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오목해진 세상
퇴사하고 집에 오는 날, 지하철에서 렌즈를 빼버렸다. 안경도 없어서 고도근시, 난시, 약간의 노안인 맨눈으로 창밖을 보았다. 세상이 그냥 뿌옇고 흐리게 퍼져 보였다. 문자는 싹 지워졌고, 형체와 색깔, 움직임 정도만 보였다. 어지럽고 머리가 아팠지만 참을 만했다. 그렇게 달라진 세상에서 흔들거리다가 집에 와서 푹 쓰러졌다.
내 나이 12살 때부터 안경을 쓰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시작하듯이 칠판 글씨가 보이지 않아서였다. 그 당시 내 또래에 안경을 쓴 아이가 많지 않아서 아빠가 안경 재비라고 놀렸다. 엄마는 엎드려서 책을 봐서 나빠진 거라고 했다. 하지만 엎드려서 책을 보지 않는 둘째도 안경을 쓰자, 누나 안경을 재미로 쓰다가 나빠진 거라고 했다. 그러다 책이라곤 거들떠보지도 않고 내 안경은 건드리지도 않았던 막내 동생까지 안경을 쓰게 되자, 그제야 유전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사족이지만, 수십 년이 지나도 비디오와 오디오를 완벽 재생할 수 있는 옛날이야기가 있다. 우리 삼 남매가 기차를 타고 외갓집에 가는 길이었다. (내가 중1 정도였고, 두 살 터울인 남동생 둘, 모두 어린이였는데 어떻게 애들끼리 기차를 태워 대구까지 보냈을까 싶지만 옛날엔 그런 일이 허다했다) 당시엔 어디에나 남에 일에 걱정 많으신 할아버지, 할머니가 꼭 계셨는데, 역시나 한 분이 우리 삼 남매를 보며 혀를 쯧쯧 차시며 조상 묫자리를 잘못 써서 삼 남매 모두 안경을 쓰는 거라며 어린 나이에 알아듣지도, 관심도 없는 풍수지리를 큰 소리로 가르치시며, 결론은 묘를 옮겨야 한다며, 부모님에게 꼭 전하라며 어린 우리들을 붙잡고 신신당부를 한 적도 있었다.
그렇게 10년을 안경 재비로 살다가 찬란한 연애 전성기였던 대학 2학년 때 소프트 렌즈로 갈아탔다. 지금 돌아보면 큰 효과가 있었는지 의문이지만, 어쨌든 미용의 목적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겠다. 그렇게 렌즈의 세계에 입문, 잠시 하드렌즈도 끼었지만 잘 맞지 않아 다시 소프트 렌즈로 거의 20년 가까이 살았다. 새벽부터 졸린 눈을 엄지와 검지로 벌려서 렌즈를 끼어 넣었고, 밥 먹듯이 야근이 잦았던 시절이도 렌즈와 함께였다. 피곤에 절어 렌즈를 낀 채 잠이 든 적도 많았다. 다음날 아침에 렌즈와 눈꺼풀이 일체화된 눈을 다시 벌려 렌즈를 빼고 식염수에 씻은 다음 다시 밀어 넣었다. 렌즈 생활이 상당히 불성실했음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별 탈이 없었다.
하지만 세월은 이길 수가 없다 했나. 마흔을 훌쩍 넘기고, 모든 신체와 정신이 건조해지는 자연법칙에 따라 눈도 함께 건조해졌다. 저녁이 되면 눈이 너무 뻑뻑했다. 눈을 꼭 감고 쥐어짜서 일부러 눈물을 만들어내기도 했고, 인공눈물, 안약도 사용해봤지만 잠시 뿐이었고, 수분이 보강되거나 산소 투과율이 높다는 기능성 렌즈도 껴봤고, 1회용 렌즈도 껴봤지만 효과가 없었다. 거기에 난시가 심해지고 노안까지 오니까 그야말로 노답이었다. 그렇다고 안경으로 바꾸기도 쉽지 않았다. 안경을 끼면 갑자기 시야가 좁아지고 세상이 축소되는 느낌이었고, 시력도 잘 안 나왔다. 그리고 도수가 워낙 높아서 안경을 쓰는 게 꺼려졌다.
그러다 퇴사하자마자 렌즈를 빼버렸다. 우선 한 달에 몇만 원씩 들었던 돈이 굳었다. 나를 괴롭혔던 안구건조증이 없으니 세상 편하다. 렌즈보다 다소 오목하게 좁고 작게 보이는 왜곡현상도 괜찮다. 굳이 세상을 자세히 보고 싶은 욕구도 사라졌다. 물론 불편한 점도 있다. 가끔 안경을 떨어뜨리고 쓰고 자다가 배에 깔려서 휘어지고, 겨울엔 김 서리고 여름에 땀 차는 건 좀 불편하다. 그리고 남편은 맨눈으로 새도 보고, 별도 잘 보는데 나는 그러지 못해서 샘이 난다. 그래도 다시 렌즈로 돌아가기는 힘들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