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의 날은 아이들 셋이 놀러 다니기 시작하면서 아이들이 만든 날이다. 그 모임은 아빠를 잃은 아이들이 상실감과 두려움을 서로 의지하면서 이겨내려는 의도가 숨겨져 있다. 큰애와는 일곱 살, 둘째와는 여섯 살 터울인 막내와 놀아주기 위해 만들어 올해로 15년째다. 용돈이 넉넉지 않은 초창기 땐 영화를 보거나 야구장에 갔고. 대학생이 되고는 음악회나 미식축구를. 직장인이 되고부터 근사한 음식점이나 뮤지컬, 가끔은 술집도 가는 것 같다.
얼마 전 코로나 19로 재택근무가 끝나면 게임만 하는 것이 지쳤는지 아이들이 캠핑을 간다고 한다. 그동안 장거리 여행이나 조금 비싼 뮤지컬은 가족행사로 같이 다녔기에, 당연히 나도 캠핑을 간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들의 표정이 난감 해한 얼굴이다. 나는 손님과 약속이 있는 것을 잊었네 라며, 눈치 있게 말하면서 형제의 날 이벤트 이냐고 묻자 아이들이 그제야 웃었다. 나는 거실에 펼쳐진 텐트를 기웃거리고 장비를 만지는 아이들의 사진도 찍었다. 이런 내 모습에 미안했는지 다음엔 엄마도 같이 가요 한다. 나는 장난스레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아이들이 같은 공간에서 즐거움을 공유하는 것은 부모 입장에서 보면 언제나 보기 좋다. 서로의 표 나지 않는 배려와 사랑을 통해 그들이 성장한 것 같아서 형제의 날을 챙기는 그들이 고맙고 기특하다.
스테이크와 닭 가슴살을 양념해서 한 끼씩 먹을 만큼 미리 얼려놨다. 캠핑 가는 당일엔 김밥도 만들었다. 스낵과 술까지 가득 싣고 떠나는 아이들의 환한 미소를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사실 무서움이 많아 혼자 집을 지키는 저녁만 빼면 삼시 세끼를 안 해도, 청소를 안 해도 되니 혼자 집에 있는 건, 나만의 여행이 되어 나쁘지 않다. 2박 3일의 캠핑이 끝나고 집으로 오는 날은 아버지의 날이다. 나는 아침 일찍 산소 갈 준비를 하면서 아이들에게도 시간이 되면 산소에 들리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산속엔 WIFI 없으니 답변도 없다. 게임만 하던 아이들이 문명의 이기를 하나도 사용 못 하는 캠핑하는 2박 3일이 궁금했다.
점심때쯤 도착한 아이들은 나와 같이 먹을 햄버거를 사 왔다. 내 눈빛을 읽었는지 아이들은 소주가 없어서 양주를 한 잔씩 아빠에게 드리고 왔어요 한다. 그동안 차례와 제사를 통해 보고 배운 대로 한 잔씩 묘 주변에 뿌리고 인사했을 정경이 눈앞에 보였다. 큰애와 작은애는 가끔 혼자서도 가지만 이렇게 형제끼리 산소를 방문 한건 처음이다. 점심을 먹고 혼자 꽃을 들고 산소에 갔다. 아이들이 술을 얼마나 많이 뿌렸는지 몇 시간이 지났는 데도 묘 주변에 술냄새가 진동했다. 술을 좋아하는 그가 아이들의 술잔을 받았으니 얼마나 좋았을까. 살아있으면 남자 넷이서 술판을 벌일 나이다. 술향이 진해서 꽃이 금방이라도 시들 것 같아도 오늘은 꽃향보다 술향이 더 좋다.
집으로 가는 길에 음식점에 들려 아이들이 좋아하는 회덮밥을 샀다. 나는 저녁을 먹으면서 아이들에게 "그동안 아들 노릇도 잘했고, 또 서로 아빠 노릇을 잘해줘서 정말 고맙다". " 너희가 오늘은 아버지의 날 주인공이기에 이 음식은 고맙고 자랑스러워서 마련했다" 라고 말하자 아이들은 부끄러운 듯 웃었다. 그러면서 엄마가 강해서 우리도 강한 것이라며, 엄마면서 아빠 역할까지 해줘서 고맙다고 나를 안아줬다. 우린 서로의 존재로 힘이 되고 잘 견뎠던 속 이야기를 하면서 식사를 마쳤다.
꽃은 아니지만, 묘지의 양주 냄새는 카네이션만큼 아름다웠다. 형제의 날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모르지만 셋이 잘 어울리는 모습이 위안이 된다. 맥주 한 캔을 들고 침실로 올라왔다. 캠핑 장에서 찍은 사진들이 단톡 방에 올라왔다. 본인 사진을 찍은 것보다 서로를 찍어 올린 사진들이다. 그 사진엔 옆모습, 뒷모습이 있는데 그런 장면이 참 좋다. 서로의 애정이 담긴 사진을 보고 있으니 맥주가 더 맛나다. “ 당신 아이들 잘 키웠네”라고 그가 말해주는 것 같다. 오늘은 묘지도 집도 술 냄새가 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