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푸고 슬픈 날들은 가고
술 잘 마시는 게 뭐 자랑이라고, 술 센 게 뭐 자랑이라고 그러고 다녔는지 모르겠다. 술 세다고 소문 나서 술자리에는 다 불려 다녔고 부서별 술 배틀에 대표로 나가서 이긴 적도 있다. 맥주는 음료수 아니냐며 더운 낮에 마시고, 밤에는 소주는 양반이고 양주, 백주, 보드카 등 술로 세계일주(酒)를 했다. 아메리칸 or 유러피안 스타일이라고, 어떨 땐 점심시간에 밥 대신 맥주를 마시기도 했다. 그게 멋있다고 생각한 적도 있는 것 같고 술로는 온갖 허세를 다 부리고 다녔다. 지금 생각하니 참으로 부끄럽고 유치 찬란한 허세작렬 알코올홀릭이었다.
순수하게 술이 좋아서, 술자리가 좋아서 마신 술이 반, 나머지 반쯤은 술 마시는 것도 일의 일부라고 직업적으로 마셨는데 진실은 현실 부정, 현실도피의 수단일 때가 많았다. 난 단체 회식 문화에 알러지 반응이 있다. 정기적인 부서 회식, 상급자들의 업무추진비 소진을 위해 꾸며진 회식, 프로젝트나 행사 끝나고 하는 뒤풀이, 승진 턱, 위로주, 환영회, 환송회 등등 뭔 놈의 회식은 그렇게 많은지, 갖은 핑계를 대고 피할 수 있으면 피했고, 피할 수 없으면 주(酒)님의 은혜를 받아야 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술을 좋아한다고, 술자리를 즐긴다고, 술에 취하면 흥이 넘치고 재밌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그거 다 어색해서, 불편해서, 싫어서 그런 거였다. 폭탄주와 건배사를 돌리는 회식 문화와는 끝끝내 화합하지 못했다. 맨 정신으로는 만나기 싫은데 업무상 마주해야 하는 사람들을 만날 땐 술을 매개로 또 다른 나를 소환해서 그 자리에 앉혀놓았다. 일이 잘못됐을 때, 잘못되어 가는데 속수무책일 때 너무 괴로워서 정신줄을 놓고 싶을 때가 많았다. 그럴 땐 일찌감치 블랙아웃을 위한 술도 마셨다.
기분 안 좋아서 현실도피성으로 술을 마시고 나면, 필름 끓기고, 아스팔트가 덮쳐오고, 하마터면 월북할 뻔하고(통근 수단인 경의선 종점이 문산이라 졸다가 문산까지 갔다 돌아오면 동료들이 월북하려던 거냐고 놀리곤 했다), 택시를 중간에 세우고 그날 먹은 걸 굳이 다시 확인해야 했다. 더 괴로운 건 그다음 날 골 때리는 행오버와 함께 뚝뚝 끊어진 필름으로 더 괴로운 현실이 찾아오기도 했다.
퇴사하고는 자연스럽게 술과 멀어졌다. 일단 회식이 없고, 코로나로 여럿이 모이는 술자리도 없다. 무엇보다 술의 힘을 빌려야 했던 사회생활의 씁쓸한 원인 행위가 대부분 사라졌다. 음주의 빈도가 주니 주량도 드라마틱하게 줄었다. 수입이 없으니 모든 생활이 구조조정이 되어야 했는데 술은 특별한 노력 없이 저절로 사양산업이 되었다. 지금은 순전히 쾌락(어쩐지 마시고 싶어서) 혹은 갈증 해소의 목적으로만 마신다. 나물을 캐거나 밭일하고 난 후에 330ml 맥주 한 캔이면 세상 부러울 게 없는 안빈낙도의 삶이다. 330m l면 되는 것을 그동안 주류업계의 호구로 살았다 싶다. 이게 모두 다 코로나 이전, 이제는 다시 돌아올 것 같지 않은 술푼 날들의 이야기다.
**이 글은 330ml 음주 브런치로 약간의 횡설수설이 있을 수 있음을 밝혀두는 바입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