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니 애비다!"
영화 스타워즈 캐릭터 중에서 내 마음에 드는 것은 제다이도 아니고 한 솔로도 아니고 다스베이더와 그의 병사들인 스톰 투르퍼스 들이다. 모든 영화는 멋있는 악당이 나올 때 성공한다, 고 나는 생각한다. 악당이 멋있으려면 자기의 논리와 명분이 있어야 한다.
인정한다. 세대차이, 성격차이 등으로 인해 욱이의 눈에 아빠인 나는 당연히 꼰대일 것이다. 하지만 아빠의 눈으로 보는 욱이는 어떠한가. 글을 통해 아들을 비판하는 게 즐거운 일은 아니지만, 맨날 아빠만 라떼라고, 꼰대라고 구박받을 수는 없는 일이기에 최대한 이성적으로 지적을 해보고자 한다.
이번에 미국에 올 때 욱이와 함께 온 이유는 명확하다. 영어도 익히고 이곳의 문화도 체험해서 보다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몇 달 안 되는 짧은 기간이지만 부지런히 만나고, 여기저기 다니면 젊은 날의 소중한 경험이 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는 나와 달리 내 눈에 비치는 욱이는, 적극적이지 않다. 아니, 참 소극적이다.
이곳 대학에서 하는 ESL(English as a Second Language) 영어 과정이 있다. 말하자면 어학연수 과정인데, 욱이는 이걸 듣고자 한다. 참고로, ESL 과정은 엄청 비싸다. 하지만 욱이가 열심히 하고자 한다면 꽤 큰 가계 출혈이 있더라도, 달러빚을 내서라도 (이건 너무 올드한 표현인가^^) 지원을 해주고자 한다. 문제는, 본인이 열정과 열의를 가지고 먼저 나서서 알아보고 물어보고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욱이는 매우 수동적이다. 마치 그냥 아빠 따라 놀러 온 마인드라고나 할까. 모든 것은 아빠가 알아서 해주니 자기는 그냥 유유자적, 안빈낙도의 마인드로 마지못해 따라주면 된다는 자세다.
초중고생도 아니고 이제 어엿한 성인인 대학생인데, 본인의 ESL 과정 알아보는 것과 등록하는 것 까지 아빠가 이 나이에 나서야 하는가. 이건 아니다 싶었다. 그래서 욱이에게 싫은 소리도 가끔 하고 화도 내게 된다.
"이게 지금 아빠가 나서서 해야 할 일이냐? 이 정도는 이제 너도 성인이니 네가 알아서 해야지. 아빠도 나이가 들어서 이런 거 하기가 힘들어."
하지만 욱이는 여전히 수동적이다. 매일 잔소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오지만 참으며 며칠 지켜보다가, 안 되겠다 싶어서 ESL 등록절차 찾아봤냐고 하면 그제야 학교 사이트에 들어가서 찾아본다. 의문사항에 대해 담당자에게 메일 보냈냐고 물으면 그제야 보내겠다고 하니 아빠의 입장에서는 답답하기 그지없다.
이 뿐만이 아니다. ESL이 개강하기 전에 지역사회 교회 같은 곳에서 하는 무료 영어회화 교실이 있으니 찾아서 들으라고 내가 호스트인 쥴리에게 물어서 웹사이트까지 찾아 보내주었는데, 그 후로 감감무소식이다. 나 같으면 당장 들어가서 시간과 장소를 확인하고, 담당자에게 메일을 보내 신청을 할 것 같다. 하지만 이것도 내가 몇 번 물어본 후에야 움직인다.
물론, 나도 안다. 아빠가 너무 나서거나 재촉하면 아이의 자율성이 떨어지고, 스스로 하려던 것도 아빠가 시켜서 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흥미가 떨어진다는 것을. 그래서 아빠는 최대한 아이에게 정보와 조언을 주는 정도만 하고 본인이 찾아나가는 모양이 좋다고 생각한다. 또한 욱이의 수동적인 태도가 그동안 아빠의 지나치게 적극적인 태도에 치인 결과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참 어렵다. 욱이의 청소년기를 함께 겪으며 느낀 것이기도 하지만, 대학생이 된 지금까지 끝나지 않는다. 아빠의 개입이 자주 필요하다. 하지만 이제 욱이도 성인인데 전처럼 무리하게 재촉하거나 강요할 수는 없다. 방법은 하나뿐이다. 목소리 높이지 않는 대화를 통해 이따금 조언을 해줄 수 있을 뿐이다. 나도 안다. 내 역할은 여기까지 일 것이다. 그 이상으로 밀어붙이면 욱이는 튕겨져 나갈 수도 있다. 시간이 걸리고, 답답하더라도 방법은 이것뿐이다. 어떤 행위를 하고 말고는 본인의 의지에 달렸다.
하지만, 하지만, 나는 욱이의 아빠다. 이렇게 하면 좋을 텐데, 저렇게 하면 더 좋은 체험이 될 텐데, 하며 욕심을 내게 되고 뜻대로 안 될 때는 화도 난다.
이번 미국살이는, 결국 나, 라떼의 수양이다. 버럭 화를 내고 싶더라도 참고, 기다리고, 웃어야 한다. 다른 것은 다 얻지 못하더라도 꼭 한 가지 가져가야 하는 것이 있다면, 그건 '관계'일 것이다. 욱이와의 좋은 관계만 얻어갈 수 있다면 이번 미국살이는 성공임을 잊지 말자.
나, 라떼 다스베이더는 말한다. "I am your fath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