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리시맨 더그가 총을 가지고 다니는 이유

총기 소지가 합법인 나라

by 라떼

로버트 드 니로와 알 파치노가 열연한 영화, 아이리시맨을 드디어 봤다. 3시간 반짜리 영화라 2019년 개봉 이후 미루고 미루다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보게 되었다. 영화 대부를 생각나게 하는 출연진과 스토리였다. 트럭 운전사에서 마피아가 된 한 가장이 마피아로서는 성공하지만 가족으로부터는 멀어지는 슬픈 이야기였다. 소재가 마피아 일 뿐, 회사를 위해 밤낮으로 열심히 일하지만 정작 가장 소중한 가족으로부터 소외되는 우리 가장들의 슬픈 아이러니를 느끼게 하는 영화였다.

마피아 영화이니 당연히 총이 많이 등장한다. 손쉽게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도구 총, 누군가 참기 힘든 살의로 가득 차 있을 때, 옆에 총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명백히 다른 결과를 낳을 것이다. 그래서 총은 위험하다. 하지만 이곳 미국은 누구나 합법적으로 총을 가질 수 있는 나라이다.

irishman-e1574432930882.jpg 로버트 드니로, 알 파치노, 조 페시가 연기한 영화 아이리시맨



우리 호스트인 더그도 아이리시계의 후손이다. 굶주림과 가난을 견디다 못해 미국으로 살 길을 찾아 건너온 이민 초기에 아이리시들은 이곳 미국에서도 극심한 차별을 받았다고 한다. 더그네 집 현관에는 인상적인 액자가 하나 걸려 있다. Help Wanted, No Irishman need apply. 무슨 뜻이냐고 물어봤다. 개척 시기에 일할 사람을 구하는 푯말인데 아이리시는 사양한다는 뜻이었다. 이렇듯 차별받던 어려운 시기를 거쳐 아이리시들도 미국 사회의 일원으로 정착해서 살고 있는 것이다.

No Irishman.jpg 더그의 집 현관에 걸린, 1910년대의 푯말을 재현해 놓은 액자


석 달 함께 지내 본 더그는 좋은 사람이다. 가족들을 위해 지난 50여 년간 건설 중장비 운전 등 다양한 건설일(Construction work)을 열심히 하여 3남매를 잘 키워냈으며 칠순이 넘은 지금도 여전히 열심히 일하고 있다. 여기서는 아빠들이나 하는 농담이란 뜻의 Dad joke라고 하는 아재개그를 잘 날려서 우릴 웃게 하고, 집수리 같은 일은 물론, 아내인 쥴리를 도와 음식을 준비하고 설거지(디시 워셔가 하지만) 등 집안일을 도맡아 한다. 그냥 맘씨 좋은 동네 할아버지이다. 그래서 혹시 내가 쓰고 있는 이 글이 그를 비판하는 것이 될까 봐 고민스러웠다. 하지만 이 글은 더그에 대한 글이라기보다는 총기 소지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미국 사회와 그 이면에 깔린 그들의 생각에 관한 글임을 명확히 밝혀둔다. 즉 어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20210808_080112.jpg 아침식사를 준비 중인 더그
20210808_080412.jpg 더그가 직접 구워준 맛있는 와플


건설일에 종사해 왔다는 것으로 짐작했겠지만, 더그와 쥴리네는 백인 서민층 가정이다. 더그는 젊은 시절 열심히 일해서 가족들을 잘 부양했다. 그러다가 나이 들어 무릎이 안 좋아져 보철물을 삽입하는 수술을 했고, 당뇨, 피부 낭종 등 여러 질환을 가지고 있어서 매일 약을 먹는다. 당시 공립학교는 상황이 좋지 않아(이전 글에서 언급한 'Freedom Writers' 영화를 보면 당시의 교실 풍경이 다소 짐작이 간다) 아이들을 보내기 싫었고, 사립학교에 보낼 돈은 없어서 쥴리가 세 자녀를 모두 홈 스쿨링으로 키워냈다. 홈 스쿨링과 그 커뮤니티에 대해서는 기회가 되면 따로 얘기하고자 한다.


더그는 아침마다 개 캐시(Cash)를 데리고 산책을 한다. 더그네 집에서 살게 된 지 한 두 주쯤 지난 어느 날 아침식사를 하는데 산책을 마친 더그가 들어오며 뒷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내어 집안 어느 곳에 올려놓는 것을 보았다.

캐시와 산책 중인 더그

더그는 베트남전이 한창인 시절에 징집되어 6년간 군대에 복무했는데 다행히 베트남으로 파병되지는 않고 본토에 근무했다. 그는 폭발물을 처리하는 위험한 작업을 담당했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더그는 밀리터리 마니아, 정확히 말하면 총기 애호가가 되었다. 우리 집(즉, 더그와 줄리의 집)에는 수십 정의 장총과 권총이 수집되어 안전한 금고에 보관되어 있다. 그는 또한 총기 소지의 자유를 신봉하는 사람이다. 미국 수정헌법 2조에 의해 모든 미국 시민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총을 소지할 권리가 있다는 믿음이 확고하다. 건설일을 은퇴한 이후에 지금은 사격 연습장에서 안전관리관으로 일하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20210914_195611.jpg 더그가 가진 권총 중의 하나

더그는 이따금 총을 분해해서 청소한다. 얼마 전에 권총 두 정을 식탁 위에 펼쳐놓고 분해 소제를 하는 것을 나와 욱이가 봤다. 내년에 입대를 앞두고 있어서 인지, 욱이는 총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옆에 앉아 더그가 하는 것을 지켜보며 얘기를 나눴다. 총기 마니아인 더그는 마니아끼리 총을 사고팔기도 한다면서 구하기 힘든 옛날 총들은 짭짤한 수입원이 된다고 했다. 그가 총을 많이 수집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20210914_195617.jpg 권총을 분해 소제하는 더그, 욱이는 곁에 앉아 지켜보았다

총기 마니아인 더그는 총에 관한 책과 군대(밀리터리)에 관한 책도 가지고 있다. 총얘기가 나오면 1910년대의 총부터 요즘 총까지 이야기를 좔좔 풀어내는 것과 다른 마니아들도 옛날 총이나 무기에 대해 그에게 가끔 질문을 한다고 하는 걸 보면 상당한 내공을 가진 마니아인 것 같다. 더그가 가지고 있는 세계의 군대라는 책에는 남북한의 군대도 소개되어 있어서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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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그가 가지고 있는 총에 관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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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육군이라는 책과 그 안에 소개된 남북한 육군

그래서 그가 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는데, 평온한 아침에 개를 끌고 동네 산책을 할 때도 총을 휴대하는 줄은 몰랐다. 참고로 나는 매일 아침에 동네를 한 바퀴 뛰는데 그 어떤 위험한 환경도 느끼지 못한다. 그런데 그는 아침 산책길을 포함해서 언제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총을 휴대한다고 했다.

나중에 얘기할 기회가 있을 때, 몇 마디 물어보았다. 아침 동네 산책에 총을 가져가는 이유가 뭔지 궁금했다. 그의 얘기는 강도가 자신을 위협하여 끌고 가 집에 침입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 더그와 쥴리, 그리고 나와 욱이가 함께 인근 디즈니랜드 옆에 있는 다운타운 디즈니란 쇼핑몰에 함께 저녁을 먹으러 나간 적이 있었다. 요즘은 이런 놀이공원이나 쇼핑몰에 들어가는 데에도 금속탐지기를 통과해야 한다. 더그는 이렇게 총을 휴대할 수 없는 상황이면, 대신 작은 주머니칼을 호신용으로 가져온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또 물었다. 이런 쇼핑몰은 매우 안전한 곳이 아니냐고. 그도 동의했다. 이런 곳에는 경비원이 많이 있어서 안전하다고. 하지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자신은 항상 자신을 보호할 도구를 가지고 다닌다고 했다. 어떤 경우에는 최루 가스총(Tear gas gun)을 가지고 다닐 때도 있다고 하며, 자신은 언제 어디서나 만일의 사태가 발생하면 빠져나갈 비상구를 항상 먼저 확인해서 머릿속에 넣어둔다고 했다.



한국에 있을 때, 가끔 미국의 학교 등에서 벌어진 총기난사 사건을 뉴스로 접한다. 그리고 사실, 나는 예전에 미국에서 몇 년 지낼 때, 끔찍한 총기난사사건을 가까이서 접한 일도 있다.(아픈 이야기라 여기서는 자세히 언급하지 않겠다) 이런 총기사건 소식을 접할 때마다, 총기 소지를 금지하지 않는 미국을 이해할 수 없었다. 총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렇게 쉽게 사람들을 죽이는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분노에 찬 어떤 사람 곁에 총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그래서 더그에게 물었다. 총기난사 사건으로 많은 사람이 희생되지 않냐고. 더그는 단호히 대답했다. 모든 총기는 등록되어야 하고 허가증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총기사건은 모두 불법으로 거래된 총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고, 합법적으로 등록된 총으로 사고가 나지는 않는다고.

20211009_152444.jpg 침입자에게 발포하고 혹시 살아나도 또 발표한다는 무서운 표지판을 흔히 볼 수 있다

흔히들 얘기한다. 미국의 총기 소지는 전미총기협회(NRA)의 막강한 로비 때문에 금지되지 않는 것이라고. 더그네 집에 살면서, 더그와 얘기를 나눠보면서 나는 확실히 알게 되었다. 결코 단순히 NRA의 로비 때문이 아니다. 총기 소지의 권리를, 헌법이 보장한 자신을 보호할 권리로 확실히 믿고 있는 사람들의 신념이 확고하기 때문이다.


나는 또한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미국의 총기 소지는 너무 뿌리가 깊어서 빠른 시간 내에 총기 소지 금지 정책이 시행될 수는 없다는 것을.


더그는 오늘 아침도 총을 주머니에 넣고 평화롭게 개 캐시를 산책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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