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가 되지 않으려고 멍청이가 되는 것, 사랑
미수의 것을 받아내는 방식은 언제나 저질에 가까웠다
아름답게 여겨지나 언제나 날카로웠던(사랑) 그것을 무기로
병이 생기거나 낫는다는 핑계로 또 다른 생가슴을 협박하고
획득한 사랑을 나는 걸신처럼 앞섶에 우겨 넣기에 바쁠 줄 알았는데
낯선 것에는 언제나 미숙해서 남의 갓난아이를 안는 것처럼 한없이 한없이 조심스러워지는 것이다
바보가 되지 않으려고 멍청이가 되는 것
사랑
죽으라고 내리쬐는 자외선의 패악질도
따스한 햇볕이라며 눈 감고 즐기는 것
사랑
한 방울만 떨어져도 숨이 위태로운 수면에도
눈물을 삼키며 유유히 수영하는 것
사랑
아주 오랜만의 글쓰기입니다. 신춘문예를 핑계로 온라인상에 시를 공개하지 않겠다는 다짐은 역시 핑계겠지요. 그럼에도 지난 수년간 브런치에 글을 쓰게 한 아빠와의 애증 관계에 인상깊은 변화가 생겨서 오랜만에 시와 에세이를 적습니다.
저번 주말은 아빠의 64번째 생신이었다. 삼남매 계를 가지고 여느때처럼 맛있는 저녁을 먹고 백화점에서 생일선물을 살 요량이었다. 특별한 계획도 없었고 환갑처럼 어떠한 이슈도 없었다. 대게가 먹고 싶다고 하길래 대게집을 예약해뒀는데, 그새 영덕에 다녀오시는 바람에 급하게 한우집을 찾아야 했지만 오히려 그것이 우리 가족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아빠는 상냥했다. 그리고 웃는 모습을 많이 보였다. 아빠가 끓여주는 김치찌개가 가장 좋다는 내 말에 내일 아침에 끓여줄게,라고 단번에 답했다. 그뿐이랴, 퇴사 후 6개월이나 쉬고 있는 내게 모 회사에 들어가는 게 어떻겠냐고 하여 어떤 관계인지 물어보니 그 회사 대표와 아빠 본인이 같은 ‘보수’ 성향의 사람이라며 혼자만 재미있는 농담을 한다. 그런데 내 반응 살피기를 곁들인. 매번 정치관련 이슈로 나와 날을 세우며 얘기하는 아빠답지가 않다.
술에 조금 더 취해서는 더욱 직접적인 얘기를 했다. 어릴 적에, 특히나 내게 한창 돈이 많이 들어갈 시절에 딱 그때가 가장 힘든 시기였다고. 아픈 데를 찌른다. 그러고는 그렇다고 해서 동생들과 차별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고. 그러니까 너도 너무 그런 것을 오래 생각하지는 말라고. 나는 술김에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도 나때문에 분위기가 슬퍼지는 게 싫어서 “팔자지 뭐”라고 했는데 주변에서 그렇게 말하면 안되지!하는 야유가 날아들었다. 그래서 “그럼 동생들이 더 받은 만큼 동생들이 나중에 나한테 더 잘해주면 된다”라고 했다. 동생들은 가만히 있었고 어른들은 나를 착하다고 했다. 나는 거기서 멈췄으면 좋았을 것을, 막내한테 최대한 늦게까지 아빠 밑에서 금수저로 있다가 아주 늦게 결혼 해, 한 마흔 쯤에.라고 덧붙여서 다시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다음날 아침, 밥을 먹고 갈지말지 대고민에 빠졌다. 남동생은 서울에서 저녁 약속이 있어 일찍이 시동을 걸었는데 남편은 내 눈치를 보며 앉아 있었다. 그리고 나는 아빠가 언제 일어나서 언제 김치찌개를 끓이는지 눈치를 보며 앉아 있었다. 내가 여러번 모호한 스탠스를 취하자 너무 늦게 일어난 아빠가 뒷머리를 긁으며 김치찌개는 지금 끓이기 늦었으니 미역국 남은 걸 먹고 가라고 한다. 나는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떼힝‘하며 팔을 살짝 밀친다.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나서 입고 온 바지로 갈아입었는데 별안간 아빠가 또 말을 시킨다. 넌 바지가 낫다. 날씬한 여동생의 자는 뒷모습을 보며 ‘아~ 조금이라도 더 가리는 게 낫다?’라고 장난을 치고 싶었지만 이번엔 꾹 참았다. 짧은 시간에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아빠는 나를 칭찬하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있는 거였다. 당황한 바람에 대답을 생각하는 동안 “왜?”를 연거푸 말했으나 ‘잘 어울린다’, ‘골반이 예쁘다’ 등의 칭찬은 더 하지 못하고 ‘그냥 낫다’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웃긴건 더 고장이 난 내 대답이다. 최근에 치마를 많이 샀는데 바지를 앞으로는 더 많이 사야겠네...라고 했다. 사랑에 미숙한 뚝딱쇼였던 거다.
어쩐지 이번 가족모임은 내가 태어나서 겪은 가족과의 추억 중에 손꼽히는 최고의 날이었다. 서울로 올라오는 차에서는 따가운 햇볕을 가릴 생각도 안하고 따스함에 취해 오랫동안 잤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행복감이 가시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그것이 갑자기 생각나버린 거다. 약 5개월 전에 아빠한테 쏘아대듯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가. 그 내용은 ‘오늘도 공황장애 약 타러 병원에 갔는데 의사 말인 즉슨 지금이라도 아빠한테 애정표현을 많이 듣는 게 좋다더라‘는 말이었다. 나는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 잘 기억은 안나지만 그 카톡을 쓰면서도 이건 아빠한테 해서는 안될 말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같다. 그리고 그 말에 대해서는 영원히 답장이 없을 것도 모르고 보내자마자 후회했었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아빠는 이 말 때문에 이번 모임에서 그렇게 뚝딱거리며 애정표현을 해주었던걸까, 싶어 눈물이 살짝 났다. 충분히 나의 질병을 걱정하고 있는 이에게 더 강한 협박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하여.
사실은 병을 핑계로 어른을 협박한 기억이 하나 떠올라 더욱 뜨끔해하는 게 있는데. 중학교 2학년 쯤인가. 생리통이 너무 심해서 뒹굴다가 초콜릿이 너무 먹고 싶어진 때, 나는 할머니한테 가서 초콜릿을 먹으면 생리통에 좋대라고 말해서 용돈 몇 천원을 받았었다. 할머니는 남의 도움 없이는 집 밖에 나가지도 못하는 중풍환자였는데 할머니 방 장판 밑에서, 어디다 쓰려고 모아둔 지도 모르는 그 돈을 꺼내서 나한테 줬다. 나는 그 돈으로 초콜릿을 맛있게 사먹었고, 생리는 뭐 며칠 뒤에 끝나버렸겠지 싶다. 근데 나는 그때의 나의 치기어린 협박이 가끔씩 떠올라서 또 울고 싶어질 때가 있다. 할머니한테 너무 나빴다. 그냥 먹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제발 할머니가 나를 너무 걱정하지 않고 귀여워했기만을 빈다.
결론. 나는 병을 핑계로 사랑을 내놓으라고 협박했는가? 아마도 맞다. 그래서 받은 사랑에 흡족한가? 아주아주 맞다. 시에 쓴 것처럼, 내 것이 아닌 것을 받은 것처럼 갑작스럽고 조심스러워서 당황해 뚝딱거릴 정도로 좋다. 거실에 있을 때마다 옆에서 십수년간 떠들어도 한번 대답할까말까 했던 아빠가 먼저 농담을 건넨다. 고등학교 3학년까지 밥차리기 교육을 하던 아빠가 김치찌개를 끓여준다고 한다(안끓여줬지만). 퇴근길 동생들이 먹고 싶은건 다 사와도 넌 살쪄서 안된다던 아빠가 나보고 바지가 어울린다고 한다. 사랑은 모자랄땐 약도 없는 병을 만들어내더니 갑자기 쏟아져서 사람을 다른 방면으로 이상해지게 만든다. 글을 쓰면서도 웃다가 울다가 하게 만든다.
더 아름다운 것은 모처럼 주고 받은 사랑이 핑퐁이 되어서, 내가 지금까지 안좋은 기억들은 너무 크게 부풀려 생각하지 않았나 하는, 미화와는 조금 다른 자기반성으로도 이어진다는 점이다.
사랑이 없다면 길을 잃지 않을 테지,
이 글도 아빠로 시작해 아빠로 끝나는 글과 그런 글을 모아서 낸 책이다. 요새 죽어라 글이 안써지는 날들이 이어졌는데 아빠와의 새로운 애정국면(?)으로 또다시 이렇게 새벽같이 글을 쓴다. 두 번째 책은 모쪼록 더 더 사랑만 가득한 두 번째 챕터가 되기를.
(추신1: 동생과의 차별에 관해선 아빠한테 말한 적 없는데 남동생한테는 한 시간을 울며 얘기한 적이 있다. 죽기 전에는 아빠랑 속 터놓고 얘기하고 싶다고. 아무래도 아빠한테 동생이 홀랑 일러바친 모양이다. 여러모로 가족들 골머리썩이는 예민한 딸이다. 결론적으로는 일러바치기도 일종의 사랑이다.)
(추신2: 집에 로봇청소기가 필요할 것 같아서 사갔는데, 아빠랑 같이 사는 여동생이 너무 기분좋아하면서 자기 생일 아니냐며 아주 기뻐했다. 나는 온가족이 나라는 금쪽이를 맞춰준 것 같아서 내 생일 같았는데. 돌아오는 아빠 생일이 매번 각자의 생일같았으먼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