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금이 부채인 이유
[외전] 재무 담당자로 먹고 삽니다 (5)
평생 회계에 대해서는 1도 모르던 내가 첫 직장에 입사하고 덜컥 회계부서로 보내졌을 때 느꼈던 그 막막함은 지금도 생생하다. 내 인생에서 숫자와의 힘겨운 사투가 시작된 건 그때부터였다. 처음 모든 회계 계정이 낯설었지만, 그중에도 특히 이해가 안 되었던 건 선수금이었다. 이미 돈을 받은 건데 왜 부채 항목이지? 단순히 입금받은 현금이 자산 계정에 꽂히니까 그 상대 계정인 부채 계정으로 넣어주는 건가? 줘야 할 돈인 외상매입금이나 미지급금은 부채인 게 바로 이해가 되었지만, 이미 돈 받은 선수금을 왜 부채로 분류하는 건지. 회계 왕초짜였던 나는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사실 그렇게 헷갈렸던 이유는 단순하다. 돈 다루는 일을 했던 탓에, 모든 것을 '돈' 중심으로만 생각했던 것이다. 자산이 권리라면, 부채는 의무다. 미지급금은 누군가가 나를 위해 일해줬기 때문에 돈을 줘야 할 의무가 있어서 부채인 것이고, 선수금은 대가를 미리 받았기 때문에 내가 일해 줄 의무가 남아있어 부채로 인식하는 것이다. 부채의 개념을 오로지 '돈'으로만 이해하려 든다면, 선수금이 부채인 이유를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부채는 '갚아야 할 돈' 뿐만 아니라, '갚아야 할 행동'까지도 포함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어떤 것이든 그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는 것에 익숙하다. 오래된 드라마의 명대사, '얼마면 돼?'가 지금도 우리 뇌리에 강렬하게 남아있는 걸 보면, 돈이 전부라는 생각을 무의식 중에 안고 살아간다. 하지만 빌린 돈이 없다고 해서, 갚아야 할 돈이 없다고 해서 우리 인생에 부채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옷 한 벌이라도 날 때부터 스스로 갖고 태어난 것이 아님을 기억하면, 누구에게나 갚아야 할 부채인 선수금이 있음을 알게 된다.
이미 다 큰 어른이 되었는데도 차조심하라며 늘 걱정해주시는 부모님의 애틋함이 선수금이다. 말없이 내 지친 어깨를 감싸주는 아내의 사랑이 선수금이다. 함께 야근을 불사하며 내 옆자리를 지켜주는 직장동료의 도움이 선수금이다. 너무 힘들던 날, 달달한 커피 한잔으로 내 시름을 잠시 잊게 해 준 그 커피숍 직원의 정성이 선수금이다. 그 애틋함을, 그 사랑을, 그 도움을, 그 정성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그 고마움을 안다면, 그것은 선수금이고 내 인생의 부채이다.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은 온전히 나의 재능과 노력 덕분만이 아니라, 내가 세상에서 받은 선수금이 있었기 때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선수금은 돈으로 갚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갚아야 할 빚이다. 내 행동으로 그 빚을 갚아 나가면, 선수금은 비로소 '매출' 계정으로 바뀐다. 회사는 매출이 있어야 회사로서의 의미가 있듯이, 내 인생에도 매출이 있어야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찾는다. 나는 선수금을 빚으로만 놔두고 살아가는 사람인가, 그 선수금을 매출로 바꾸는 사람인가? 잊지 말자. 선수금은 언젠가 갚아야 하는 부채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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