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메이크업의 자유로움
화장품에 손을 대기 시작한 건 고등학교 때였지만, 본격적으로 화장을 시작한 건 역시 연애 전성기였던 대학 2학년 때였다. 엄마도 화장을 안 하고, 언니도 없어서 가정교육은 받을 수 없었고, 유튜브는커녕 인터넷도 활성화하기 전이라 셀프 학습도 어려운 환경이었다. 미용실에서 패션 잡지를 보면서 공부하듯이 암기하고, 앞서 나가는 친구 자취방에서 화장놀이를 하면서 실습하고, 화장품 가게에서 사장님이 상술 차원에서 고도의 풀 메이크업을 해주시면 거기에 감복하여 제품을 하나씩 늘려나갔다.
가장 공을 들였던 건 눈 화장이었다. 눈이 작고 눈두덩이는 두꺼운 데다 신장이 안 좋은 건지 아침에 일어나면 눈이 퉁퉁 부었다. 아침에 사람을 만나는 게 너무 싫었다. 열의 여덟은 눈이 왜 이렇게 퉁퉁 부었냐, 어제 라면 먹고 잤냐, 어제 술 먹었냐, 울었냐, 피곤하냐, 잠이 덜 깬 것 같다, 졸고 있는 줄 알았다 등등 내 얼굴에 쏟아지는 수없는 말들을 들어야 했다. 다들 왜 이렇게 내 얼굴에 관심이 많은 건지, 좋은 소리도 한두 번이지 그 말들이 너무 싫었다. 나중엔 그런 말들은 속으로만 하면 안 될까? 부탁도 하고 내 얼굴에 관심 좀 꺼줄래? 화를 내기도 했지만 사실 계속 신경이 쓰였다. 이 고충에서 벗어나기 위해 화장의 기술 중에 난이도가 꽤 높은 아이라이너 그리기에 심혈을 기울였다. 눈을 조금이라도 더 크게, 더 또렷하게 보이기 위해, 나 피곤한 거 아님, 조는 거 아님을 보여주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일찍부터 시작한 아이라이너 그리기 기술에 꽤 숙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침잠이 많아서 늘 아이라이너 그릴 시간이 부족했다. 그려본 사람은 알겠지만 눈이 부어있을 땐 그리기가 더더욱 어렵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유연근무제로 바꾸고 새벽 6시에 출근해야 했는데, 그때는 화장은커녕 세수할 시간도 부족했다. 가끔 지하철에서 화장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까지는 차마 못하고 일단 출근한 다음 화장실에 가서 부랴부랴 그리곤 했다. 내 고충을 잘 아는 단골 미용실 원장님이 아이라이너 메이크업 문신을 권했다. 가격도 비싸거니와 불법 시술이라 너무 무서웠지만, 아침 시간에 쏟아지는 그 말들, 그 시선들이 더 싫어서 문신을 감행했다. 그렇게 이삼 년은 그나마 잔소리 프리 한 아침을 보낼 수 있었다.
퇴사 후에는 모든 잔소리와 모든 메이크업 노동에서 해방되었다. 처음엔 비비크림과 립밤 정도는 바르고 외출했는데 마스크가 일상화되고부터는 그마저도 하지 않는다. 이제는 기본적인 스킨, 로션, 크림 등 기초 화장품도 바르지 않고 맨얼굴로 다닌다. 처음엔 피부가 땅기는 느낌도 있었지만, 이제 피부도 백수생활에 적응했는지 당기는 느낌도 없다. 동안은 애저녁에 포기했다. 이 나이에 활개 치는 기미, 주근깨, 주름살 등 노화 현상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려고 한다. 화장품이라는 걸 알게 되고 삼십 년 만에 찾아온 원시 민낯의 시간,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매우 자유롭고 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