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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용준 Dec 31. 2020

아내가 맞다.

식탁에서

요 몇 년간 잦은 야근에 가족들과 저녁을 함께 먹은 날이 손에 꼽는 것 같다.

시간에 쫓기며 먹는 식사가 익숙해져인지 가끔 함께하는 저녁시간에도 아이들과 아내가 뜨거운 국물을 후후 불며 먹는 중에 먼저 수저를 내려놓는 게 일상 다반사였다.

그나마 함께하는 시간을 감지덕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내의 마음속에는 또 하나의 그늘을 지웠나 보다.


코로나로 인해 타의 반 퇴근 시간이 빨라지면서 가족들과 저녁을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진 요즘, 아내는 그동안 곁에 없어 전하지 못한 말을 떠날 사람처럼 계속해서 얘기하곤 한다.

나름, 아내의 얘기에 집중한다고 하지만 나도 모르게 먼 산을 바라보고 있으면 아내는 이내


"사람이 얘기를 하는데 어딜 보는 거야? 눈을 보고 얘기해야지. 대화 좋아한다며" 하고 쏘아붙이곤 한다.


그래, 분명 나는 대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결혼할 때 아내의 얼굴이 닳도록 바라보고 사람들과 얘기하는 걸 즐긴다고 기대를 줬는데

막상 결혼하고 나서 얼마나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고 대화를 했는지 기억이 가물하다.


한 숟가락을 뜨면서 아내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니

여전히 내게는 아름다운 사람이지만 곳곳에 배어진 추억의 어스름 때문일까, 함께한 세월 동안 아이들과 남편 뒷바라지가 얼굴을 많이 상하게 했다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커진다.


부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

주말마다 일확천금을 꿈꾸며 복권방 앞에서 숫자를 조합하기도 하고, 회사에선 나 없으면 일이 진행되지 않을 것처럼 착각하며 내 노력이 보상으로 돌아오지 않는 것을 원망하며, 또 기대하며 하루하루를 나름 치열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10년이 지난 지금 이곳에서 삶의 이정표가 어디로 향하고 있었는지 나에게 되묻게 되었다.


"내가 이렇게 살아가는 건 어쩌면 당연한 거였는데..."

"나중에 아이들 등록금도 해결해야 하고, 결혼한다고 하면 결혼 자금도 대줘야 하고, 우리 노후자금도 마련해야 하니깐 열심히 돈을 벌어야 하는 건데...."


그런데, 그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들이 결국엔 무엇을 위해서였을까?


코로나가 나에게 준 유일한 선물, 시간의 여유 속에서(마음의 여유는 뺏겼지만) 가족과 함께하는 저녁 시간이 늘어나는 요즘 다시 묻고 되뇌게 된다.

아이들과 아내와 밥숟가락 뜨는 저녁 시간 속에서 아내가 한 말들이 귓가에 맴돌면서 나의 삶의 방향성을 다시금 생각해본다.


아내가 맞다.

아내가 얘기하는 가족과의 행복한 삶을 추억으로 남기는 게 맞다.

아내가 얘기하는 아이들과 대화하기 위해서 잘 귀 기울여주고 들어주고 얘기해 주는 게 맞다.

담백하게 아내와 눈을 보고 얘기하는 게 맞다.


그렇게 가족은 함께한 시간을 추억하고 나누며 살아가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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