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화를 벗던 밤, 꿈은 죽었다.

포기가 아니라 사랑이었다, 축구화 대신 가족을 선택한 소년의 밤.

by 김순경

강릉의 운동장에 내던져진 것은 낡은 축구화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의 전부였고, 내 유일한 자부심이었으며, 멀리 떨어져 살던 아버지를 찾아가 고집부려 얻어낸 내 인생 첫 번째 ‘선택’이었다.

“엄마 능력으로는 너 끝까지 뒷바라지 못 해.”


처음 축구를 시작할 때 엄마가 던진 말은 예언 같았다.

동계 훈련비, 매달 나가는 회비, 닳아 없어지는 축구화 값... 현실은 어린 소년의 열정보다 훨씬 빠르게 통장 잔고를 갉아먹었다.

결국 나는 도망치듯 강릉을 떠나 제천 집으로 돌아왔다. 밤 8시, 어둠을 뚫고 낯선 차 한 대가 집 앞에 멈춰 섰다.

운동장에서 사자보다 무서웠던 감독님이 강릉에서 제천까지 두 시간을 달려오신 것이다.

“회비 안 받을게. 너는 재능이 있어. 여기서 그만두기엔 너무 아깝다.” 감독님의 목소리엔 간절함이 섞여 있었다.


순간 내 마음속 불씨가 다시 타올랐다. ‘어쩌면 다시 뛸 수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엄마는 단호했다. 아니, 절박했다. 엄마는 내 손에 종이 한 장과 펜을 쥐여주며 방으로 밀어 넣었다.

“가서 네가 직접 결정해. 할지 말지, 네 손으로 적어 와.”

방문을 닫고 혼자 남겨진 시간, 하얀 종이는 무거웠다. 내 꿈의 무게였다.

그때였다. 끼익 소리를 내며 방문이 열리고 엄마가 들어왔다.

엄마는 내 무릎 앞에 무너지듯 주저앉아 내 바지춤을 붙잡았다. 그리고는 소리 없는 눈물을 쏟아냈다.

뜨거운 눈물이 내 바지를 적셨다. 그건 나를 원망하는 눈물이 아니라, 자식의 꿈을 응원해주지 못하는 가난한 엄마의 처절한 참회였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내가 여기서 ‘축구를 계속하겠다’고 적는 것은,

나를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붓는 엄마의 남은 생을 갉아먹겠다는 이기적인 선언이 될 거라는 걸.

나는 펜을 들었다. 그리고 내 꿈의 사형 집행서에 서명했다.


오랫동안 나는 그날의 결정이 ‘포기’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긴 시간이 흘러 복기해 본 그때 나의 선택은 비겁한 포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나보다 소중한 존재에 대한 책임이었고, 내 꿈보다 깊었던 엄마에 대한 사랑이었다. 나는 축구화 대신 사랑을 신기로 했다.


그날 밤, 내 안의 소년은 죽었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야 한다는 서툰 어른이 태어났다.

축구화를 벗던 밤, 나의 꿈은 그렇게 엄마의 눈물 속으로 고요히 침몰했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