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층은 아빠 혼자 보세요

운명 공통체적 관계?

by 라떼

여행을 함께 가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여행은 즐겁고 설레는 일이기도 하지만, 일상을 벗어나서 낯선 곳에서 밤낮으로 돌아다니는 경우가 많아 또한 매우 피곤한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피곤하고 예민해질 때 그 사람의 인내심과 상대에 대한 배려를 알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여행은 각자의 취향을 잘 드러낸다. 여러 곳에 가보고 싶은 사람도 있고 한 곳을 가더라도 오래 머물며 음미하고 싶은 사람도 있다.


나 라떼와 욱이는, 말하자면 여행 중이다. 몇 년 전부터 여행지에 '한 달 살기'가 유행이다. 반년이 안 되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둘만의 미국살이는 일상과 여행이 섞여 있지만, 본질적으로 내 나라를 떠나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반년 살기'이다. 아버지와 아들만 반년이나 외국에서 같이 지내는 것은 흔한 여행은 아니다. 내게 이번 반년 살기 여행은 우여곡절이 있고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이 있는 여행 스토리이다. 나와 욱이는 함께 이곳에 적응하는 운명공동체적인 관계이지만, 때론 (실은 많은 경우에) 서로가 극명한 의견 차이로 대립하는 투쟁(난 멋있는 사상투쟁 같은 것이길 바라지만, 대부분은 누가 빨래를 개야 하는가 같은 극히 소심한 생활 투쟁)의 대상이기도 하다.


이전 글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좀 나서기를 좋아하고 오지랖이 넓으며 하고 싶은 게 많다. 반면에 내 아들이지만 욱이는 나와 전혀 다른 사람이다. 욱이는 차분하고, 주목받는 것을 싫어하며, 하고 싶은 것이 많지 않은 엄마의 성격에 더 가깝다. 나와 닮은 것은 외모뿐이다. (욱이는 나를 닮아 키는 큰 편이지만, 아빠의 좁은 어깨까지 닮았다고 불만이 많다)


얼마 전에 주말에 시간을 내어 LA 근교에 있는 게티 빌라(Getty Villa)에 갔었다. J. Paul Getty라는 미국의 억만장자가 1950년대에 그리스와 로마시대의 고미술품을 수집하여 전시한 대저택인데 볼거리가 많았다. 1층을 다 보고 2층을 볼 시간이 되었는데, 욱이는 힘들다고 그냥 1층 로비에 앉아 기다리겠다고 했다. 코로나 와중에 많은 노력과 비용을 들여서 이곳 캘리포니아에 어렵게 왔는데 이런 좋은 곳을 절반만 보다니. 차도 막히는 주말에 여기까지 1시간 반이나 힘들게 운전해서 온 나이 든 아빠도 보는데, 2층을 안 보겠다니.

20210911_110352.jpg 게티 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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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 빌라 내에 전시된 음악의 신 뮤즈 상(왼쪽)과 앗시리아 (옛 이라크)의 부조

받아들이기 어려웠지만, 욱이의 의사를 존중해서 그러라고 했다. 2층을 서둘러 보고 내려오니 욱이는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이런 멋진 곳에 와서도 카톡을 하고, 유튜브 보고 낄낄대는 것이 더 좋다는 말이냐, 하는 말이 목까지 차 올라왔지만 타국에서의 운명공동체적인 관계를 해치고 싶지 않았다.

20210911_121747.jpg 게티 빌라는 옛날 그리스와 로마시대의 대저택 모습으로 만들어져 아름다운 정원이 있다
20210911_121131.jpg 게티 빌라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정원의 모습

나는 욱이가 적극성이 더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욱이는 아빠가 지나치게 나선다고 생각한다. 나는 미술관에 왔으니 시간이 허락한다면 다 보고 싶다고 한다. 욱이는 꼭 다 보고 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리자고 한다. 나는 어렵게 미국에 왔으니 주말에는 여행을 많이 다니자고 한다. 욱이는 별로 가고 싶은 데가 없으며 주말에는 그냥 쉬고 싶다고 한다. 나는 영어를 배우러 왔으니 여기서는 넷플릭스도 영어자막으로 보자고 한다. 욱이는 내용을 잘 이해하려면 한글자막으로 봐야 한다고 한다. 나는 책을 많이 읽자고 한다. 욱이는 자기 세대는 유튜브로 세상을 배운다고 한다. 나는 악기와 운동은 하나씩 하면 평생의 좋은 취미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욱이는 배우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고 한다.


얼마 전에 차를 타고 오며 용돈 얘기가 나왔다. 한국에서 받던 용돈만큼 여기서도 매달 받아야 한다는 것이 욱이의 주장이었고, 이곳에서는 아빠와 늘 함께 다니고 아빠가 다 계산을 하니 욱이가 실제 돈 쓸 일이 거의 없으며 이곳 물가가 엄청 비싸서 생활비가 많이 드니 용돈까지 주기는 힘들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었다. 우리는 차 안에서 불꽃 튀는 논쟁을 벌였다. 그 논쟁의 과정은 공개하기 부끄러워, 결과만 얘기하자면, 한국에서 받던 용돈의 절반을 현지화인 달러로 지급하는 것으로 합의되었다. 이 날 용돈 논쟁을 하며 내가 그랬다.

"욱아, 여기 캘리포니아에서는 너와 나는 운명공동체이자 경제공동체야. 따로 용돈 주고 이런 것 없이 같이 쓰고 있잖아."

욱이가 그랬다.

"아빠랑 운명공동체라는 말이 저를 슬프게 해요."


사소한 일로 투닥거리며 서로의 쪼잔함을 비난하기도 하고 때론 화를 내기도 하지만, 앞의 글에서 말한 것처럼 이번 '반년 살이'의 가장 큰 목표는 '좋은 사이'가 되어 귀국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수양한다는 생각으로 욱이를 잘 모시고 있다. 아마 나중에 내가 죽어 화장을 하면 몸에서 사리가 많이 나올지도 모른다. (고매하신 선승들에게 누가 되는 발언이라 송구스럽습니다. 농담인 것 아시죠?^^)


한편으로 생각하면 욱이가 안쓰럽기도 하다. 욱이 또래는 '잃어버린 세대'이다. 작년에 대학에 입학했지만 대학생활의 낭만은커녕 코로나로 교수님, 친구들 얼굴도 못 보고 화상수업만 하다가 휴학했고 올해 연말에 귀국하자마자 내년 초에 바로 입대할 예정인 것을 생각하면 미안하기도 하고 측은하기도 하다.


욱아, 누가 뭐래도 너와 나는 운명공동체적인 관계야. 이게 네게 슬픈 일이 되지 않도록 내가 더 수양을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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