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앉아 맞는 시원한 바람이 여행이다
'라떼는 말이야~'
'아빠 정말 꼰대네요 욱~'
나와 욱이는 부자지간이지만 참 다른 면이 많다. 욱이의 성장과정을 함께 하며 새삼 느끼는 것은 이 아이는 내 아들이지만 나와 다른 인간이구나 하는 것이다. 그 점을 인정하지 않으면 갈등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거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욱이가 내 아들로서 이렇게 저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강한 바람을 많이 가지고 있다. 가끔 라떼는 말이야, 하면서 내가 가진 기준을 강요(이건 욱이의 표현이다. 권장이나 제안이 더 가깝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기도 한다.
이런 둘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서 부딪치기 쉬운 때가 바로 여행할 때이다. 나는 욕심도 많고 적극적인 편이라 가보고 싶은 곳이 있으면 서둘러서 한두 곳이라도 더 가보고 싶어 하는 편인데, 욱이는 여러 군데 가지 말고 조금만 보고 숙소에서 쉬는 걸 좋아한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서 멀리까지 왔는데 아깝지 않냐고 하지만, 욱이는 별로 가고 싶어 하는 곳도 없고 수동적이기만 하다.
캘리포니아 산타애나란 곳에 도착한 지 일주일이 지나서, 차도 마련하고, 휴대폰도 개통했고, 은행계좌도 개설했고, 운전면허도 해결하고 나니 어느 정도 정착이 된 것 같아서 마음이 놓였다. 본격적으로 학기가 시작되면 시간이 없을 테니 학기 시작 전에 여행을 가기로 했고 여행지를 정하는데 욱이에게 우선권을 주었다. 가고 싶은 곳을 먼저 말해주면 거기에 맞추어 일정을 짜자고 했다. 물론 욱이는 적극적이지 않았고 주로 내가 의견을 내는 식으로 논의를 거듭한 끝에 바로 이틀 후 월요일부터 요세미티와 샌프란시스코 여행을 가기로 했다.
시간이 촉박해서 일단 숙소 예약을 해야 했다. 내가 여행책을 보고 지도를 찾아보며 토요일 밤 12시가 넘어서야 겨우 예약을 했는데, 욱이와 이야기하다가 내가 확 짜증을 냈다. 여행 계획을 짜는걸 적극적으로 돕지는 않으면서 이건 이래서 싫고 저건 저래서 싫다며 자기의 요구사항만 얘기하는 것을 내가 결국 못 참은 것이다. 미국 와서 처음으로 화를 내니 욱이도 당황한 눈치였다. 내가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유머러스하게 대응하면 좋았을 텐데 미국 와서 일주일 동안 여러 가지로 신경 쓰느라 정신적으로 피곤하고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랬던 것 같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캘리포니아 와서 첫 여행을 떠났다. 6시간을 차로 달려 요세미티 근처의 오크 허스트(Oakhurst)라는 작은 타운의 숙소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숙소는 말이 로지(Lodge)이지 단층 조립식 건물이라 낮동안 받은 뜨거운 열기가 밤에도 벽에 남아 있었고 여러모로 허름했지만 여기도 유명 관광지 근처는 비싸다는 우리 호스트 더그의 얘기에 위안을 받았다.
다음날 아침에 요세미티 밸리로 가는 버스를 타고 공원 안으로 들어갔다. 사실 코로나로 최소 일주일 전에 입장권을 예약해야 했는데, 급하게 온 여행이라 예약을 못했었다. 다행히 전날 숙소 프런트에 전화를 해서 물어보니 버스를 타고 가면 미리 입장 예약을 안 해도 된다고 해서 한숨을 돌렸다. 급하게 준비한 여행이라 여러모로 허술했다.
버스로 2시간이 걸리는 산길을 가는데 운전하시는 분이 데비라는 여자분이었다. 욱이는 전날 잠을 설쳤는지 버스 안에서 계속 자고 내가 뒤에 앉아 데비랑 얘기를 좀 나누며 갔다. 요세미티 부근의 도시인 프레즈노에서 태어난 데비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약사 보조로 일을 했었고 지금은 고향인 프레즈노로 돌아와서 스쿨버스와 요세미티 버스를 운전하고 있다고 했다. 약사 보조도 면허가 있어야 하는 일이라고 했는데 대도시 생활이 싫어서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데비는 버스 왼편으로 보아야 경치가 좋다고 얘기해주었고, 터널을 지나자마자 나오는 경치를 잘 보라고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데비는 버스를 안전하게 잘 운전했다. 차분한 여성 운전자라 더 마음이 놓였던 것 같다. 친절에 대한 답례로 우리 과자 고소미를 하나 주고 내렸다.
밸리에 도착해서는 자전거를 빌려서 다녔다. 날씨가 무척 더웠다. 코로나로 셔틀버스가 운행되지 않아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다녀야 했다. 자전거는 핸들에 브레이크가 없고 페달을 뒤로 돌리는 브레이크 시스템이라 좀 어색했지만 우거진 나무 사이를 달리는 기분은 상쾌했다.
요세미티 폭포 중 아래쪽 폭포를 보고 나서 자전거로 미러 레이크 쪽으로 이동했다. 폭포는 가뭄이라 수량이 많지 않아 겨우 가는 물줄기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자전거를 입구에 세워두고 십오 분 정도 걸어가서 미러 레이크에 도착했다. 그런데 사진에서 보던 미러 레이크의 파란 물이 안보였다. 극심한 가뭄으로 호수가 거의 말라 있었던 것이다. 조금 아쉬웠지만 주변 경치가 정말 좋아서 만족하기로 했다.
미러 레이크 주변에는 말 그대로 깎아지른 듯한 흰색 절벽이 눈앞에 솟아있었다. 요세미티의 상징인 하프돔이다. 짧은 한나절 일정 중 요세미티 폭포에 이은 두 번째 포인트인데, 여기오니 왠지 다른 곳은 더 가보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욱이와 시원한 바람이 부는 그늘에 앉아 거대한 바위를 바라보는 여유를 한참 동안 가질 수 있어 좋았다. 그 옛날, 인디언들(미국에서도 이제는 이 말을 쓰지 않고 미국 원주민, 즉 Native American이란 표현을 쓴다)에게도 이 바위는 신성한 대상이었을 것이다. 두세 시간 걸려 하프돔 정상에 올라가는 등산로도 있었고, 누군가에게는 정상에 올라가는 것이 큰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하프돔을 바라보며 욱이와 함께 앉아 시원한 바람을 맞는 시간이 더 의미 있게 다가왔다.
하루 동안의 요세미티 밸리 투어. 예전의 나 같으면, 욕심내서 최대한 보고 싶은 곳을 많이 가보려고 했을 것이다. 오늘은 욕심 대폭 줄여서 딱 세 곳만 보려 했다.
욱이에게 오늘 일정에 대한 의견을 물으니, 두 곳만 가자고 했다. 나는 여기 요세미티까지 힘들게 와서 고작 두 군데만 보고 가는 건 아깝다고 생각했다. 욱이는 덥고 힘든데 왜 그렇게 무리를 하냐고 했고 나는 왔으니 하나라도 더 보고 가야 하지 않냐고 해서 의견이 부딪쳤다. 결국 일단 한 군데 먼저 가보고 나서 시간을 보며 판단하기로 했다. 요세미티 폭포를 보고 샌드위치로 점심을 먹은 후 미러 레이크로 갔다. 천천히 경치도 구경하며 올라갔다 내려왔더니 두 군데만 갔을 뿐인데 버스 탈 시간이 겨우 한 시간 정도 남았다. 물론 처음부터 바짝 서둘렀으면 폭포를 한 군데 더 볼 수 있었겠지만 많이 바쁘고 지쳤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욱이의 의견에 따라 두 군데를 여유 있게 보는 것이 옳았던 것 같다. 날씨가 몹시 덥고 햇살이 따가웠기 때문이다. 너무 욕심 내지 않는 지혜를 아들에게 배운 하루였다. 아들과 함께 하프돔을 바라보며 바위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맞았던 기억이면 충분한 추억이다. 그게 바로 여행의 목적이다. 여러 유명한 곳을 찍고 와서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하는 것이 여행의 목적은 아니다.
인정한다, 아들에게서도 배울 수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