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의 풍요
어린 시절의 냄새가 있다. 유년시절을 보냈던 시장 바닥에서는 늘 축축한 냄새가 났고, 집구석에서는 꿉꿉한 곰팡이 냄새가 올라왔고, 방구석에서는 아빠의 담배 냄새로 찌들어 있었고, 장마철엔 빨래에서 걸레 냄새가 날 때도 있었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나의 태생과 배경을 보여주는 것만 같은 그 냄새들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대학에 들어가면서 나의 냄새를 스스로 선택했다. 비누 냄새, 샴푸 냄새, 바디 클렌저 냄새를 내 마음대로 골랐다. 당시 내 머리가 엉덩이까지 내려와서(고등학교 때 단발령을 거부하여) 나한테 샴푸 향이 많이 난 것 같다. 친구들이 머리를 만지며 이 샴푸 뭐야? 샴푸 뭐 써? 라는 말을 많이 했는데 그때 샴푸의 요정이라도 된듯 좋았다.
생일날 남자 친구에게 장미와 향수를 선물로 받으면서 완전히 차원이 다른 냄새, 향기의 세계에 입문하게 되었다. 작은 향수 병이 열리고 그 오묘한 향이 내 코에 와 닿는 순간 감미로운 기쁨에 사로잡혔다. 남자 친구는 엄마가 쓰는 향수 중에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향을 골랐다고 했다. (향수를 쓰는 엄마라니, 우리 엄마에게는 늘 두부 냄새가 났는데, 하며 신기해하면서 남자 친구가 아닌 향기가 나는 그 집안 자체를 선망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나를 매혹시킨 첫 향수는 디올의 땅드르 쁘아종(TENDRE POISON)이었다. 부드러운 독이라니! 향도 향이지만, 모순적인 이름이 어쩐지 마음에 들었고, 그 향을 정성스럽게 담고 있는 초록색 보틀을 너무 좋아했다. (작년에 이사 오면서 버렸으니까 거의 20여 년을 가지고 다닌 셈) 이 작은 보틀은 미지의, 추상의 세계를 담고 있었다. 궁핍함은 잠시 벗고 조금은 세련되고 도시적이고, 교양있는 소사이어티에 가입된 것 같은 기분을 선사했다. 사랑을 많이 받고 있다는 감미로운 느낌, 세상은 아름답고, 앞으로 장밋빛 미래가 펼쳐질 것 같은 형이상학적인 환상들을 만들어주었다.
쁘아종을 시작으로 플로랄과 가끔 시트러스, 우디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날씨에 따라, 계절에 따라, 옷과 기분에 다른 향을 쓰기도 했다. 향수는 단조로운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고 배고픈 게 아니라 뭔가 허기질 때 포만감을 주기도 했다. 향이 좋아서 쓰기도 했지만, 안 좋은 냄새(기분, 분위기)를 없애려고 쓰기도 했다. 예를 들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속이 썩고 있을 때, 인사철 등등 사무실 공기가 전체적으로 좋지 않은 날이면 점심 시간에 사무실 근처 올리브 영에 가서 테스트용 향수를 뿌리고 오곤 했다. 완전한 해결책이 될리는 만무하지만, 잠시 기분 전환용으로는 꽤 유용했다. 면세점에서는 무조건 향수를 구입했고, 선물로 향수를 많이 받았다. 내가 향수를 많이 뿌리고 다녀서인지, 향수를 좋아한다고 소문이 나서인지 퇴사 선물로 향수 몇개를 받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퇴사하고는 향수가 필요없어졌다. 퇴사 선물로 받아서 한번 문질러 본 미스 디올 블루밍 부케 롤러도 나와 함께 무기한으로 놀고 계시다.
일단 알코올에 대한 욕구가 사라졌다. 그게 마시는 거든 입는 거든, 휘발성에 가볍게 태우던 욕망과 욕구들이 사라지고, 구체성이 결여된 착각과 환상에 기대는 일이 적어졌다. 무엇보다 사시사철 매일 다른 플로랄과 우디향을 선사하는 실체적 자연 속에 모든 감각이 살아 움직이는 감각의 풍요 속에 살다보니 한낱 휘발되어 후각에나 닿고 마는 향수가 또 뭔 소용이겠나 싶고.
나보다 더 냄새에 민감한 딸 때문에도 향수는 어려울 것 같다. 시골스로운 곳에서 뛰어 놀며 자라서 그런가 향수 냄새, 세탁 세제 냄새, 특히 섬유유연제 냄새를 질색팔색 한다. 주위에서 옷을 물려받으면 냄새만 맡고도 누구 옷인줄 안다. 옷에 배인 세제 냄새, 섬유유연제, 체취 등을 없애기 위해 몇 번을 빨아야 할 정도로 냄새에 민감하다. 그 지독한 개코 앞에서 내 어찌 감히 향수를 쓰겠는가.
이렇게 향수는 영영 안녕인가? 이제 나에게는 어떤 향이 나는가? 자연의 향기 속에 파묻힌 지금이 좋지만 가끔은 인공의 향도 그립기도 하고. 사람 일은 혹시 모르니 일단 향수는 버리지 않고 keep하고 있다.