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정말 세상을 모르시네

저항의 발생, Rise of the resistance

by 라떼

부자간의 캘리포니아 살이가 이제 한 달이 되어 가다 보니 예상했던 충돌이 발생하고 있다. 세대 차이인지 성격차이 인지, 사소한 일부터 중요한 결정까지 (실은 거의 사소한 일들로) 의견이 다르고 이를 서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언성이 높아지기도 하고 삐치기도 한다


사실 나는 이번 미국 살이의 가장 큰 목표를 아들과 더 친해져서 돌아가는 것으로 설정하고 욱이에게는 최대한 섬김과 헌신의 모드로, 스스로에게는 수양과 인내의 모드로 생활하고자 하고 있다. 물론 이것은 전적으로 내 관점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아마 욱이는 아빠랑 둘이 생활하는 것을 자신이 잘 견디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지극히 사소한 것들이지만 우리 둘이 도대체 무슨 일들로 부딪히는지 한번 예를 들어보자.


지난주에 집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디즈니랜드에 갈 때의 일이다. 놀이기구 중에 제일 인기 있는 Rise of resistance라는 것이 있는데 이걸 타려면 앱에 들어가서 아침 7시와 낮 12시에 선착순으로 예약을 해야 한다. 그래서 평소에는 10시나 되어야 일어나는 욱이가 그날엔 새벽부터 일어나서 예약을 했는데, 너무 이른 그룹번호인 5번을 받아 9시까지 놀이공원에 가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래서 서둘러 가면서 제가 욱이에게 말했다.

"예약하느라 수고했는데, 너무 이른 시간이네. 7시 말고 한 7시 5분쯤에 사이트에 들어가 예약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랬더니 욱이가 격앙된 목소리로,

"아빠,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정각에 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마감돼요. 수강신청이나 군입대 신청 같은 것도 다 마찬가지라고요. 아 참, 아빤 세상을 정말 모르시네. 5분 후에 하라고요? 하, 참, 어이가 없네."

내가 바로 그런 줄 몰랐다고 수긍을 했지만, 욱이는 계속 아빠가 너무 세상을 모른다고 구박했다. 아들에게 들을 소리는 아닌 것 같았지만, 너그러운(?) 내가 받아주어 좋게 넘어갔다.

Rise of the Resistance.jpg 디즈니랜드 최고 인기 라이드, Rise of the resistance (디즈니 앱 사진) - 이름이 바로 저와 욱이의 관계를 보여주는 듯하네요


주차장에서 디즈니랜드로 가는 셔틀버스 안에서 옆에 앉은 가족의 아빠에게 여느 때와 같이 내가 말을 걸었다. 그 젊은 아빠는 캐멀백이라고 해서 물을 잔뜩 짊어지고 가면서 가는 호스로 물을 빨아 마시는 배낭을 메고 왔다. 솔직히 물이 든 무거운 배낭을 하루 종일 매고 다닐 그 아빠가 안돼 보였지만 그런 내색은 하지 않고 신기하다 하며 말을 걸었더니 신이 나서 말을 했다. 배낭 바닥에 물이 스며드는데 새는 것 같지는 않고 수증기가 응축되어서 그럴 거라는 둥 얘기를 서로 주고받았다. 버스에서 내려 걸어가면서 내가 욱이에게 아빠는 이제 버스 안에서 수다도 떨고 마치 현지인 같지 않냐고 뻐기며 얘기했더니 욱이가 하는 말,

"아뇨, 그냥 나대는 아시안 같아요."

헐, 나대는 아시안이라니, 이게 아빠에게 할 말인가. 나는 또 웃으며 쿨하게 받아주었지만 나댄다는 말이 거슬렸다. 주목받는 걸 싫어하는 욱이는 막 아무에게나 말 걸고 시끄러운 아빠가 못 마땅한 거다. 하지만 친근한 게 뭐 나쁜 것도 아니고, 아빠도 아빠의 스타일이 있는 거니까 지나치지만 않다면 장점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여간 나는 계속 욱이의 얘기를 듣고 받아주려고 노력한다고, 생각한다.

셔틀버스.jpg 주차장에서 디즈니랜드로 가는 셔틀버스

한 번은 주말에 야외 무료 공연을 보면서 피자도 먹을 수 있는 곳에 갔는데, 그 피자집은 손님이 직접 이것저것 가리키면 토핑을 넣어서 바로 구워주는 시스템의 식당이었다. 욱이가 빈 테이블에 앉아 자리를 잡았고 내가 주문을 하러 갔다. 이것저것 야채도 넣고 페퍼로니도 넣어 완성된 피자를 가져왔는데 피자를 살펴보던 욱이가 토핑 중 어떤 것을 가리키며 이게 뭐냐고 물었다. 그건 애호박이었다. 여기서는 zucchini라고 부르는데 내가 그것도 넣어 달라고 했었다. 욱이가 또 욱했다.

"아니 아빠, 피자에 호박을 넣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야채를 많이 넣다 보니 호박도 맛있을 것 같아서 넣었지."

"말도 안 돼요. 사람들에게 물어보세요, 피자에 호박 넣느냐고요. 아빠는 왜 아빠 생각만 해요?"

어이가 없었다. 피자에 호박이 좀 들어갔기로서니 그게 아빠에게 욱하며 대들 일인가.

20210822_190144.jpg 문제의 호박 피자 - 맛있어 보이지 않나요?


뭐 하여튼 이런 자질구레한 일들로 맨날 부딪힌다. 한마디로 욱이의 Rise of the resistance이다. 나, 라테는 과연 욱이의 저항을 잘 진압하고 평화로운 우주를 다시 만들 수 있을까. 다음회에는 다스베이더 아빠의 반격 편이다.


"I am your fa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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