뿔난 구두를 벗고 납작하게
엄마는 왜 발에 뿔을 달고 다녀?
응? 발에 뿔?
응! 발에 뿔!
딸이 다섯 살 땐가 출근하는 나를 붙잡고 뿔 얘기를 해서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딸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눈에 힘을 잔뜩 주고 내 구두를 힘껏 노려 보고 있었다. 구두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다는 걸 느꼈다. 그러니 구두굽이 뿔로 보였을 테지! 딸에게 내 구두는 엄마를 새벽같이 회사로 데려가서 까만 밤이 되어서야 데려오는 뿔난 도깨비와 같은 존재였다:
그 못된 뿔은 점점 커졌다. 왜 그렇게 높아지려고 했는지, 어디까지 높아지려고 했는지 구두 굽은 조금씩 높아져 갔다. 구두 굽에 올라가면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표정과 말투, 걷는 모습과 앉은 자세,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 등장한 대사 중 유명한 것이 있다. "지미 추를 신는 순간, 넌 악마에게 영혼을 판 거야." 다행히 지미 추를 신은 적은 없다만 다른 페르소나로 사는 것도 은근히 짜릿했다.
나는 늘 웃고 다녔지만 구두는 늘 뿔이 나 있었다. 또각또각 똑똑똑! 구두 굽이 금세 닳아서 굽에 박힌 금속 징은 자주 드러났고, 지하보도 매끈한 포장재를 만나면 점점 더 날카롭고 요란한 소리를 냈다. 굽은 보도블록 벌어진 틈, 환풍구, 지하철과 플랫폼 사이 등 틈에 끼는 일도 많았다. 그 높은 굽을 신고 뛰다가 발목 접질리는 것은 예사로 일어나고, 계단에서 넘어지는 일도 많았다. 발을 헛디뎌 계단에서 구른 적도 있다. 하필 치마를 입고 검은 스타킹을 신고 있었는데 그 스타킹이 다 찢어지고 무릎에 피가 질질 흐른 적도 있었다. 걷다가 구두 굽이 똑하고 부러진 적도 두어 번 있었다. 한쪽은 킬힐, 한쪽은 플랫으로는 도저히 걸을 수 없어서 맨발로 회사 앞까지 걸어간 적도 있었다.
많이 걸어 다니며 발품을 파는 일도 아니었는데, 내 구두는 쉽게 망가졌다. 새로 산 구두도 며칠만 지나면 굽이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발 볼이 넓은 탓에 구두도 고생, 발도 고생, 서로 고생이었다. 좁으면 좁아서 아프고, 늘어나면 벗겨져서 골치 아팠다. 회사 앞 구둣방 아저씨는 내가 가면 묻지도 않고 슬리퍼를 내주고 내 구두를 받아 수선하곤 했다. 구두값보다 수선비가 더 나오게 생겨서 나중엔 6개월마다 한 번씩 새 구두를 사곤 했다. 그렇게 상처 입은 구두들이 신발장을 가득 채우고도 넘치기 시작할 무렵, 퇴사했다.
퇴사하고 바로 구두에서 내려왔다. 얼른 구두를 벗고 플랫한 스니커즈로 바꿔 신었다. 풍선에 바람 빠지듯 한순간에 내 삶이 플랫해졌다. 신발도 플랫, 욕망과 욕심도 플랫, 일상도 플랫, 모두모두 플랫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