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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 Won Jun 04. 2021

웰 다잉 well dying

  


  2021년 3월, 봄부터 시니어들에게 Zoom이라는 온라인으로 캘리그래피를 가르치고 있다. 매주 만나는 그들 속에서 나이가 많아 보이는 학생을 보면 친정엄마의 모습을 본 듯 설렌다. 마치 가상화면으로 돌아가신 친정엄마와 대화하는 것 같아 자주 목이 멘다. 나는 친정엄마에게 젊은 시절의 꿈이 무엇인지 물어본 적이 없다. 친정엄마가 10살쯤 부모님을 여의셨기에 그녀의 꿈은 그저 단란한 가족일 거라는 막연한 생각만 했다. 캘리그래피를 배우는 시니어 학생들과 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친정엄마와 비슷한 연배의 몇몇 학생들의 답을 듣고 싶어 마음 졸였지만 그들은 답 대신 빙그레 웃기만 한다.


  나는 작은 나무로 된 고래에 색을 칠하고 "꿈"이라는 단어를 적었다. 눈망울을 그리고 입술을 그릴 때 그 모습이 나 같아서 눈물이 났고, 엄마의 꿈같고 시니어 학생들의 꿈같아 눈물이 났다. 가족이라는 삶의 무게로 본인들의 꿈을 고래가 날고 싶은 꿈을 꾸는 것처럼 힘들고 무거워했을 그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60넘은 여성 대부분은 아들에게 밀렸고 가족의 무게로 꿈을 양보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시니어 학생들에게 이것을 보여주자 탄성이 쏟아졌다. 그들은 잊고 있던 꿈을 떠 올렸을까? 친정엄마의 젊었을 적 꿈은 무엇일까?


 나는 결혼 전 꿈에 대한 리스트를 적어놓은 게 있다. 그 안엔 작가가 되고, 시집을 출간하는 것이 꿈이고, 나의 사랑으로 가족이 행복해지는 것이 꿈이었다. 여행을 다니며 많은 사고의 질을 높이는 것도 있었지만,  삶의 굴곡에서 허우적 일 때 꿈은 사치라 여겼던 적도 있다. 그럼에도 어는 정도 이뤄졌다 생각이 드는 건 "변치 않은 꿈 지키기"를 나도 모르게 꾸준히 한 것 같다. 그렇다고 대단한 꿈을 꾸지 않은 건 어쩜, 나는 내 그릇의 양을 알았던 건 아닐까. 


  몇 년 전 사랑하는 엄마가 곁을 떠났다.  그녀와의 이별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그 후 나는 무엇이 되고, 무엇을 갖는 것보다, 어떻게 살아가고 어떻게 죽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닭게 되었다. 고래의 빛나는 눈동자처럼 언제나 맑게, 둔한 몸짓이 되더라로 영혼은 둔하지 않게 늙으면 좋겠다. 또한 자식에게 폐가 안 되는 죽음을 맞았으면 좋겠다. 내 목소리에 귀를 쫑긋하고, 미소 짓는 시니어들의 마음도 나와 같은 마음일 것이다. 말은 하지 않아도 알 것 같은 well dying 은 돌아가신 친정 엄마의 노후의 꿈이듯, 매주 만나는 시니어 학생들의 꿈일 것이다. 그리고 나의 꿈이다. 


  한 주 후면 캘리그래피 마지막 수업이다. 그들과 헤어져야 하는 아쉬움이 가상화면 속 엄마와 헤어지는 것처럼 마음이 무겁다. 마지막 수업 주제로 "감사"라는 단어 쓰기로 캘리그래피 숙제를 냈다. 어떤 감사를 써야 할지 쉽사리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엄마의 사진을 보면서 엄마에게 꿈이 뭐냐고 물었다. 곱디 고은 한복을 입은 그녀는 망설임 없이 " 너 아프지 않은 거"라고 하시는 것 같다. 나 말고 엄마의 꿈을 말해야지 라며 짜증 내는데 눈물이 쏟아졌다. 엄마의 꿈은 뭐였냐고? 그녀는 시니어 학생들처럼 빙그레 웃기만 한다. 


  친정엄마가 살아생전 나에게 말씀해주신 말이 생각이 났다. "네가 내 딸이라 감사하지". 그때 나는 멋 젓게 웃기만 하고 못 들은 척하며 답을 못했다. 이제야 나는 사진 속 엄마에게 " 나의 엄마라 감사했어요"라고 고백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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