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정 아침 한국에 사는 작은 오빠에게서 사진 한 장이 왔다. 한 장의 사진이지만 그 사진 속엔 아픈 가족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큰오빠와 남동생이 먼저 하늘로 갔기에 작은 오빠 혼자 지내는 제사상은 외로워 보였다. 오빠 내외가 정성스럽게 차린 제사상엔 넉넉지 못한 살림살이가 보이고, 큰집도 아니면서 제사를 지내는 올케의 눈치를 능력 없는 늙은 작은 오빤 아무 말도 못 했을 것이다. 넋 놓고 제사상을 바라보는 구정이라고 양로원에서 모시고 온 엄마의 모호한 표정의 옆모습을 보니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사진 속의 빨간 스웨터를 입은 엄마는 요양원에 있는 모습보다 고왔다. 온전한 기억이 아니더라도, 낯선 모습의 노파가 되었어도 이렇게 살아 계심에 그저 감사했다. 끊임없는 사업 실패로 근 20년 만에서야 다시 마련한 오빠의 집은 엄마의 돈과 합쳐 마련했지만 더는 셋방을 전전하지 않아도 되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나와 언니도 그렇지만 엄마가 늘 마음 쓰던 부분이라 훗날 눈을 감으실 때 덜 아플 것이기에 무엇보다 다행이고 기쁘다. 슬픔과 기쁨이 공존하는 그 사진 속에 언니 가족이 있었으면 더 좋을 텐데 가족 간의 불화도 보여 씁쓸하다. 서로 마음만 있을 뿐 먼저 손을 내밀지 못하고 가슴앓이만 하는 상황이 하루빨리 사라지길 바랄 뿐이다. 멀리 있다는 핑계로 속수무책 중간 구실도 못 하는 내가 처한 상황들이 조금은 원망스럽다.
3월이면 86세가 되는 엄마는 60대에 사랑하는 남편을 보내고 70, 80대에 자식 셋을 먼저 가슴에 묻으셨다. 남편이 죽으면서 남긴 유산 일부는 자식들 성화에 못 이겨 일부 나눠주셨다. 집 한 채 남은 것엔 월세방을 들여 당신이 사용하는 모든 경비를 그것으로 충당하며 자립하셨고 그 살림 속에서도 절약해서 쌈짓돈을 만들어 가족들에게 쓰셨다. 엄마의 예감이 맞았는지 자식들은 자기 사느라 엄마에게 생활비를 시원하게 주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엄마는 더 악착스럽게 그 집을 지키려 했고 치매 걸린 지금도 월세로 나오는 돈으로 요양원 비용을 충당하는 당신을 대견해했다. 혼자 모든 것을 책임지려던 강인한 성격임에도 두 아들을 먼저 보내고 청상과부가 된 막내딸에 대한 근심은 갖고 있던 지병을 더 악화시켰고 머릿속이 까맣게 타들어 가는 것은 막지 못했다. 치매가 진행되자 언니의 간청으로 한동안 같이 살았으나 오랜 세월 혼자 살던 엄마는 불편해했다. 골다공증으로 허리가 반이나 꺾여 걷지도 못하면서 자식과의 생활이 미안하고 불편해 다시 혼자 살고 싶다고 억지를 부리기도 했다. 이렇게 남아있는 자식에게 해가 안되려는 마음에 지나친 자기 방어를 하다 보니 의도치 않게 가족 간 불화를 만들었다. 한국을 방문한 작년 봄 어느 날 엄마는 당신 자신이 몸의 변화에 이상함을 감지했는지 나에게 유언장을 만들어야 한다며 추후 발생할지도 모를 심폐소생술이나 생명 연장은 안 할 것이며 죽으면 화장을 하고 사후 제반 비용 후 남는 금액은 똑같이 나눈다는 내용을 써달라고 보채기 시작하셨고 유언장을 만들었다.
엄마의 상태는 점점 안 좋아졌다. 꿈속에선 늘 사자들과 산 자들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꿈과 현실을 혼동하셨다. 엄마는 점점 혼자만의 잡념에 빠져서 사건을 매일 만들더니 결국 언니 집에서도 하나 남은 아들 집에서도 살 수 없게 변했다. 24시간 관리를 받아야만 하는 상태의 엄마를 요양원에 모셔다 드리고 자식들은 불효에 울었다. 엄만 당신의 치매로 자식들이 받을 고통을 절대 반대하면서도, 내심 자식 곁에 있고 싶은 맘을 내색하지 못하고 벽을 보고, 먼저 간 남편에게 자신을 빨리 데려가라고 밤마다 울었을 것이다. 부부가 밤낮으로 일하는 오빠가 온종일 돌봄이 필요한 엄마를 모실 수 없는 건 당연하고, 항암치료받는 언니네에서 살 수 없는 것 또한 당연한데 그들은 죄스러워한다. 한편으론 요양원에 계심으로 엄마 당신도, 오빠와 언니가 어느 정도 숨통이 틔는 것을 수긍하셨다. 비슷한 할머니들이 모인 곳에서 한동안 적응 못 해 밤마다 운다는 소식은 미안하고 서글프지만 뚜렷한 해결 방법도 없다. 엄마와 가족들은 곧 다가올지도 모를 죽음이 두렵고 슬프면서도 한 번이라도 더 사랑을 표현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런데도 엄마는 조금씩 자식들의 얼굴을 못 알아보기 시작했고 밤마다 우는 시간도 적어졌다. 조금씩 적응해가는 모습이 불쌍하면서도 안도가 되는 복잡한 심경이 불효 같아 편치 않다.
구정이라 아들 집에 나들이 온 엄마는 희미한 정신이겠지만 분명 기뻤을 것이다. 제사상엔 당신이 그리워하는 남편의 사진을 보고 속마음을 나눴을 것이고, 예전보다 좋아진 아들 집을 보고 남몰래 웃었을 것이다. 또한, 구정에 같이 못 모였지만 매주 요양원 방문 시마다 큰딸이 가지고 오는 음식 속에 미안함과 사랑이 담겼음을 아실 것이다. 나들이가 끝나 요양원에 모셔다 드릴 때나, 요양원 방문 후 헤어질 때 마음들이 편치 않았으리라. 치매 걸린 엄마와의 이별이 성숙할 순 없지만 그래도 지혜롭게 견디는 가족들이 고맙다. 멀리 떨어진 자식인 내 입장은 내세우면 안 된다고 늘 생각하면서 살았다. 몇 년에 한 번 한국에 가서 효도한답시고 정성을 다하지만, 떠나오고 나면 그 후유증은 같이 사는 가족이 떠맡아야 하는 또 다른 문제라는 걸 나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는 나와 있을 때 효도받는 것만 생각하며 내가 떠난 후 오빠네에서, 언니네에서 혼자 만든 설움에 빠지기 때문이다. 타국에 사는 나는 이방인이고 언니와 오빤 진정한 가족이라는 걸 엄마만 모른다.
언젠가부터 나는 이 구정만 지나면 주무시다 가시게 해 달라고, 이번 엄마 생신만 지나면 주무시다 가시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강인한 성격의 엄마가 끝까지 대소변을 구분하시어 자존심을 지켜달라 기도한다. 엄마의 정신이 나들이 가는 일이 점점 많아지는 요즘 그래도 그 나들이조차 자식들이 볼 수 있는 것에 감사하고 있다. 돌아오지 못하는 나들이보다 더 좋으니까. 엄마 생신 축하드린다는 말을 얼마나 더할 수 있을진 모른다. 이젠 자식을 봐도 한참 만에 기억하고 기억하는 그 순간 늘 하는 첫 말은, 밥 잘 챙겨 먹지? 다. 엄마가 사용하던 모든 단어도 나들이 보냈는지 늘 이 단어만 반복하신다. 이 말씀엔 내가 너무 오래 살아 너희에게 미안하다, 보고 싶다, 고맙다, 사랑한다는 뜻이라는 걸. 다른 모든 것을 나들이 보내도 이 단어만은 보내지 않는 엄마의 자식 사랑에 가슴이 먹먹하다. (엄마 살아생전에 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