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실과 짓무른 엄지손가락, 그 틈에서 피어난 가능성

80만 원의 반지하 방, 어머니가 내 발냄새를 맡으며 남긴 훈장

by 김순경

한 달 생활비 80만 원. 그 좁은 숫자 속에 우리 세 식구의 삶을 욱여넣어야 했던 시절, 반지하 방의 밤은 늘 정적 속에서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사각, 사각.’ 어머니가 구멍 난 양말을 꿰매는 소리였다.

어머니의 손에는 늘 낡은 검은 실과 뾰족한 바늘이 들려 있었다. 형편상 화려한 색의 양말은 사치였기에, 우리의 양말은 대개 어두운 색이었고 어머니는 그 색에 맞춰 묵묵히 검은 실을 굴리셨다.

문제는 그 뾰족한 바늘이 향하는 곳이었다. 낡은 양말의 해진 결을 따라 바삐 움직이던 바늘은, 가끔 길을 잃고 어머니의 엄지손가락을 찔러대곤 했다.

어머니의 엄지손가락은 늘 성할 날이 없었다. 바늘에 찔려 맺힌 핏방울이 검은 실에 스며들고, 굳은살 위로 다시 구멍이 났다.

아들의 구멍 난 양말 뒤꿈치를 메우기 위해, 어머니는 당신의 손가락에 수천 개의 구멍을 내고 계셨던 것이다.

“에구, 우리 창환이 발냄새! 오늘도 정말 열심히 살았구나.”

어머니는 짓무른 엄지손가락으로 꿰맨 양말을 들어 올리며, 짐짓 아무렇지 않게 내 발냄새를 맡으셨다. 그 꼬질꼬질한 냄새가 마치 세상에서 가장 귀한 향수라도 되는 양, 코끝을 찡긋하며 웃으셨다.

그때 알았다. 어머니에게 내 발냄새는 가난의 흔적이 아니라, 아들이 세상이라는 거친 땅을 딛고 서 있다는 ‘생존의 신호’였다는 것을.

어머니는 당신의 손가락을 찔러가며 만든 그 바늘땀으로, 내 자존감의 구멍까지 촘촘히 메워주고 계셨다.

“창환아, 네가 흘린 땀은 절대 배신하지 않아. 이 냄새가 그 증거야.”

80만 원이라는 숫자는 우리를 가두는 벽이었지만, 어머니의 그 짓무른 손가락과 검은 실은 그 벽을 넘게 하는 사다리였다.

내가 지금 ‘가능성 배달원’으로서 누군가의 삶에 희망을 전할 수 있는 건, 가장 어두운 반지하 방에서 내 발냄새를 ‘가능성’이라 불러주던 어머니의 그 코끝 덕분이다.

오늘도 나는 거울 앞에 서서 내 발을 본다. 그리고 묻는다. 나는 오늘, 나를 위해 손가락이 짓무르도록 바느질을 하던 그 사랑만큼 뜨겁게 살았는가.


여러분에게도 혹시, 남들은 ‘보잘것없다’ 말하지만 누군가에게만큼은 ‘최고의 훈장’이었던 순간이 있나요?

당신의 고단한 하루를 가장 따뜻하게 안아주었던 그 한마디는 무엇이었나요?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