꼈던 그 막막함은 지금도 생생하다. 내 인생에서 숫자와의 힘겨운 사투가 시작된 건 그때부터였다. 처음 모든 회계 계정이 낯설었지만, 그중에도 특히 이해가 안 되었던 건 선수금이었다. 이미 돈을 받은 건데 왜 부채 항목이지? 단순히 입금받은 현금이 자산 계정에 꽂히니까 그 상대 계정인 부채 계정으로 넣어주는 건가? 줘야 할 돈인 외상매입금이나 미지급금은 부채인 게 바로 이해가 되었지만, 이미 돈 받은 선수금을 왜 부채로 분류하는 건지. 회계 왕초짜였던 나는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사실 그렇게 헷갈렸던 이유는 단순하다. 돈 다루는 일을 했던 탓에, 모든 것을 '돈' 중심으로만 생각했던 것이다. 자산이 권리라면, 부채는 의무다. 미지급금은 누군가가 나를 위해 해줬기 때문에 돈을 줘야 의무가 있어서 부채인 것이고, 선수금은 대가를 미리 받았기 때문에 내가 일해 줄 의무가 남아있어 부채로 인식하는 것이다. 부채의 개념을 오로지 '돈'으로만 이해하려 든다면, 선수금이 부채인 이유를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부채는 '갚아야 할 돈' 뿐만 아니라, '갚아야 할 행동'까지도 포함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어떤 것이든 그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는 것에 익숙하다. 오래된 드라마의 명대사, '얼마면 돼?'가 지금도 우리 뇌리에 강렬하게 남아있는 걸 보면, 돈이 전부라는 생각을 무의식 중에 안고 살아간다. 하지만 빌린 돈이 없다고 해서, 갚아야 할 돈이 없다고 해서 우리 인생에 부채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옷 한 벌이라도 날 때부터 스스로 갖고 태어난 것이 아님을 기억하면, 누구에게나  갚아야 할 부채인 선수금이 있음을 알게 된다.


이미 다 큰 어른이 되었는데도 차조심하라며 늘 걱정해주시는 부모님의 애틋함이 선수금이다. 말없이 내 지친 어깨를 감싸주는 아내의 사랑이 선수금이다. 함께 야근을 불사하며 내 옆자리를 지켜주는 직장동료의 도움이 선수금이다. 너무 힘들던 날, 달달한 커피 한잔으로 내 시름을 잠시 잊게 해 준 그 커피숍 직원의 정성이 선수금이다. 그 애틋함을, 사랑을, 도움을, 정성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그 고마움을 안다면, 그것은 선수금이고 내 인생의 부채이다.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은 온전히 나의 재능과 노력 덕분만이 아니라, 내가 세상에서 받은 선수금이 있었기 때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선수금은 돈으로 갚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갚아야 할 빚이다. 행동으로 빚을 갚아 나가면, 선수금은 비로소 '매출' 계정으로 바뀐다. 회사는 매출이 있어야 회사로서의 의미가 있듯이, 인생에도 매출이 있어야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찾는다. 나는 선수금을 빚으로만 놔두고 살아가는 사람인가, 그 선수금을 매출로 바꾸는 사람인가? 잊지 말자. 선수금은 언젠가 갚아야 하는 부채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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