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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 Won Sep 22. 2020

우두 자국

  최근 화상채팅으로 주치의의 정기검진을 받았다. 코로나 19 이후로 위급한 환자가 아니면 영상으로 진료를 보기 때문이다. 주치의는 3가지 예방주사를 맞아야 하는데 한 번에 다 맞으면 힘이 드니 따로 맞는 걸 권했다. 그 세 가지는 독감, 폐렴 그리고 대상포진 예방주사다. 우선 의사의 진단서가 필요 없는 독감주사를 약국에서 맞았다. 이 약국에서는 내가 가진 보험으로는 독감주사만 적용되고 폐렴과 대상포진 예방주사는 적용이 안된다고 한다.  비용을 묻자 두 번을 맞아야 하는 대상포진은 약 400불이고 폐렴은 100불로 대략 500불이다. 며칠 후 의사의 사인이 된 진단서가 우편으로 왔다. 약국마다 의료보험 적용이 조금씩 다르기에 이번엔 좀 더 큰 약국에 갔다. 약사는 의료보험회사에 직접 확인 후 두 가지 모두 커버되는데 지금 맞을 거냐는 질문에 망설이지도 않고 바로 Yes! 하고 말았다.


  나는 독감주사를 맞으면 보통 3-4일 열이 나고 몸살 기운이 있다. 처음 맞아보는 대상포진 예방주사는 다른 것보다 조금 아플 거라는 약사의 말보다 500불을 세이브할 수 있다는 생각에 씩씩하게 대답했다. 주치의의 말이 생각나 한 번에 두 가지의 예방주사를 맞아도 되냐 물었다. 약사의 상관없다는 말에 나는 양팔을 내밀었다. 손을 많이 쓰는 오른팔은 덜 아픈 폐렴 예방주사를, 다른 것 보다 조금 더 아프다는 대상포진 예방주사는 왼팔에 맞았다. 주사를 맞고 바로 출근을 했다. 팔이 부어오르더니 몇 시간이 지나자 온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춥고 열이 나서 조퇴를 해야만 했다. 


  겨울 잠옷을 입고 전기장판 위에 누웠는데도 온몸은 누구에게 맞은 것처럼 아프고 열이 났다. 그제야 씩씩하게 두 팔을 올렸던 일이 후회가 됐다. 약사가 아프면 타이렌놀이나 에드빌을 복용하라 했기에 4시간마다 약까지 먹어야 했다. 그제야 주치의가 왜 한 가지씩 맞으라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일주일 사이에  3가지의 예방주사를 맞은 것만으로도 예전과 같지 않은 몸의 변화가 조금 씁쓸했다. 아이들은 보리차를 끓이고, 밥을 침대에 갖다 주며 아침저녁으로 안부를 묻는데 그것이 고마우면서도 진짜 병으로 오랫동안 앓아누우면 서로에게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힘든 병으로 먼저 떠난 사랑하는 이들이 병을 알고 숨이 멎을 때까지의 느꼈을 고통이 생각나 그들에게 더 잘해주지 못한 일들이 자꾸 떠올랐다. 


  이틀 만에 식탁에 앉아 밥을 먹는데, 아이들이 주사자국을 볼 수 있는지 묻는다. 나는 두꺼운 겨울 잠옷을 벗어서 두 팔을 보여줬다. 폐렴 주사를 맞은 오른팔은 멀쩡한데, 대상포진 주사를 맞은 왼팔은 벌겋게 부어있었고, 옷이 스치기만 해도 아펐다. 나는 벌겋게 부은 자리를 보여줬는데 아이들은 눈을 크게 뜨면서 엄마 팔뚝의 상처는 왜 생겼냐고 물었다. 아이들이 말하는 상처 자국은 우두 자국이다. 처음 보는 엄마의 우두 자국에 얽힌 이야기를 하는데 아이들의 얼굴이 별안간 진지해졌다. 의료환경이 어려운 그때 하나의 주삿바늘로 예방주사를 놓기 때문에 사용할 때마다 주삿바늘을 불에 달궈 소독시킨 후 바로 주사를 맞아서 생겼다고. 엄마는 그 불주사를 맞을 때마다 남들보다 열도 높고 많이 아펐다고. 오 남매 중에 내 팔뚝에만 생긴 커다란 우두 자국으로 놀림도 많이 받았다고. 그래서 그동안 민소매를 잘 입지 못했다고. 50대 이후 한국사람 대부분 이런 우두 자국이 있다 말하자 아이들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내 방으로 올라와 다시 왼쪽 팔을 살펴봤다. 팔뚝은 아직도 퉁퉁 부었고 또한 벌겋다. 그 위의 커다란 우두 자국 3개를 손으로 만지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예방주사를 맞히고 열이 펄펄 나서 내가 죽는 줄 알고 울었다는 부모님이 생각났다. 이런 일을 자주 겪었을, 예방주사를 맞힐 때마다 두 분은 또 얼마나 불안했을까. 남에게 보이는 게 싫었던 우두 자국을 오늘 우연히 아이들에게 공개되어 설명하던 그때, 처음으로 우두 자국이 정겹게 보였다. 자세히 보니 우두 자국은 마치 올리브나무 꽃처럼 보였다. 이렇게 오랜 세월 내 팔뚝에 남겨진 우두 자국은 부모님의 사랑이 담긴 표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사를 맞은 지 3일이 지나자 몸살기가 조금 사라졌다. 오랜만에 음식을 만들기 위해 우선 샤워를 했다. 거울 속의 우두 자국을 보면서 우두 자국 한가운데에 빨간 립스틱을 살짝만 찍어도 올리브나무 꽃처럼 보일 것 같다. 이제는 당당하게 우두 자국이 아닌 이쁜 꽃을 보여주기 위해 민소매를 입을 여름을 상상하니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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