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르고 느슨하게
털은 부정적인 거였다. 어릴 때부터 (아마도 여자치고, 겠지) 털이 많다는 얘길 많이 들었다. 새하얀 피부에 하필 털이 새까매서 잘 보이기도 했다. (외국에서 끈 원피스를 입고 버스 손잡이를 잡고 있는 금발의 여자 옆에 있다가 본의 아니게 그녀의 겨털을 본 적이 있는데 그들은 제모를 하지 않아도 거의 티가 안 나더라만,,) 매끈한 것이 지금처럼 지상명령이 되기 전에도 제모하는 것이 아름답거나 청결하다는 느낌도 있지만, 그것보다 난 남들이 알아 보는 게(그리고 한 마디씩 하는 게) 싫었다. 그래서 그냥 털은 제거의 대상이 되었다.
언제부터 제모를 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아마도 스킨쉽을 나누는 이성의 존재가 생기고 나서일 것 같은데, 그 무렵 소매와 치마가 점점 짧아지기도 해서 본격적으로 제모를 시작했다.
제모는 늘 상처를 수반했다. 그 당시엔 면도기도 기술적으로 부족했고, 가난한 대학생이라 면도기를 자주 바꿀 수도 없었고, 면도의 테크닉도 부족했다. 당시엔 제모를 하는 사람도 많지 않았고, 대놓고 면도의 테크닉을 가르쳐 줄 사람도 마땅치 않아서 상처는 불가피한 것이었다. 면도날에 베여 늘 다리에는 피가 흐르고 상처가 남았다. 언제부턴가 누가 여성용 아니랄까봐 핑크핑크한 면도기가 나와서 좀 나아졌지만, 면도를 거듭할수록 털의 저항력도 만만치 않았다. 면도를 할수록 털이 굵어졌고, 길어지기도 했다. 그렇다고 멈출 수도, 계속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에 빠져 회의감이 들었다. 그 무렵 임신을 하고 출산을 했다. 출산 이후 털 따위와 싸우고 있을 시간이나 에너지가 없어서 털털하게 살 수 밖에 없었다.
새로운 직장으로 출근을 시작하면서 다시 날을 들었다. 다행히 면도의 면적이 줄어들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붙은 살과 육아로 두꺼워진 팔둑 근육 덕분에 민소매와는 영영 안녕이었기에. 그니깐 겨털은 그냥 두고 다리만 했다. 여름이 다가오면 하루가 멀다하고 부지런히 제모를 했다가 겨울이 다가오면 검정색 스타킹에 힘입어 느슨해졌다. 그렇게 농번기와 농한기의 반복이었다. 가끔 바쁘고 뭐하고 하여 제모 타이밍을 실기하기도 했는데 스타킹 사이로 털이 삐져나올 땐 정말이 땀이 삐질삐질 나곤 했다.
근데 다리 털은 언제까지 번영을 누릴 건가? 출산하고 머리카락은 뭉텅이로 잘만 빠지더만 다리는 탈모 현상의 치외법권이라고 되는 건가? 노화의 기미가 영 보이지 않는다. 결국 기술의 힘을 빌려 영구적 제모를 해야 하나? 영구 제모도 영구는 아니라고 하던데. 근데 꼭 매끈해야 하는 건가? 그냥 털털하게 살 수는 없는 건가? 이런 고민도 여름이 되면 당장 내일이라고 피부과로 달려갈 것처럼 치열했다가 겨울이 되면 제모에 대한 고단함을 깜빡 잊고 뭉개곤 했다. 강도의 차이는 있어도 늘 제거의 압박감에 시달리곤 했는데 퇴사하고 나니 그 고민은 온데간데 없고, 그땐 그랬었지, 하는 추억이 되는구나. 완전 털털한 채로 여름을 맞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