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닿지 않는 곳에서 시작된 나날
군대를 전역하고 대학교 3학년으로 복학했다.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세상도, 나도. 아니, 하나 달라진 게 있었다. 주머니가 더 가벼워졌다는 것. 보증금을 낼 돈이 없었다.
부동산을 돌고 돌아 결국 찾아낸 곳은 보증금 없는 반지하 원룸이었다. 월세 15만 원. 그게 전역한 내가 이 세상에 지불할 수 있는 전부였다.
방에는 창문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창문이라 부르기 어려운 것이었다. 한여름 정오, 세상이 가장 환하게 빛나는 시간에도 그 방에는 빛이 내려오지 않았다.
아무리 밝은 햇빛이 비춰도, 내 방만큼은 늘 같은 색이었다. 흐릿한 회색. 형광등을 켜지 않으면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반쯤 땅에 묻힌 방. 그 안에서 나도 반쯤 세상에 묻혀 있었다.
학교를 다녔다. 다녔다기보다는 끌려갔다는 편이 정확하다. 강의실에 앉아도 교수의 목소리가 벽 너머에서 들리는 것 같았고, 캠퍼스를 걸어도 내 발소리가 내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하루하루가 복사본처럼 똑같았고, 내일이 와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확신만 또렷했다. 나는 그냥 꺼져 있었다. 전원이 내려간 사람.
반지하 방의 어둠이 내 안에도 들어와 앉아 있는 것 같은 시절이었다.
그 시절, 한 사람이 있었다.
같은 과 동기. 나보다 먼저 졸업한 여자인 친구였다. 그 친구는 노량진에서 경찰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특별히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친구에게는 한 가지 특별한 것이 있었다.
늘 먼저 인사를 건넸다.
내가 아무리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어도. 축 처져서 고개를 숙이고 있어도. 누가 봐도 말 걸기 꺼려질 만큼 그늘져 있어도. 그 친구는 한 번도 나를 피하지 않았다.
"야, 잘 지내?" 아무렇지 않게. 밝게. 먼저. 어둠 속에 있는 사람에게 먼저 손 내미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그 친구는 그 용기를 매번 아무렇지 않게 써냈다. 반지하에 사는 나에게 유일하게 들어오던 빛 같은 사람이었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어느 날, 그 친구가 학교에 놀러 왔다. 오랜만에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여전히 밝았다. 여전히 먼저 웃어줬다.
나는 여전히 어두웠고, 그 친구는 여전히 환했다. 그 마지막 대비가 그토록 선명하게 남을 줄은, 그때는 알지 못했다.
일주일 조금 지났을까. 소식이 들려왔다. 급성 백혈병. 입원. 갑자기였다. 너무 갑자기여서 현실감이 없었다.
일주일 전까지 내 앞에서 웃고 있던 사람이 병원 침대에 누워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학교 친구들과 헌혈증을 모았다. 그걸 보냈다.
그 정도가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전부였다. 괜찮아진다는 소식에 안도했다. 그 친구니까 이겨낼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사망 소식이 왔다.
장례식장에 갔다. 친구의 영정 사진 앞에 섰다. 그리고 멈췄다.
늘 밝던 친구였다. 누구를 만나든 먼저 환하게 웃어주던 사람이었다. 살아 있는 동안, 나는 그 친구가 웃지 않는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단 한 번도. 그런데 영정 사진 속 그 친구는 웃고 있지 않았다. 표정이 어두웠다. 늘 밝던 사람의 마지막 사진이 어둡다는 것. 언제나 먼저 웃어주던 사람의 마지막 얼굴에 웃음이 없다는 것.
그 사실이 가슴 한가운데를 정확히 찔렀다. 어쩌면 이 세상에 하고 싶은 것이 아직 너무 많이 남아 있어서, 웃을 수 없었던 건지도 모른다.
영정 사진 뒤에서 소리가 들렸다. 그 친구의 어머니와 언니가 울고 있었다. 그건 사람의 울음이 아니었다. 산속에서 고라니가 우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짐승이 본능적으로 내지르는, 목구멍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언어가 되지 못하는 소리. 사람의 고통이 어떤 한계를 넘어서면, 울음은 더 이상 울음의 형태를 유지하지 못한다는 걸 그날 알았다.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울부짖음은 그런 것이었다. 인간의 말로는 담을 수 없는 고통이, 소리의 형태로 새어 나오고 있었다.
나는 그 소리 앞에 서 있었다. 서 있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살고 싶은 사람이 떠나고, 살기 싫은 내가 남았다
그리고 생각이 시작됐다. 멈출 수 없는 생각.
일주일 전에 나에게 밝게 웃어준 사람이 저 사진 안에 갇혀 있다. 그 사람은 살고 싶었다. 꿈이 있었다. 경찰관이 되겠다는 목표가 있었다.
노량진에서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공부하고 있었다. 밝은 미래를 향해 걸어가고 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떠났다. 선택의 여지없이. 갑자기. 부당하게.
그런데 나는. 살아 있으면서 죽어 있었다. 햇빛 한 줄기 들지 않는 반지하에서 전원이 꺼진 채로 숨만 쉬고 있었다.
목표도 없고, 꿈도 없고, 내일 아침에 눈을 떠야 할 이유조차 찾지 못하는 사람. 살 수 있는데 살지 않는 사람. 그게 나였다.
살고 싶은 사람이 떠났는데, 살기 싫은 내가 여기 서 있다.
그 문장이 머릿속에 박혔다. 빠지지 않는 못처럼. 장례식장에서 돌아온 뒤에도, 반지하 천장을 올려다볼 때마다 그 문장이 떠올랐다.
웃지 않던 영정 사진이 떠올랐다. 고라니 같은 울음소리가 귓전에 맴돌았다. 삶이 무엇인지. 살아 있다는 게 무엇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 친구의 죽음이 내게 삶을 물었어야 했다. "너는 왜 살아 있으면서 살지 않느냐"라고.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 질문을 다른 방향으로 받아들였다.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의미 없다고. 회의감이 밀려왔다. 밀물처럼. 파도처럼. 멈출 수 없이.
그래서 나는 바다로 갔다.
안목해변. 겨울바다. 하늘도 바다도 같은 색이었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경계가 사라진 세상.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바다인지 구분할 수 없는 날. 검은 파도가 해안선을 쉬지 않고 때리고 있었다. 그 파도 소리만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진짜인 것 같았다.
나는 죽기로 결심했다.
비에 젖은 채로 바다를 바라봤다. 검은 파도가 치고, 빗줄기가 바다 위를 두드리고, 세상 전체가 나를 삼킬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한 발 내딛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전부 끝난다고.
그런데 그 순간, 공포가 왔다.
죽음을 결심하면 두려움이 사라질 줄 알았다. 아니었다. 몸 전체가 떨렸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머리와, 죽고 싶지 않다고 외치는 몸이 서로 싸우고 있었다. 그 공포는 반지하의 어둠보다, 장례식장의 울음소리보다 더 거대했다.
나는 그 공포를 이겨냈다. 아니, 이겨냈다고 착각했다. 방파제를 넘으려고 몸을 움직이는 순간이었다.
저 멀리서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소리를 지르며 달려오고 있었다. 비 속에서. 한 어머니였다. 그 어머니가 나를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무슨 말을 외치는지 빗소리에 묻혀 정확히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 목소리의 절박함은 선명하게 전해졌다.
어머니가 내 손을 잡았다. 차갑고 젖은 내 손을. 아무 말 없이 꽉 잡았다.
그리고 나를 데리고 걸었다. 안목해변에 있는 큰 카페로. 문을 열고 들어가자 따뜻한 공기가 얼굴을 감쌌다. 어머니는 따뜻한 유자차 한 잔을 시켜서 내 앞에 놓았다.
그리고 내 맞은편에 앉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 그러냐고 묻지 않았다. 힘내라고도, 괜찮을 거라고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안타까운 눈으로. 한참을. 오래도록.
나는 유자차를 마셨다. 따뜻했다. 비에 젖어 얼어붙은 몸 안으로 따뜻한 것이 흘러들어왔다.
그 온기가 목구멍을 타고, 가슴을 타고, 천천히 퍼져나갔다. 차 한 잔의 온도가 이렇게까지 사람을 흔들 수 있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다.
한참을 그렇게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카페를 나섰다. 문 앞에서 어머니를 마주 봤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입에서 말이 나왔다.
"정말 열심히 살게요. 감사해요."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 모른다. 아무도 살라고 하지 않았다. 아무도 힘내라고 하지 않았다. 그 어머니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따뜻한 유자차 한 잔과 말없이 나를 바라봐 준 그 시간이, 내 입에서 그 말을 꺼내게 했다.
죽으러 갔던 사람의 입에서 "열심히 살겠다"는 말이 나왔다. 왠지 모르지만, 그러고 싶었다. 진심으로.
그날, 안목해변에서 한 사람이 죽었다. 그리고 같은 자리에서 한 사람이 태어났다.
돌아온 나는 공책 한 권을 꺼냈다.
그리고 적기 시작했다. 해보지 않았던 것. 무서워하는 것. 내가 절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 전부. 남김없이. 공책을 가득 채울 때까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안목해변에서 돌아온 그 순간부터, 무의식 깊은 곳에서 하나의 확신이 자라고 있었다.
지금까지 하던 대로 살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내가 무서워하는 것, 못한다고 믿었던 것, 피해왔던 것에 정면으로 부딪혀야 이 삶이 바뀐다. 반지하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나는 그것을 '인간 개조 프로젝트'라고 이름 붙였다.
새벽 5시에 일어나 헬스장에 갔다. 운동이라곤 해본 적 없는 몸이었지만 상관없었다. 책 한 권씩 읽기 시작했다. 한 글자도 읽히지 않는 날이 있었지만 그래도 펼쳤다.
못하는 것 목록을 하나씩 지워나갔다. 하나를 지울 때마다 내 안에서 무언가가 켜지는 느낌이 있었다. 오래도록 꺼져 있던 전원이, 하나씩, 천천히, 다시 들어오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우연히 세바시 강연 영상 하나를 보게 됐다. 55세에 무기항, 무원조, 무동력으로 세계일주 항해를 완주한 김승진 선장님의 이야기였다.
바다 위에서 오직 바람과 파도에 의지해 지구를 한 바퀴 돈 사람.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공책이 떠올랐다.
내 공책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수영을 못한다. 물이 무섭다.'
안목해변에서 죽으려 했던 나는, 사실 물이 무서운 사람이었다. 검은 파도 앞에서 느꼈던 공포는 죽음에 대한 공포만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물 자체가 무서웠던 것이다. 그래서 더 가야 했다. 그 공포의 한가운데로.
바로 김승진 선장님께 연락했다.
선장님에게서 답이 왔다. "한번 만나자." 홍대에서 만났다. 나는 내 이야기를 했다.
반지하 이야기, 안목해변 이야기, 인간 개조 프로젝트 이야기. 그리고 물이 무서운 사람이 바다로 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선장님이 말했다.
"코타키나발루에 요트가 있다. 거기로 와라."
단 한 마디. 그 한 마디에 심장이 뛰었다. 반지하 방에서는 한 번도 뛴 적 없던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나는 학교에 휴학계를 냈다. 그리고 코타키나발루행 비행기에 올랐다.
수영을 못하는 청년이, 바다로 날아갔다.
(6화 — '수영 못하는 청년, 요트 6000km 항해를 떠나다'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