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에서 백신 맞기

백신이 남아도는 나라, 없어서 못 맞는 나라

by 라떼

나와 욱이가 캘리포니아에 도착한 다음날 처음 한 일은 백신 맞기였다.

한국에서는 맞지 못한 백신을, 여기서는 누구나 무료로 인근 약국에 가면 맞을 수 있었다. 인터넷으로 예약하거나 예약 없이 그냥 가도 여분의 백신이 있으면 맞을 수 있다. 백신이 모자라서 애타게 맞을 날을 기다리는 한국과 비교하니 위화감이 좀 들었다. 이 세상의 불공평함이란. 어느 나라에서는 남아돌아도 잘 맞지를 않고 어느 나라에서는 맞고 싶어도 없어서 못 맞는다. 국제사회 자국중심주의의 냉혹함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것 같다.


나와 욱이는 한국에서 미리 인터넷으로 예약을 했고, 도착 다음날 약속한 시간인 오후 3시에 동네에서 가까운 월그린(Walgreen)이라는 대형 약국 체인점으로 향했다. 여권과 예약증을 보여주고 간단한 문진표에 체크를 한 후 기다리니 간호사가 나왔다. 약국 한쪽에 간이 칸막이로 가려진 공간에서 주사를 맞았다.

Walgreen.jpg 월그린(Walgreen) 약국과 백신 맞는 간이 칸막이
20210803_135702.jpg 백신 접종을 접수하는 창구


20210803_141106.jpg 흔한 Walgreen 약국 체인점 풍경(CVS 약국에서도 백신을 맞을 수 있다)

이렇게 편리하게 동네 약국에서 무료로 놔주는 데도 미국은 아직도 2차까지 백신 접종률이 50%가 채 안된다. 실내 공간에서는 그래도 마스크를 좀 쓰는 편인데 야외에서는 대다수가 마스크를 쓰지 않고 활보한다. 며칠 전에는 공원에 있는 테니스장에 갔는데, 마스크를 쓰고 걸어오는 나를 본, 어떤 백인 할아버지가 대뜸 마스크를 왜 쓰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황당하기도 해서 멀뚱히 쳐다보았더니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마스크를 쓰면 세균 감염의 확률이 더 높다고 하면서 자신도 과학자라고 하며 왜 쓰냐고 다시 물었다. 나는 한국에서는 누구나 써야 한다고 했더니 다시 한번 자신의 주장을 늘어놓았다. 남이 마스크를 쓴 것에 대해 뭐라고 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는 것인데 생각할수록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해프닝으로 넘기기로 했다. 이 해프닝을 통해, 왜 백신이 남아도는 미국에서 여전히 하루 13만 명의 확진자가 발생하는 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어려운 경제 여건에서도 정부의 방침을 잘 지키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자세와 너무 대조가 되었다.


물론 여기도 실내에서는 주정부의 방침에 따라, 마스크를 써야 하지만, KF-94 방역 마스크를 잘 쓰고 다니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무늬만 마스크인 경우도 많다. 실제로 버스나 건물 내에서는 'Mouth Covering is required.'라고 되어 있어서 어떻게든 입만 가리면 된다. 야외에서는 의무사항도 아니라 태반이 마스크를 쓰지 않고 다닌다. 나도 처음에는 테니스장에 갈 때 마스크를 쓰고 다녔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나 혼자 쓰고 있어서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될 정도이다. 마스크를 쓰지 않을, 백신을 맞지 않을 개인의 권리를 국가 차원의 방역보다 우선시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는 것이 문제이다. 얼마 전에 TV 뉴스에서는 소방관들 중 일부가 백신 접종을 의무화하는 것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는 것도 봤다. 공공의 안전을 위해 일하는 소방관들이 그럴 정도이니 개인의 권리를 매우 중시하는 사회임은 분명한 것 같다.


어쨌든 화이자 백신으로 나와 욱이는 1차 접종을 마쳤다. 주사 맞은 곳이 좀 만지면 아팠다는 것을 빼고는 다행히 아무런 부작용이 없었다. 1차 접종을 마쳤다는 스티커를 주며 카드를 하나 써주었다. 사진의 영수증에 보이는 것처럼, 무료이기 때문에 가격이 0.00달러라고 표시된다. 3주 후에 2차 접종도 예약했다. 요즘 델타 변이 등 변이 바이러스가 또 퍼지고 있어서 부스터 샷을 맞아야 한다는 얘기가 들린다.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가뜩이나 백신이 모자라는 나라들에게 돌아와야 할 백신이 미국 등 백신이 충분한 나라들의 부스터 샷으로 가버리지 않을까 염려된다. 우리 정부가 더 많은 백신을 시기에 맞게 잘 들여올 수 있기를 바란다.

Walgreen_receit.jpg 백신 접종 스티커와 0달러로 표시된 영수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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