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가 이해하는 어머니의 마음과 그때 느낀 감정들이 눈앞에 선연하다.
스물아홉, 지금 생각하면 꽃다운 그 나이에 어머니는 여섯 살 아들의 손을 잡고 세상 밖으로 도망쳤다.
꼬질꼬질하게 때가 탄 채 방치된 내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어 무작정 나를 데리고 나왔다고 했다.
10월의 서늘한 바람이 불던 날, 우리의 전 재산이나 다름없던 빨간색 티코 한 대에 몸을 싣고 동해안을 따라 정처 없는 드라이브를 시작했다.
그것은 여행이라기보다 차라리 '표류'에 가까웠다. 아침이면 찬바람이 들이치는 공중화장실에서 찬물로 고양이 세수를 했고, 밤이면 좁은 티코 좌석에 몸을 구부린 채 서로의 온기로 한기를 녹였다.
노숙인 분들 틈에 섞여 줄을 서서 얻어먹던 밥 한 끼가 우리 모자의 유일한 만찬이었다.
어느 날이었다. 갈 곳 없이 공원 벤치에 멍하니 앉아 있는 내게, 지나가던 한 아주머니가 종이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그 안에는 설탕 가루가 노랗게 붙은 소보루 빵 하나가 들어 있었다. 배고픔에 허겁지겁 한 입 베어 문 순간, 달콤하고 고소한 풍미가 입안 가득 퍼졌다.
그날 먹은 소보루 빵은 내 인생에서 먹어본 그 어떤 산해진미보다 달콤했다. 사람의 선의가 얼마나 달콤할 수 있는지, 그 빵 한 조각이 어린 내 허기를 넘어 마음까지 채워주었던 것 같다.
하지만 밤이 되면 공원의 평화는 사라지고 현실의 무게가 좁은 차 안을 짓눌렀다. 나는 매일 밤 잠든 척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러면 어김없이 어머니의 억눌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꺼끅거리며 삼키는 울음, 핸들을 붙잡고 소리 없이 흘리던 눈물들.
어린 나는 그 울음소리를 들으며 차마 눈을 뜰 수 없었다. 내가 깨어 있다는 걸 알면 엄마가 더 무너질 것만 같아서, 나는 숨소리까지 죽여가며 깊은 잠에 든 척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밤의 울음소리는 나를 나약하게 만드는 대신, 내 안의 무언가를 무섭도록 단단하게 벼려놓았다.
'내가 울지 않아야 엄마가 살 수 있겠구나. 내가 버텨야 이 긴 밤이 끝나겠구나.'
주거지 없이 떠돌며 남의 집 눈치를 보던 시절, 나는 그렇게 '눈치'라는 슬픈 감각 대신 '회복력'이라는 근육을 먼저 키우고 있었다.
좁은 티코 창문 너머로 보이던 거친 동해 바다는 어린 내게 속삭이는 듯했다. 지금 이 파도를 견뎌내면, 언젠가 네가 직접 키를 잡고 항해할 날이 올 거라고.
가진 게 아무것도 없었기에,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품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